김치가 먹고플 때 수육을 좀 삶는다. 수육만큼 간단한 음식도 없다. 그저 물에 풍덩 빠트려 삶으면 끝이다. 집에서의 수육은 워낙 간단하기 때문에 여러 재료가 들어간 육수에 끓여낸 수육 전문점에 비해 맛은 별로다. 별로라도 상관없다. 김치가 먹고 싶기 때문이다. 김치가 먹고 파서 수육을 삶았으니까. 김치에 싸서 와암 먹으면 된다. 이렇게 자기 최면을 걸면 된다.


된장을 좀 풀어서 삶으면 맛이 훨씬 낫다. 소주를 부으면 좀 더 낫다. 아직은 넣어본 적이 없는 월계수 잎이나 한약재료 같은 것을 넣으면 더 맛이 있겠지. 그러면 간단한 수육이 아니다. 간단한 수육은 그저 간단하게 만들어서 김치와 먹는 것이다. 김치가 먹고 싶기 때문에 수육을 삶았다.


수육 말고 찜이나 짜글이를 해 먹을 때 맛있게 먹으려면 쌍화탕 한 두 병 따서 넣으면 맛있다. 쌍화탕에서 한약 맛이 나는데 이게 끓으면서 위에서 말한 월계수 잎이니 한약재료를 잔뜩 넣는 효과를 낼 수 있다. 그러니까 그냥 맛있다. 그러나 지금은 수육의 시간이다. 집에서 간단하게 먹는 수육의 시간.


수육의 시간은 간단하게 조리해서 먹을 시간이어야 한다.


생각해보면 수육 전문점은 잘 없다. 우리 동네에도 수육 전문점이 있는데 집으로 가다가 보면 손님이 없다. 굴지의 제조업 회사가 있어서 맛이 좋은 어지간한 식당은 사람들이 많을 텐데 손님이 없다. 코로나 이전부터 경기가 안 좋아진 제조업 사정이나, 또 코로나의 여파 떼 문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아니면 그 집의 수육이 맛이 없거나.


수육의 사촌쯤 되려나, 족발은 여기저기서 많이 판다. 족발집도 예전에는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족발전문점도 요즘은 예전만큼 잘 볼 수 없다. 예전에 자주 가던 족발집에는 수육도 같이 팔았는데 수육보다는 딸려 나오는 무채 썰이가 너무 맛있어서 사람들이 너도나도 수육을 주문했다.


수육은 돼지국밥 집에는 다 팔기 때문에 굳이 수육 전문점에 가서 사 먹지 않아도 된다. 돼지국밥집에서 파는 수육이 내 입맛에는 가장 맛있다. 국밥도 분명 국밥집마다 맛이 다 다르다. 국밥을 만들 때 돼지머리로 육수를 내느냐, 뼈로 육수를 내느냐, 고기로 육수를 내느냐, 고기와 뼈로 육수를 내느냐에 따라 맛은 다 다르다. 거기에 먹는 사람의 스타일에 따라 들어가는 양념이 새우젓이냐, 소금이냐, 깍두기 국물이냐에 따라서도 맛이 또 갈라진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자면 국밥집의 국밥은 대체로 다 맛있다. 그리하여 국밥집에서 파는 수육 역시 다 맛있다. 우리가 왕왕 가는 국밥집은 국밥만 주문하면 그 안에 고기가 별로 없다. 그래서 수육을 따로 한 접시 주문해서 국밥에 넣어서 같이 먹는다. 코로나가 터지기 전에는 24시간 하는 그 국밥집에 일주일에 한 번은 갔었는데 이제는 잘 가지 않게 된다.


그래서 김치가 집에 있으니, 요 맛있는 김치가 있으니 김치를 싸 먹을 수 있는 수육을 간단하게 삶았다. 아, 고기만 먹으니 참 맛없다. 그러나 김치와 함께 먹으니 음 맛있다. 그저 간단하게 삶아버려 텁텁한 고기의 맛을 김치의 상쾌함이 잡아준다. 비싼 소주나 싸구려 와인이 없는 것이 아쉽다.


집에서 이렇게 간단하게 삶은 수육은 누군가에게 대접하기는 애매하다. 그저 나 먹으려고 먹는 것이다. 분명 입이 까다로운 사람이 먹으면 입에서 험난한 크레바스처럼 뾰족한 말들이 튀어나올지도 모른다. 아니 나올 것이다. 나는 못 먹는 것 빼고는 크게 맛있다와 맛없다의 차이가 없는 이상한 입과 혀를 가지고 있다.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니 매운 음식을 빼고는 대체로 다 맛있다고 생각하고 먹는 편이다. 쓰고, 시고, 새그랍고, 짜고, 밍밍하고, 싱겁고, 시그럽더라도 매운 것보다는 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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