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밤중에 참지 못하고 견디다 견디다 라면을 꺼내 들었다. 라면만 간단하게 끓여 먹으려 했으나 콩나물이 있어서 듬뿍 넣었다. 신김치가 옆에 있기에 같이 넣어서 끓였다. 이왕 이렇게 먹는 거 좀 더 맛있게 먹기 위해 계란을 그냥 넣지 않고 옆에서 스크램블로 만들어서 넣었다.


오밤중에, 자정에 이게 무슨 짓이지,라고 하면서 끓이지만 일단 한 젓가락 하게 되면 모든 생각은 액토플라즘이 되어 공중으로 떠 올라 허공으로 사라진다.


맛있다. 맛있게 먹는다면,

그렇다, 맛있게 먹는 다면 0칼로리가 아니라 행복하다.


이렇게 야심한 밤에(라고 적지만 요즘 밤은 이상하지만 야심하지 않은 기분이다) 콩나물을 듬뿍 넣은 라면을 먹으며 본 것은 미드 서번트 시리즈다. 나이트 엠 샤말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시리즈에 나처럼 그대로 빠져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기괴함, 이 어두움, 이 음험함과 이 찝찝함 그리고 이토록 답답함과 그리고 등줄기를 잡고 당기는 이 알 수 없는 긴장감과 숨쉬기 어려울 저도로 무거운 공기의 압박감을 느낄 수 있는 시리즈를 나잇 샤말란 감독이 만들어냈다. 오 하면서 보다가 하 하면서 느끼면서 호로록 라면을 먹으면서 보는 것이다.

등장인물이 몇 안 되는 요상한 시리즈다. 한 정 된 공간, 번화한 도심지에 있는 아주 오래된 집에서 네 명의 주인공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잘 나가는 기자와 일류 요리사 부부가 사는 이 집에 보모, 즉 서번트로 18살의 리엔 그레이슨이라는 소녀가 들어오면서 알 수 없는 음험한 일들이 벌어지는 이야기다.


모든 것이 수수께끼와 매 화면마다 메타포가 가득한 이 영상미는 마치 한니발 시리즈를 보는 것 같은 긴장감을 준다. 이 시리즈를 보면 이 집도 이상하지만 터너 부부도, 리엔도, 그리고 도로시의 남동생 - 한때 론 위즐리의 줄리안도 전부 이상하다. 누가 정상이고 누가 비정상인지 구분이 안 된다.


사이코 심리 스릴러 같으면서 오컬트 호러를 표방하다가 무서운 공포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런 긴장감과 기이한 음악이 한몫을 하는데 마치 피부 밖으로 실밥 하나가 나왔는데 뽑으면 계속 딸려 나오는 것 같은 기기괴괴한 이야기다. 시즌 1, 2가 이 정도의 느낌이라면.


시즌 3으로 가면서 이 서번트가 바뀌려고 하고, 그러다가 서번트가 쥐도 새도 모르게 - 이러면 재빠르게 바뀌는 것 같지만 아주 천천히 쥐도 새도 모르게 - 바뀌는 것이 드러난다. 그러면서 기괴한 일들은 점점 그 폭이 넓고 깊어진다. 시즌 4가 제작 확정이라니까 빨리 보고 싶다.


이 시리즈는 현실과 환상의 구분이 모호하다. 주인공들 역시 현실감과 환상 속에서 지내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리엔이 신경 물질 때문인지 광신도 때문인지 격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도로시의 표정과 말을 들으면 도로시가 더 현실감에서 멀어지는 이상한 인간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연출, 음산하고 기괴하고 웅장한 음악은 한니발의 그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빛과 어둠을 잘 다뤄서 마치 카메라로 인물 사진을 느낌 있게 담아내는 것 같다.


시리즈 내내 야금야금 라면을 먹으면서 보다 보니 먹는 라면이 ‘서번트 라면’ 같은 기분이 든다. 서번트 라면이지만 서번트가 아닌, 마치 라면은 인간 생활 전반에 파고들어 이제 서번트가 아닌 본격적인 인간 제어에 동참해버리는,,,,,


이렇게 보다가 옆 채널에는 고로 씨도 라면을 맛있게 먹고 있다. 고로 씨의 먹방을 제외하고 일본 드라마에서는 집에서도 대체로 컵라면을 먹는 모습이 많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라면을 끓여 먹는 모습이 많다. 고로 씨가 먹는 라면도 라멘집에서 먹는 라면이다. 아주 맛있게 먹는다.


콩나물을 잔뜩 넣어서 이렇게 끓인 라면을 본다면 호오 하면서 관심을 가질게 분명하다. 고로 씨의 먹방을 보면서 고로 씨가 실제로 있다면 어떤 사람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독한 고로 씨는 실제로 보면 밥만 혼밥 할 뿐이지 겉으로 보는 것만큼 고독하지 않다. 시즌 1의 4화를 보면 고로 씨에게 깜짝 고백을 하는 예쁜 여배우에게 퇴짜를 놓는다. 그리고 여배우는 10년 후에 실망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웨딩드레스 입은 모습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걸 놓쳤다며 말이다. 고로 씨는 그러거나 말거나 단 음식이나 먹으러 가자고 한다.


인간이 고독한 이유를 생각해보면 곁에 누군가가 없어서다. 곁에 기대고 싶고, 나의 어깨를 내줄 수 있는 사람, 즉 사랑하는 사람이 옆에 없어서 인간은 고독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군중 속에서 오히려 더 고독해지기도  한다. 고독은 외로움에서 기인한다고 생각된다. 어딘가에서는 외로움은 견디고 고독은 즐기라고 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는 인간은 보통의 인간은 아닌 것이다. 보통의 인간은 외로움으로 힘들고 고독을 견디기 어려워한다.


그렇게 보면 고로 씨는 보통의 인간은 아닌 것이다. 고로 씨는 여자를 사랑하기보다는 음식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 된 것 같다. 사랑은 원한다고 해서 마음껏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에 반해 음식은 원하면 언제든 사랑할 수 있다.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게 음식이다. 한 음식만 사랑하지 않아도 된다. 다양한 음식을 먹으며 그 음식 맛에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고로 씨는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고독하지만 고독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미식가 고로 씨가 아닐까 싶다.


콩나물 잔뜩 넣은 라면 얘기하다가 결국 서번트를 거쳐 고로 씨까지 와버렸다. 고로 씨가 서번트에 나오는 저 부부, 터너 부부에게 저녁 초대를 받아서 가면 좀 재미있을 것 같다. 터너는 일류 요리사라 시리즈 내내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서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 그런데 미국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아주 조금 칼로 잘라서 포크로 집어서 입에 넣어 오물오물 먹는다. 고로 씨가 음 하면서 싫어하겠지.


서번트에는 줄리안으로 루퍼트 그린트가 나오는데 모두가 식사하는데 혼자서는 거의 내내 와인만 마신다. 모두가 요리를 먹을 때에도 줄리안은 술만 마신다. 그래서 그런지 나오는 주인공들 중에 제일 살이 쪘다. 서번트 시리즈에서는 루퍼트의 젝스 신을 볼 수 있다. 현실에서 루퍼트는 이미 아버지가 되었다.


역시 해외 가십 이야기는 라면 먹으며 하는 게 젤루 재미있다.



https://youtu.be/P77p8LSKvMc 예고편, 앱흘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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