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몹시 세차게 왔습니다. 비가 내리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저는 비가 내리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유리에 먼저 내린 비는 밑으로 내려가기 싫어서 악착같이 붙어 있으려 하지만 금세 뒤에 내리는 비에게 자리를 양보해주고 밑으로 떨어져야 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폭우가 내리면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어차피 떨어져 없어질 거 희망 따위 가질 필요 없이 바로 유리창 밑으로 흘러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늘 희망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생각이 들기 때문에 희망 따위는 가지지 않는 편이 훨씬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무 기대 없이 하루를 시작하면 반복의 무한 굴레 속에서 작은 이벤트에도 어쩌면 큰 기쁨을 맛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니 이 또한 희망을 가지는 것이군요.


그래도 변명을 하자면 큰 희망, 원대한 희망 따위는 가지지 않는다고 꼭 말해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복권 한 장 구입하지 않습니다. 비는 수많은 빗물 속에 섞여 떨어져 없어지고 맙니다. 우주의 먼지처럼 누구도 작은 비 한 방울에 관심을 가지지 않습니다. 그래도 말이죠, 비가 없으면 우리는 살아가지 못합니다.


비록 먼지 같은 존재일지라도 천년이 지나는 동안 굳건하게 하늘에서 떨어져 비라는 존재를 생명이 붙어 있는 것들에게 알려줍니다. 이렇게 끝없이 쏟아지는 비를 보면 그리워집니다. 저에게도 그리워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겨우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리워할 시간에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곁에 있어 줄 수 없어서 그리워만 합니다. 비를 보며 악착같이 미끌미끌한 유리창에 붙어 있으라고 속으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대로 죽고 싶다는 말은 이렇게 살기 싫다는 말입니다. 살려달라며 미끄러져 밑으로 떨어지는 비를 보니 꼭 나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고 사랑에는 사랑이 없습니다. 눈물이 이렇게 많은 비처럼 흘러본 적이 언제였을까요. 이렇게 울고 나면 나는 다시 태어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처를 받았을 때는 제대로 상처를 받고, 울고 싶을 때는 펑펑 울어야 한다는 걸 잘 압니다. 잘 알지만 잘 안 되는 게 저 같은 인간입니다. 눈물이 비가 되어 내립니다. 저 대신 하늘이 펑펑 울어 주고 있습니다. 그곳에도 비가 세차게 온다면 같이 울어 주세요. 그럼 또 편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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