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있는 글이 자꾸 미뤄지고 지난 추억에 관한 일만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과거로 들어가서 그곳에서 행복했던 생각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글을 쓰고 있다. 추억 속에 들어가고 나면 일단 기분이 좋다. 그 당시에도 스트레스가 있었겠지만 기억 속의 나는 너무나 행복한 모습으로 지내고 있다.
별 고민도 없어 보이고, 공부도 못해서 성적도 안 좋은데 크게 신경도 쓰지 않는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학교에서 잘 나가는 그런 아이도 아니며, 잘 웃는 아이도 아니었고, 운동을 꽤나 잘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먼지 같아서 있으나 마나 한, 그런 존재였는데 아마도 매일 음악을 듣고 있어서 그게 꽤나 즐거웠던 모양이다.
중학교에 입학해서 무시무시한 레슬링부 아이가 음악 감상실에 대해서 이야길 하는 걸 듣고 가게 된 이후로 주말이면 늘 거기서 음악을 들었고, 평일에도 일찍 보내주면 음악 감상실로 들어갔다. 덕분에 다른 아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음악 감상실은 형태는 변했지만 내가 있는 여기 이 도시에 10여 년 전까지 있었는데 이제는 싹 사라졌다.
레코드 가게가 싹 사라지듯이 몽땅 거짓말처럼 지상에서 소거되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에 아주 크게 자리를 잡았던 레코드 코너가 하나둘씩 사라지더니 서적 코너도 싹 사라졌다. 서적 코너가 집 근처 대형마트에 있었을 때는 마트에 자주 갔다.
서적 코너에는 책을 편안하게 읽을 수 있게 좋은 의자도 있어서 한 시간 정도는 책을 읽고 올 수 있었다. 약속시간보다 일찍 나와서 대형 마트의 서적 코너에 앉아서 책을 좀 보다가 일어나서 바로 앞에 있는 수족관 코너에 가서 여러 물고기나 동물을 구경하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른다. 물고기 중에는 음식을 먹으면서 똥을 동시에 싸는 물고기도 있었다. 하나씩 하면 좋을 텐데. 인간은 동시에,,, 까지 생각하다가 다시 음악 감상실로 돌아와서.
중 고등학생 때 무척 무덥고 숨이 턱턱 막히는 날까지 수업을 하고 끝나면 가방을 둘러매고 학교를 나오면 덥덥한 바람도 시원하게 느껴지던 여름의 날, 코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달려간 곳은 어김없이 음악 감상실이었다. 디제이들이 풀어놓는 록스타들의 썰은 듣는 것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늘 외국의 매틀 밴드에 관한 이야기만 듣다가 블랙홀이나 백두산, 시나위 같은 한국 밴드에 대해서 듣게 되었는데 정말 흥미진진했다.
세계적으로 록이 전성했던 시기는 6, 7, 80년대였다. 세계적으로 기근과 전쟁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산업혁명이 여러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종교와 이념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인간이 인간에게 총구를 겨누고 방아쇠를 스스럼없이 당겼다. 전 세계에서 사람을 가장 많이 죽이는 동물 랭킹에 인간이 있다. 그리고 개도 그 속에 있다. 개에 물려 죽는 사람이 매년 4만여 명에 이른다고 하고, 인간이 인간을 실수나 고의로 죽이는 경우는 더 많다고 한다. 그래서 모기나 각종 동물들과 함께 인간도 랭킹에 올라있다.
그러한 시기에 반항, 저항을 울부짖던 록은 사람들을 한 목소리로 뭉치게 만들었다. 시작점은 주다스 프리스트, 롤링스톤즈 같은 그룹이었다. 그들의 공연은 사람들을 구름 떼처럼 몰고 다녔고 음악으로 전쟁의 중심에 있는 총을 이길 수 있다고 굳건하게 믿었다. 그러면서 한국에도 록이 상륙한다. 625 전쟁, 한국전쟁 때문이다. 전쟁을 치렀던 나라는 혁명이 빨리 일어난다. 한국이 전쟁을 치르면서 미군이 들어오고 따라서 미제 문화가 많이 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음악이었다.
신중현과 엽전들, 미니스커트의 윤복희, 미 8군에서 노래를 불렀던 패티 김을 선두로 해서 포크 록의 대부라 불리는 한대수 등이 저항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물 좀 주소’로 유명한 한대수의 아버지는 우리나라 1세대 격인 물리학자였다. 그것도 핵물리학자였는데 어느 날 실종이 되었다.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한대수의 조부는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의 초대 학장을 지냈다. 아버지가 실종 상태로 지내다가 한대수가 16살이 되던 무렵에 미국 FBI에게 연락이 와서 아버지를 만났는데 한국말을 전혀 할 줄 모르고 과거를 싹 잊어버렸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지나 한대수가 한 방송에 나와서 이런 전반적인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음악감상실에서 디제이들의 썰로 듣는 록스타들의 이런 이야기는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먼지 같은 나에게는 기폭제 같은 것들이었다. 음악감상실에서 시나위 6집의 보컬을 맡았던 김바다의 목소리를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이렇게 록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하며 우리는(음감 죽돌이들) 놀랐다. 시나위 6집에 수록된 곡들이 전부 시대정신과 저항을 말하고 있다.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트는 디제이들은 방송국에서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프로들이었다. 그만큼 음악에 대한 지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나 지식을 많았다. 특히 여자 디제이가 한 명 있었는데 신청하는 노래를 대부분 잘 틀어 주었다. 그래서 그 여자 디제이가 하는 시간대에는 사람들이 늘 많았다. 여자 디제이는 어깨까지 오는 머리에 부스에서 맨트를 칠 때에는 검은 뿔테 안경을 썼다. 그렇다고 해서 학구파적인 스타일은 아니었다. 얼굴은 몹시 예뻤고 방송할 때를 제외하고도 사투리를 쓰지 않았다. 음악 감상실 부스 밖 디제이 대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꽤 멋있었다. 소문이 많았다. 서울에 있는 방송국에서 일을 했는데 거기 국장과 그렇고 그런 사이였다가 쫓겨났다느니. 하지만 전부 소문이었다.
그녀가 위의 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썰을 풀면 사람들은 눈에 힘이 들어가서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가 들려준 밴드 이야기는 흥미 그 자체였다. 거기에 시나위의 이야기도 나왔다. 나에게는 시나위 4집도 있었는데 그 앨범에는 불모지 같은 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은 멤버의 사진이 앨범 뒷 표지에 있다. 보컬에 김종서, 베이스에 서태지, 기타에 신대철 등.
시나위 6집은 김바다가 보컬을 맡았다. 김바다는 6집에 이어 7집도 보컬을 맡았던 걸로 안다. 김바다는 뭐랄까 참 이상한 보컬이다. 노래를 부를 때 얼굴에 전혀 변화가 없다. 음을 소거하고 본다면 그저 조용한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런데 표정은 평온한데 내지르는 고음은 높은 파도가 갯바위에 부딪쳐 크게 부서지는 것처럼 강렬하다.
6집에서 ‘은퇴 선언’으로 한국에서도 너바나만큼의 얼터너티브를 하는 밴드, 보컬이 나왔다며 난리 났었다. 은퇴 선언과 사이클은 정말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곡이었다. 김바다의 얼굴은 아주 매력적으로 생겼다. 오래전 영화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의 주인공 필립 리를 보는 것 같다. 미국에서 만든 태권도 영화인데, 그 영화에서 아마 한국 태권팀이 좀 뭐랄까 호러블 하게 비치는 것 같았다. 아무튼 김바다의 얼굴은 매력적이다. 김바다는 키도 크다.
6집에서 사람들은 은퇴 선언과 사이클을 좋아하지만 나는 ‘내버려 둬’와 ‘블루 베이비’가 아주 좋다. 내용도 너무 좋은 것이다. 어린놈의 자식 때에는 들으면 그냥 풍덩 빠져들 수밖에 없는 내용이 아니던가. 김바다의 목소리가 이렇게도 어울릴 수 있을까. 노래를 들으면서 늘 생각했었다. 김바다는 시나위를 나와서 나비효과 밴드를 만들어서 유명한 첫사랑을 불렀다.
은퇴 선언 https://youtu.be/JzTG1HGKzVg
내버려 둬 https://youtu.be/aY6YcZBiFnE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노래를 부르는 김바다의 첫사랑 https://youtu.be/jasFDPkRiag
아무래도 이 노래는 정말 너무 좋아 죽음 ㅠㅜ 블루 베이비 https://youtu.be/DXzmtliKc9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