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걸맞은 이야기 하나 해보려고 합니다. 제가 어린 시절에 살던 동네는 일명 달동네라고 불리는 동네였습니다. 지금은 재개발 구역이 되어서 아파트가 들어서려고 전부 확 밀어버린 상태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들이 빠진 흉흉한 모습이지만 동네가 있었습니다. 골목이 있고 골목을 따라 단층짜리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그래서 옥상에서 옥상으로 뛰어넘어 이동이 가능한, 그런 동네입니다. 골목이 여기저기 미로처럼 뻗어 있어서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기 좋은 동네였습니다. 그러나 달동네라는 이름처럼 못 사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사는 마을이었습니다. 집은 작고 좁은 방들로 이루어졌습니다. 단칸방인 집들도 많아서 혼자서 마을에 들어와서 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전부 가난하고 돈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골목 안쪽 골방에 있는 집에서 누군가 말도 없이 목숨을 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화장실이 마당에 딸려 있어서 겨울에는 아주 불편했습니다. 동네의 모습이 마치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그런 골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의 집의 모습과 닮았습니다. 달동네 뒤에는 산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무덤가가 있어서 우리는 담력시험을 하며 놀았습니다. 마을에 새로운 집이 이사를 오면 그 집의 아이가 우리와 같이 끼어서 놀려고 하면 저녁에 어김없이 무덤가에서 담력시험을 했습니다.


담력시험은 이런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무덤가가 보이는 지점에 우리가 자리를 잡고 야구공을 무덤가에 있는 중간 무덤에 놓고 옵니다. 그러면 다음 사람이 가서 가져오고, 가져온 야구공을 다음 사람이 다시 가져다 놓는 것입니다. 무덤가에 들어가는 건 정말 소름 끼칠 정도로 겁이 납니다. 아마 모두가 무서운데 그걸 티 내지 않으려고 아이들은 이를 악 물고 야구공을 갖다 놓고, 들고 오곤 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무덤가 앞에 방송국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달동네라지만 대부분 세 들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중에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내심 방송국이 들어와 땅값이라든가 집값이라든가, 상승의 기대를 가졌습니다. 방송국이 들어서면서 우리가 늘 다니던 산속의 좁은 길을 밀어 버리고 도로 공사를 했습니다. 길이 아닌 길에 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겨울이 다가오고 겨울이 다가올 때쯤 도로에 아스콘은 아직 안 깔렸지만 산 위에 큰 도로가 드러났습니다. 이 도로가 끝나는 곳에 방송국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방송국 너머 옆에 무덤가가 있게 됩니다. 아직 방송국 공사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담력시험을 하러 산에 올라갔습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담력시험이 끝나면 그 도로를 나란히 서서 어깨동무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왜냐하면 무서웠기 때문입니다. 방송국도 들어오는데 이상하게 마을에서 죽은 사람이 또 발견되었습니다. 세상의 힘든 사람들이 다 이 동네로 와서 고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 같았습니다. 동네에는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서도 사고가 났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동네에 있는 오래된 우물에는 늘 그런 소문이 따라다닙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물은 봉해졌습니다. 돌로 된 우물인데 쇠로 된 뚜껑을 올리고 쇠줄로 꽁꽁 묶어둔 우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은 그 누구도 우물 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오래전에 하얀 소복을 입고 뛰어들어 죽어버린 한 여자의 시체가 아직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우물 주위는 온통 집들이라 낮에는 우물 근처에서 놀아도 사람들이 많이 왔다 갔다 했지만 해가 지고 어둑해지면 주택가 중간에 있어도 우물가에는 사람들이 얼씬거리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방송국 공사가 시작되고 무덤가에 밤이 되면 우물에 빠진 그 소복의 여자가 나타난다는 이야기가 아이들 사이에서 떠돌고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르나 우물에 빠진 여자는 발견되지 못한 채 무덤에도 들어가지 못했는데 방송국이 산 위에 들어오는 대신 마을의 흉흉한 소문이 있는 우물을 드러내고 그 자리에 정화시설을 차려준다고 마을 통장과 이야기를 했다는 겁니다. 우물이 없어진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소복을 입은 여자는 귀신이 되어서 매일 밤 무덤가에 자정이 지나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자정이 지나야 나타나니까 거기서 놀아도 그 전에만 내려오면 됩니다. 사실 자정이 아니라 해만 넘어가면 그곳은 무섭기 때문에 아예 거기에 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놀 것이 없었기 때문에 담력시험을 하며 놀다 보니 그것이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되어서 한 학년이 올라가도, 어떤 아이가 생일을 맞아도 우리는 담력시험을 했습니다. 담력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그 녀석은 마을에서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악을 쓰고 담력시험을 통과하려고 했고 너무 어린아이들 빼고는 대부분 담력시험을 해냈습니다. 그것으로 우리는 무척 뿌듯해했고 서로 자랑스러워했습니다. 점점 겨울이 다가왔고 산속의 밤은 빨리 찾아왔습니다. 동네에는 또 한 집이 이사를 왔고 그 집의 아이와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계기는 역시 담력시험이었습니다. 야구공을 무덤가에 있는 중간 무덤에 갖다 놓고 다음 사람이 가져오고. 늘 하던 대로 우리는 수순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사 온 집의 아이가 공을 가지러 갔습니다. 그리고 무사히 들고 왔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를 우리의 멤버로 환영했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도로를 내려왔습니다. 날이 어두워 산속은 바람 부는 소리에 더욱 무섭게 보였습니다. 그때 새새새색하는 소리가 나무 위에서 들렸습니다.


우리 중에 한 녀석이 저기 위에, 라며 가리키는 곳을 보니 나무 위에 하얀 소복을 입고 머리를 펄럭이며 입을 있는 대로 벌리고 우리를 내려보는 귀신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전부 그 귀신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깨동무는 무너지고 누구랄 것도 없이 소리를 지르며 동네로 마구 달려서 내려왔습니다. 모두 겁을 집어 먹었습니다. 귀신이 나타나면 모두가 다 같이 볼 수 있어서 덜 무서울 줄 알았는데 그건 완전한 착각이었습니다. 귀신을 보고 놀라서 기겁을 하는 친구들의 모습에 더 겁을 먹게 됩니다. 그런데 그다음 날 알고 보니 그건 귀신이 아니라 냉장고를 덮는 큰 비닐이었습니다. 그 비닐이 바람에 날려 나뭇가지에 걸려 파르르르 하는 모습을 우리는 동시에 귀신으로 착각을 한 것입니다.


어째서 모두가 그 비닐을 귀신으로 봤을까요. 아마도 우물에 빠져 죽은 여자의 소문이 내내 머리에 남아있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고 맙니다. 우리들 중 그 헛것을 본 후 계속 식은땀을 흘리고 학교에서 조퇴를 하고 집에 일찍 오거나 계속 누워만 있게 된 녀석이 있었습니다. 녀석은 우리 중에서 가장 담력이 센 녀석이었습니다. 사실 이 담력시험도 그 녀석이 생각해낸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용감한 녀석이 그 녀석이었습니다. 학교에는 이순신 장군 동상이 밤만 되면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는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 녀석이 몇몇과 학교에 남아서 그 이순신의 이빨이 진짜인지 관찰했습니다. 이순신 동상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어둠이 깔렸습니다. 어둠이 깔리고 저녁 8시가 지나 밤 9시를 향했습니다. 학교의 교문은 닫히고 녀석은 아이들과 함께 가이즈까 향나무 뒤에 숨어서 9시가 넘어서 이순신 장군 앞으로 살금살금 갔습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 녀석보다 먼저 친구들이 그 앞으로 갔는데 그만 으악 이라는 비명과 함께 교문으로 도망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이순신 동상이 이를 드러냈다. 라며 말이죠. 하지만 그 녀석은 살금살금, 손에 삽 같은 걸 들고 용케도 이순신 장군 동상 앞으로 갔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동상은 거의 2미터가 될 정도로 컸습니다. 그 녀석은 그 밑에서 단으로 올라서 이순신 장군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그랬더니 자동차가 학교 밖에서 지나갈 때 빛이 이순신 얼굴에 닿으면 이순신 장군의 입에 낀 먼지가 하얗게 이빨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녀석은 때 아니게 옷소매로 그 먼지를 털어냈습니다. 그 뒤로 이순신 장군이 밤마다 이를 드러내며 웃는다는 소문은 사라졌습니다.


그런 녀석이었습니다. 그런 녀석이 이상하지만 산 위에서 헛것을 본 뒤로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습니다. 녀석은 점점 학교에 오지 못하더니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쇠약해졌습니다. 녀석의 부모님은 결국 마을을 떠나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리고 녀석은 병원에 다닌다는 소식까지만 들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사살이지만 그날, 헛것을 본 그날. 사실 마을에서는 동네 어른들이 우물가에 모여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날 누군가가 그랬는지 그동안 봉해져 있던 우물의 쇠붙이로 된 뚜껑이 반쯤 열려 있었다고 하더군요. 마을에서는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또 어떤 사람이기에 그 무겁고 단단한 쇠붙이 뚜껑을 열어 놓았는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어른들 몇 명이 붙어서 뚜껑을 닫는 데만도 시간이 엄청 걸렸다고 하더군요.


아직도 그건 의문입니다. 우물의 뚜껑이 왜 열렸는지. 그리고 무덤가에서 본 헛것이 진짜 헛것인지. 그 헛것을 우리 모두가 귀신으로 봤다면 정말 그 여자의 귀신이 아닐까. 그리고 녀석은 왜 시름시름 앓았을까. 모든 것은 의문으로 남기고 시간이 그대로 흘렀습니다. 조깅을 하면서 예전의 동네를 지나쳐 오곤 했습니다. 그리고 우물이 있던 그 골목까지 깊게 들어가 봤습니다. 가면 그때의 일이 떠오릅니다. 그 녀석은 지금 어떻게 지낼까. 만약 귀신이 있다면 우물이나 마을 자체가 없어진 이 마당에 어디서 지낼까. 그런 생각들이 듭니다.


사실 귀신은 없다고 생각하는 축에 속하는 인간이 접니다. 그러나 가끔 이렇게 귀신이나 영적인 존재 같은 것들이 있다고 믿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작년에도 꿈을 꿨는데 죽었던 우리 집 강아지가 나타났습니다. 녀석은 정말 밖에 조깅을 하러 나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전력을 다해서 달리면 옆에서 같이 신나게 달렸습니다. 꿈에 나타나서 또 밖에 나가자고 하기에 나가서 신나게 달리고 오니 또 나가자고 해서 또 달렸습니다. 그렇게 세 번을 밖에서 달리고 들어오니 사람처럼 네 발을 사방으로 뻗어서 널브러졌습니다. 그 모습이 귀엽고 그랬습니다. 꿈에서요. 그다음 날 조깅하고 오는데 거짓말처럼 도로에 삼만 원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날름 주워서 잘 써버렸는데 묘하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여름이 되면 공포영화가 하고 귀신을 본 괴담이 흘러나오는데 정말 귀신을 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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