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사과는 겨울의 과일이었다. 겨울에만 먹는, 겨울에 맛있는, 겨울과 함께 오는 그런 과일이 사과였다. 아버지는 사과를 참 좋아하셨다. 사각사각 껍질도 예술적으로 깎았다. 껍질이 마치 종이처럼 얇아서 우리는 그걸 들고 이야이야 하며 감탄을 연신 쏟아냈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남달라서 회사에서 용접을 해서 쌍절곤도 만들어 오고, 돈파도 만들어 오셨다. 그리고 과도 같은 것도 여러 개 직접 만들어서 갉고 갉아서 사과를 깎았다. 그렇게 사과를 예쁘게 깎아서 우리에게 먹이는 게 아버지 식 사랑의 방식 중 하나였다.


사랑이야기는 수세기에 걸쳐 무수히 많은 이야기로 쏟아졌다.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고 더 이상 이상할 것도 없는 게 사랑이야기다. 사랑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랑을 하느냐, 어떻게 사랑을 하는 가는 아직도 할 이야기가 많다. 어떻게 사랑을 지켜나가는 가, 하는 이야기에 따라 재미있을 수 있다. 사랑 이야기하면 주로 남녀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지만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이야기도 있고, 친구와 친구의 사랑, 형제간의 사랑도 있다.


아버지는 사과를 좋아해서 종류에 상관없이 어떤 사과든지 잘 드셨다. 한 손에 과도에 올려진 사과를 들고 입으로 가져가는 그 과정이 어린 우리에게는 멋있게 보였다. 동생은 사과를 아버지만큼 좋아해서 아버지가 사과를 깎고 있으면 옆에 앉아서 날름날름 사과를 받아먹었다. 그에 비해 나는 사과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말로 사과는 다 맛있고 몸에도 좋으니까 밥을 먹고 나면 꼭 사과를 깎아서 주었다. 아버지는 다 맛있다고 했지만 맛없는 사과는 맛이 없었다. 부사든 홍옥이든 뭐든 아버지는 겨울에는 아침에 사과로 식사를 간단하게 때우는 일도 있었다. 요즘에 나오는 사과는 전부 맛있고 달다. 어쩌면 그래서 손이 쉽게 가지 않는다. 예전을 떠올리면 사과가 전부 맛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맛있는 사과를 내내 먹을 수는 없었다. 녹색 사과는 먹으면 좀 텁텁한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맛이 그립기도 하다. 지금의 사과는 하나를 먹으면 하나를 더 부를 정도로 맛이 좋다.


좀 벗어난 얘기지만 사과하면 요즘은 역시 애플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 그 애플. 애플사. 맥킨토시의.


원래 매킨토시라는 사과는 사과 중에서 맛이 좀 떨어지는 사과라고 한다. 그래서 주로 잼으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그런데 또 캐나다의 사람들은 그 매킨토시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 조금 맛이 떨어지는 매킨토시의 스펠링은 Mclntosh이다. 이 사과에 스티브 잡스가 약간 마법을 부렸다. 잡스는 Macintosh로 만들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사과 로고가 탄생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맥’이라는 고유 명사화된 사과농장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IT기기와 거리가 먼 인간이라고 생각했는데 대부분 애플 기기를 사용하고 있고 종류도 몇 개나 된다. 아이폰도 4s, 6s, 8이 있고 아이팟 터치도 4, 5 세대 해서 두 대나 있다. 아이팟 클래식과 아이팟 셔플도 있고, 최초의 맥북에어도 있다. 아이패드도 3대나 된다. 키보드도 하나 있다. 기계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 나 같은 인간에게도 애플의 생태계는 큰 영향을 주었다.

스티브 잡스는 픽사라는 단어도 만들었다. 픽셀과 아트를 조합해서 pixar를 만들었다. 픽사를 처음 설립하고 10년 동안 하나의 애니메이션에 매달리는데 그게 바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토이 스토리였다. 그리고 그 애니메이션을 만드는데 데리고 온 사람이 존 라세티였다. 존 라세티는 70년대부터 스타워즈의 루카스 필름에서 그래픽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애니메이터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3D를 담당하면서 디즈니사에 왔다 갔다 했다. 86년에 잡스가 애플사에서 쫓겨나서 존 라세티를 데리고 와서 10년 동안 애니메이터들과 토이스토리를 만들어서 10년 만인, 95년에 개봉을 했다. 70년대부터 나온 스타워즈도 이번에 디즈니 플러스에서 오비완 캐노비를 개봉했는데 그걸 보니 감개무량이었다. 그러나 오비완 캐노비의 전설 같은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뭔가 허술한 점이 많았다. 오비완과 다스 베이더의 결투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단 이야기에 그저 소비되는 캐릭터들이 나오는 것이 별로였다. 또 토이 스토리도 이후에 시리즈가 계속 나오고 있는데 이번에도 버즈의 이야기, 버즈 라이트이어도 개봉했다. 버즈의 목소리를 또 캡아의 크리스 에반스가 했다. 아무튼 사과로 시작한 사과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질 것이다. 이야기, 스토리텔링이라는 건 그런 것이니까.


다시 사과 이야기로 돌아가서 내가 아버지가 깎아주는 사과를 잘 먹지 않았던 걸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나는 사과를 껍질 채 먹는 걸 좋아한다. 그게 훨씬 맛있다. 껍질의 맛이 좋은 것이다. 이상하지만 껍질을 깎아 놓으면 손이 가질 않는다. 그건 참외도 마찬가지다. 참외를 잘 씻어서 반으로 자른 뒤, 참외 안의 씨를 다 파내고 껍질 채 그대로 와작 씹어 먹는 맛이 좋다. 참외 껍질을 깎아서 먹는 맛이 껍질 채 먹는 맛을 따라오지 못한다.


바나나, 귤 정도를 빼고는 포도나 자두, 복숭아 등 다른 과일은 껍질 채 먹는 게 훨씬 맛있다. 아마도 아버지는 한 손에 자신이 만든 자랑스러운 과도를 들고 사과를 깎아서 자식들에게 먹이고픈 그런 꿈이 있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어떤 무엇인가를 잔뜩 해주고 싶지만 그런 여건이 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고 다른 것에서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던 대부분의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요즘은 여름휴가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피서였다. 집집마다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여름방학이 되면 대부분의 가정집에서 피서를 갔다. 피서를 가면 아버지들은 늘 가족 앞에서 망가졌다. 수박 통을 깎아서 머리에 쓰고 아이들과 놀아주고 아이들을 튜브에 태워서 개울에 데리고 갔다. 평소에 무뚝뚝해서 표현 할길 없었던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는 날이었다. 비록 그 당시에는 아이들이 그런 아버지의 마음을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똑같이 그렇게 아이들을 위해서 하고 있다. 인간의 삶은 정말 알 수가 없다. 요즘은 돈을 잘 벌어서 아이들에게 좋은 휴대전화에 구글 적립카드를 선물로 주는 게 더 나을까. 아무튼 인간은 알 수 없고 사과나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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