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드는 생각입니다. 이건 정말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이 가끔 드는 생각이 저를 굉장히 괴롭힙니다. 저를 매몰차게 구석으로 몰 때가 있습니다. 지나치는 어떤 한 마디를 들었을 뿐인데 그 말이 내내 머리를 헤집고 다니면서 규칙과 정리해 놓은 모든 것들을 다 무너트립니다. 그 한 마디를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그저 흘려버리면 그만인 말, 넘기면 아무것도 아닌 말인데 부유물처럼 머릿속에서 떠다니며 저를 괴롭힙니다.
그럴 때는 한 없이 숨고 싶고 웅크리고 앉아서 주위를 어둡게 하고 나오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한없이 작아져서 내 몸에서 떨어져 나옵니다. 괴로워하는 저의 모습이 보입니다. 작아진 저는 괴로워하는 저의 코를 통해 들어가서 머리에 도달합니다. 구불구불 힘든 길을 따라 어렵게 뇌로 올라갑니다. 그리고 여러 구간 중 감정을 조절하는 구간의 신경을 또각 끊습니다. 그런 작업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절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당신의 기억마저 같이 없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저는 관계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인간이 인간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는 게 저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지나치는 어떤 한 마디가 이 사이에 낀 음식 찌꺼기처럼 혀 끝으로 하루 종일 만져집니다. 저에게 관계란 그런 것입니다. 관계를 축소하고 축소해서 소멸하고 싶습니다.
당신에게 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이 평온할 텐데요. 당신이 있는 그곳에는 내내 따뜻하여 눈도 내리지 않고 추위 때문에 등을 굽히지 않아도 될 텐데요. 눈이란 내리면 모든 건물과 사람이 다 맞습니다. 눈은 죽음과 동일하다고 생각합니다. 평등하거든요. 죽음만큼 평등한 것은 없습니다. 차별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눈이 좋으냐고 묻는다면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사실 눈이 좋다고 느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안갯속을 계속 걷고 있는 기분입니다. 시간을 보면 1시간을 걸었는데 채 5미터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날개를 떼어버린 파리가 한 곳에서 뱅뱅 도는 것처럼 어지럽기만 합니다. 마음으로 생각을 하려고 합니다. 물론 잘 안 됩니다. 생각은 언제나 머리로 해왔기 때문에 온 마음을 다해 생각하는 것은 쉽지 만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생각을 해야만 당신께 조금이라도 닿는다는 것을 압니다.
당신에게 답장이 없는 편지를 그동안 얼마나 부쳤는지 모릅니다. 물론 써놓고 부치지 못한 편지도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은 헤어 나올 수 없는 안개 속인 걸 알지만 계속 걷는 이유는 그 안에서 희미한 당신의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신의 모습이 자꾸 흐려집니다. 그게 겁이 납니다. 언제나 일정한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당신에게 닿고 싶습니다. 또 편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