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은 무얼 생각하고 있을까.
6월 5일에 때 아닌 차가운 비가 내렸다. 유월의 비였다. 오월 내내 뜨거운 여름 같았는데 유월에 비가 내려 세상을 차갑게 적셨다. 비가 내려도 조깅을 하러 나갔다가 비가 너무 와서 산스장 같은 곳에서 40분가량 몸을 풀었다. 스쾃을 여러 번 하고, 팔 굽혀 펴기를 하다 보면 비가 오는 쌀쌀한 날에도 땀이 난다.
그곳에서 한 노인을 만났다. 노인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한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추워서 땀을 내느라 몰랐는데 이렇게 비가 쏟아지는 추운 날에 이런 곳에서? 하는 생각에 돌아보니 노인은 그래도 따뜻한 옷을 입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만히 앉아 한 시간 넘게 있으면 추울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인은 전혀 움직임이 없었다.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얼굴이 너무 까맸다.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정도로 얼굴이 까맣게 보였다.
노인은 꼼짝도 않은 채 앉아서 무슨 생각을 할까. 노인의 굽은 등을 보면 그의 삶이 등에 묻어나는 것 같다. 노인은 저렇게 앉아서 지난 세월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고 있을까. 자식들 생각을 할까. 아니면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있을까. 알 수는 없다. 노인은 추운지 새까만 양손을 허벅지 밑으로 넣어서 앉아 있었다.
나의 아버지는 노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등졌다. 나에게 굽은 등을 보이기 싫어서였을까. 저 노인도 굽은 등을 자식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이렇게 비가 내리는 날에도 이런 곳까지 나와서 굽은 등으로 멍하게 한 곳을 바라보는 것일까. 노인의 굽은 등을 보니 ‘아버지와 이토 씨’에서 집이 홀라당 타 버리고 딸의 집에서 굽은 등으로 멍하게 화단을 바라보는 노인이 된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타인은 다가갈 수 있지만 자식은 다가갈 수 없는 등이 노인의 굽은 등이다. 그런 등에는 노인의 세계가 있다.
바닷가에서도 노인들의 등을 볼 수 있다. 겨울이든 여름이든 날이 좋으면 바닷가에도 소설 속 난쟁이들이 집에서 나오는 것처럼 노인들이 나와서 바닷가 벤치에 죽 앉아서 등을 구부리고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바다를 보라보는 노인의 등을 보고 있으면 옆에 심어놓은 나무 같아서 바다에 조금씩 숨을 빼앗기고 있다는 착각이 든다. 바다에 영혼이라도 빨려 버린 것처럼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몇 시간이고 등을 구부리고 가만히 바다의 너울거림을 바라본다.
나는 그런 노인의 등을 바라본다. 그들의 등에는 외로움보다는 고독이 들어차 있다. 더없이 고독한 노인의 등이 노인의 행성을 만든다. 주파수는 89.09 헤르츠다. 문을 닫고 불을 끄면 비로소 밝아지는 세계다. 영혼이 이주하는 소리가 들리고 호우 호우 하는 리틀 피플들이 바다의 갈림길에서 올라온다. 갈색 바람의 행로다.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노인의 행성으로 그들은 조금씩 그곳에서 가고 있다. 노인은 노인의 행성으로 가고 있다. 누구도 모르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자신 만의 고독한 문제를 끌어안고 행성으로 한 발 내딛기 위한 심호흡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곳에 앉아서 리틀 피플들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