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새것 같아



매일 조깅을 하면서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듣는다. 주머니가 있는 옷을 입지 못하는, 땀이 무지막지하게 나는 한 여름인 7, 8월에는 아이팟 셔플로 음악을 들으며 달린다. 셔플은 소매나 어딘가에 꼽아서 다니면 된다. 너문 가볍기 때문에 어디에서인지 없어지면 도저히 찾을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카세트테이프가 많은 나는 한 겨울에는 가끔씩 미니 카세트를 들고 조깅을 하는데 오토리버스 기능이 없어서 A면이 끝나면 벌벌 떨면서 뒤집어 줘야 한다.


어떻든 주로 아이팟 클래식으로 음악을 들으며 조깅을 한다. 하루에 보통 1시간 30분이나 2시간 정도 뛰거나 걷는데 그동안 들을 수 있는 음악이 그렇게 많지 않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아이팟은 160기가인가? 제일 큰 용량의 아이팟 클래식이다. 그 안에 노래만 한 2000곡 들어있다. 저장용량에 비해서는 적은 양이다. 그래도 2000곡을 다 들으려면 꽤나 시간이 걸린다.


하드 디스크가 들어있어서 침수나 물리적인 힘에 약한데 나는 막 쓰고 있는 데도 아직 고장은 없는 것이 신기하다. 단지 오래되어서 배터리가 초기만큼 오래가지 않는다. 그래서 3일에 한 번씩은 충전을 시켜준다. 구입했을 때 케이스를 씌워놓고 계속 다니다가 가끔 닦을 때나 분리를 해서 그런지 케이스를 빼버리면 아이팟 클래식 본체는 새것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매일 들고 다니며 아무 곳에나 넣어두고 막 꺼내서 휙휙 사용하는데 이상하다면 이상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들고 다니는 60년 된 올림푸스 필름 카메라도 그저 딱 보면 완전 새것처럼 보인다. 또 루믹스 렉삼이도 거의 새것과 다름없다. 심지어는 운동화도(조깅을 할 때 신는 운동화가 아닌) 7년씩 신고 다니고 있다. 특히 금방 닳아 없어질 것만 같은 컨버스화는 2015년에 구입을 했는데 아직도 신고 있다. 아이패드에는 보호필름 따위 붙이지도 않고 사용하는데, 벌써 6년이나 됐는데도 스크래치가 가거나 오래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도, 아이팟도, 패드도 운동화도 조심조심 사용하지도 않는데 그런 것을 보면 그건 개인에 붙어 있는 특성이 그렇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특성이라는 것이 물품에게 까지 스며들어 버린 것이 아닐까. 생각해보면 카메라는 사진을 찍는 용도이기에 사진을 찍지 않을 때는 그저 어딘가에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고, 운동화도 조깅을 할 때 빼고는 나는 거의 앉아 있기 때문에 딱히 운동화가 재빨리 닳을 기회가 적다. 아이패드 역시 늘 사용하고 있지만 내가 이 기기로 주로 하는 건 그저 키보드를 블루투스로 연결해서 공모전에 보내는 소설을 적는 데 사용할 뿐이다. 양손에 들고 과격하게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구입했을 때 그 모습 그대로 유지되지 않았나 싶다. 아이팟 클래식도 마찬가지다. 매일 조깅을 하는, 한두 시간 정도 사용을 할 뿐이다. 게다가 한 여름에는 셔플에게 양보하니 케이스 속에 보호받는 아이팟이 그렇게 닳을 이유도 없다.


아이팟 클래식 이야기를 하기로 했으니 아이팟 클래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노래가 2천 곡 정도가 들어있는데 팝이 천곡, 가요가 천곡 정도로 반반씩 들어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인도 노래가 몇 곡이 있어서 왜? 하는 생각을 했다. 노래를 보통 내가 집어넣었는데 예전에 후배에게 부탁을 해서 마돈나 노래를 넣어 달라고 했는데 시크릿에 마돈나를 넣어놔서 뭐뭐야;; 했던 적도 있었다. 또 내가 그러진 않았을 텐데 마이큐의 노래가 거의 10곡 정도가 들어 있었다. 종교적인 색감이 있는 노래들인데 또 듣다 보면 리듬이 좋다. 팝은 주로 시끄럽고 강렬한 메틀이 많을 줄 알았는데 또 생각 외로 조용한 노래들이 많았다. 특히 사진에서처럼 조니 미첼의 노래가 많았고, 제니스 조플린이 노래도 꽤나 있었다. 또는 빠르고 파괴적인 음악을 했던 핼러윈의 캐논 변주곡 록 버전이나(조깅할 때 들으면 주체할 수 없음) 마이클 잭슨 노래가 엄청 있어서 좋다.


무엇보다 좋은 건 데이라이트의 노래가 많이 있었다. 데이라이트의 데이라이트, 엔젤 송, 아는 여자부터 머리를 자르고 등 데이라이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데이라이트의 love present는 가사도 좋고, 이때의 데이라이트 목소리가 정말 좋았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데이라이트의 이때 목소리를 요즘의 볼빨간사춘기에서 느껴진다. 라디오에서도 데이라이트의 노래가 흘러나왔고, 아직 길거리에 레코드 가게가 있어서 스피커를 통해서 데이라이트의 노래가 나왔다.


운명의 이끌림만을 그냥 믿어보는 걸

한차례 쏟아지는 소나기라 생각해 괜찮을 것 같은데

느낌이 좋아 아늑한 떨림 따뜻하고 포근한 인형 같아

주문을 걸어 묶어버릴 거야 부드러운 한숨으로 느껴봐

달콤한 환상이 좋아 말해줘 사랑한다고


가사가 정말 한 편의 달콤한 러브러브 일본 영화 같다. 요즘처럼 힘들고 지치고 쓰러지고 막막함이 없는, 그저 맑고 깨끗한 첫눈에 반한 사랑 같은 노래 가사다. 그러다가 데이라이트의 목소리가 확 변했다. 좀 더 깊어졌고 좀 더 성숙해졌지만 데이라이트의 색이 옅어진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시간에 두들겨 맞듯이 2022년이 되어서 보니 모두가 사라졌다. 데이라이트를 검색해봐도 이젠 더 이상 뭔가를 알 수가 없다. 유튜브의 근황 올림픽은 어서 데이라이트를 찾아보길. 여하튼 요즘 아이팟 클래식에 눈독 들이는 사람이 생겼다. 귀찮다. 정말.

셔플과 카세트 플레이어


케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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