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또 합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밤하늘이 이리도 아름답군요. 눈물이 났습니다.


산다는 건 무엇일까요. 인간이 삶을 살아간다는 건 살아내는 것이라고 근간에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에게 온 많은 감정을 애써 외면하는 것입니다. 내가 준 상처보다 내가 받은 상처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건 무서운 일입니다.


산다는 건 그렇습니다. 나의 감정을 숨기며 하루를 버티는 것입니다. 식사를 하는 곳이 고통이 되었습니다. 눈앞에 차려 놓은 음식을 먹고 나면 내 몸은 흙처럼 변해버리는 기분이 듭니다. 어째서 이렇게 하루를 고통으로 견디며 살아야 하는 걸까요.


버티는 힘을 나의 감정을 차단하는 것에서 나옵니다. 저는 늘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면을 쓰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의 원래 얼굴이 무엇인지 잊어버렸습니다. 내 감정이라는 건, 남에게 아주 몹쓸 것이라 내보인다면 가까운 사람일수록 힘들어합니다.


어느 날 꿈에 선풍기가 나왔습니다. 선풍기는 18년 된 선풍기였는데 그 선풍기가 생명이 꺼지는 꿈이었습니다. 쿠덜덜하는 소리가 시끄럽고 리모컨도 없는 참 불편한 선풍기여서, 이 놈의 고물, 속 썩일 때마다 갖다 버리고 싶었지만 어떻게든 고쳐서 사용했습니다. 그런 선풍기의 생명이 끝이 났습니다. 나는 어쩌자고 선풍기를 버리기 전에 분해하여 구석구석 닦았습니다. 늙고 닳은 선풍기는 아기처럼 몸을 맡기고 물에 젖어들었습니다.


식욕이 왕성할 때가 있었습니다. 일상은 모든 것을 야금야금 먹어 치울 정도로 식욕이 좋았지요. 그랬던 제가 지금은 음식이 고통스럽게만 느껴집니다. 그리고 음식을 멀리할수록 배가 자주 고픕니다. 배가 너무 고플 때에는 정신이 아찔해지며 그 순간 몹시도 맑아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통증에 무뎌지는 날이 올까요. 꿈에서 생명이 꺼진 선풍기를 생각하면 꽤 사무칩니다.


천천히 하겠습니다. 어차피 빨리 무엇인가를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점점 더워지는 날이 될 것 같습니다. 건강에 유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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