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답한 호러영화를 봤다. 한 시간 반 중에 40분을 체기 있게 답답하게 흘러간다. 오컬트는 좀비물이나 뱀파이어물과는 다르게 장면의 점프스퀘어로 공포를 주지 않는다. 스토리가 보는 사람을 야금야금 갉아 먹어야 거대한 오컬트적 공포에 빠져들 수 있다. 유전이 그랬고, 미드소마는 고요하게 흐르지만 답답함이 없다. 오히려 찬란한 대낮의 여유로움이 주는 긴장이 보는 내내 흐른다. 곡성도 답답함이란 없다
이 영화는 막냇동생이 할머니이고 아버지의 학대 속에 아이를 잉태하고 바로 밑의 동생이 그런 아버지를 두둔해서 큰 언니가 감옥에 가서 8년을 살다 나오고, 그 과정을 악마를 통해 서로 알게 되어서 자살을 꾀하고 썸띵썸띵
이런 근친상간에 대한 망가짐은 악마가 아니더라도 스릴러 장르로 했으면 더 나을 수 있었다. 요컨대 감옥에서 큰 언니를 담당하던 정신과 의시가 그런 비밀을 서로에게 하나씩 풀어 놓음으로써 악마가 아닌 서로가 인간 악마가 되어 칼부림을 하면 화면으로 더 보기에 빠져드는 스릴러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문제를 다 치우고라도 답답하다. 여러 종류의 답답함이 있는데 고구마를 먹고 소화제를 먹었음에도 체기가 더 올라오는 답답이다. 이 영화에서 악마로 빙의한 저 꼬마아이가 없었다면 어쩔뻔봤냐
영화에서 벗어난 이야기지만 먹기 편하고 맛있어서 김밥을 왕왕 사먹는다. 김밥이 김밥전문점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오래 되지 않았다. 김밥은 어릴 때 소풍 갈 때에나 집에서 새벽부터 분주하게 준비를 해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이었다
김밥은 손이 많이 간다. 들어가는 속 재료를 미리 기름에 익히고 모양을 잡아 놔야한다. 그래야 김밥을 돌돌 말때 그 속에서 잘 어우러지기 때문이다. 소풍이 아니면 거의 맛 볼 수 없는 음식이기에 김밥을 먹을 수 있는 소풍이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김밥이 맛있는 이유는 가끔 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명절에도 김밥은 먹을 수 없고 크리스마스라고 해서 김밥을 먹을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소풍이나 생일이 되어야만 먹을 수 있었기에 김밥은 맛있는 음식이었다
김밥이 근래에 답답한 음식이 되었다. 어디서든, 자주 사먹을 수 있는 김밥은 더 이상 맛있는 음식보다는 답답한 음식에 가까워졌다. 싸먹었는 김밥에서 사먹는 김밥에는 어떤 무엇이 있다. 그 무엇이 무엇이냐고 물어도 잘 설명 할 수는 없지만 소풍가서 솔밭에 앉아 김밥을 먹다 떨어트리면 김밥에 묻은 솔잎을 털어내며 먹었던 김밥은 지금은 없다
그럼에도 김밥을 왕왕 사먹는 건 김밥은 변했어도 김밥을 먹는 행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