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이 재미있어서 몇몇 에피소드를 본적이 있다. 거기의 덕선이는 참 철없고 놀기 좋아하는 여고생이다. 공부는 뒷전이고 춤추기 좋아하고 매일 엄마에게 반찬투정이다. 언니 옷 훔쳐 입고 나갈 날만 고대하고 아빠가 아끼는 카메라 들고 수확여행 갔다가 카메라 잊어버리고 열채면 노을이 괴롭히고 언니와 매일 싸우고 맛있는 건 친구고 뭐고 없다

 

덕선이는 공부 못하고 말썽꾸러기에 놀기 좋아하는 아이로 어른들이 썩 좋아하지 않는다. 덕선이 옆에는 까칠한 반장이 앉아 있는데 늘 인상을 쓰고 있고 시끄럽게 하면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친다. 반장은 친구도 없다. 늘 혼자서 밥 먹는 반장에게 같이 먹자고 한다

 

반장은 그런 덕선이에게 조금은 마음을 연다. 소시지 반찬을 싸 온 반장. 덕선이는 덥석 집어 먹는다. 그렇게 반장과 같이 앉아 점심을 먹은지 여러 날이 흘렀다. 어느 날 반장의 엄마가 학교로 찾아와 덕선이를 찾았다. 학교 벤치에 앉아서 반장엄마의 말을 듣는 낯빛 어두운 덕선이.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는 친구들

 

그날 덕선이가 교실에 오니 반장이 간질병이 도저 바닥에 쓰러져 있고 아이들이 빙 둘러싸 바라보고만 있다. 반장은 입에서 거품을 물고 몸을 떨고 있다. 덕선이는 아이들에게 쳐다보지 말라며 반장의 몸을 주무른다

 

양호실에서 깨어난 반장. 양호선생님이 괜찮냐고 묻는데 반장은 자신의 그런 병이 아이들이에게 발각된 게 창피했다. 그만 눈물이 나왔다. 이제 학교를 다니지 못할 것 같았다. 착잡한 마음에 반장이 교실로 들어오니 덕선이가 점심시간이니 밥을 먹자고 한다. 아이들이 나의 병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게 대한다. 하지만 그건 겉으로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위해서다. 반장은 그런 생각을 한다

 

멤버가 전부 도시락을 펼쳤는데 덕선이가 수저를 가지고 오지 않았다. 덕선이는 친구들에게 하나 빌려 달라고 한다. 모두가 포크숟가락이다. 그때 반장은 수저통을 열었는데 젓가락과 숟가락이 있다. 하지만 내가 먹던 숟가락으로 누군가 먹는다면 내 병이 옮긴다고 생각할 텐데,라고 하는 순간 덕선이가 아싸,라며 반장의 숟가락을 뺏어서 입으로 죽 빨아 버린다

 

그때만큼은 덕선이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는다. 그냥 친구의 숟가락을 하나 빌려서 밥을 먹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반장의 눈에 비친 덕선이는 나를 병이 있는 아이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미옥이와 자현이처럼 그냥 똑같은 친구로 생각해주고 있다

 

그 장면은 짧게 지나갔지만 꽤 강렬하게 응답하라 시리즈를 통틀어 기억되고 있다. 연말에 안 좋고 별로인 기사들만 잔뜩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덕선이 같은 기분 좋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기사가 있었다. 양준일의 소환이 그렇고, 찬미 엄마 이야기가 그렇다

 

서울에서 가정형편이 안 좋은 학생들에게 복지카드를 주고 그 카드를 들고 지정된 식당에 가서 그 카드를 내밀면 식사를 무료로 할 수 있다. 하지만 카드를 꺼내는 순간 나의 치부가 드러난다. 그런데 한 식당에서 카드를 꺼내지 않아도 된다, 그냥 와서 식사를 해라,라고 했다. 한끼 식사하는데 굳이 복지카드를 꺼내면서 까지 밥을 먹을 필요는 없다, 그저 와서 먹기만 해라,라고 시작해서 지금은 200군데의 식당에서 복지카드 없이 학생들에게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세상이 반장처럼 숨기고 싶은 아픔을 가지고 있는데 덕선이 같은 사람이 아픔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일이 일어난다. 보통 이런 일을 기적이라고 한다. 내가 비록 덕선이 같은 사람이 되진 못해도 덕선이 같은 사람들이 정말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록 화면이지만 그들의 맑은 모습과 순수한 모습에서 이렇게 정화되는 기분이 드는 것은 기적을 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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