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 트위스트의 이야기는 모두가 알고 있다. 많은 버전이 있지만 영화로 사랑을 받았던 작품은 2005년의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올리버 트위스트였다. 거기서 거지소굴의 왕초 페이긴으로 나온 벤 킹슬리의 연기가 좋았다. 영화를 이렇게 처절하고 멋지게 만들어 놓고 로만 폴란스키는 미성년자를 많이도 성폭행하는 바람에 퇴색시켰다

 

영화로 많이 만들어졌지만 68년에 만들어진 뮤지컬 영화 ‘올리버’를 여러 번 봤다. 올리버로 나온 마크 레스터는 정말 미소년으로 거지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순수하고 반짝이는 얼굴을 하고 있지만 밑바닥의 인생을 노래한다

 

영화는 절망 속에서 희망이 있고 칠흑의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찰스 디킨스가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찰스 디킨스가 올리버 같은 생활을 했기 때문이다. 디킨스의 아버지가 빚 때문에 감옥에 가는 바람에 구두 공장에서 올리버 같은 착취를 당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하루 10시간 넘게 일만 했다. 거기서 디킨스는 어린 눈으로 많은 것을 보고 말았다. 이런 경험들이 노동자들을 위하는 소설을 통해 사회를 비판했다. 올리버 트위스트 영화를 보면 고아들만 모인 곳에서 저녁 시간에 먹는 것으로는 허기가 져 뽑기를 통해 올리버가 먹을 것을 더 달라고 했다가 팔려 나가게 된다

 

고아 아이들은 젓가락 같은 몸인데 상류층은 뒤룩뒤룩 돼지런한 생활을 하고 있다. 찰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서 맬서스의 인구론을 비판했다. 맬서스는 당시의 상류층으로 성직자이자 사상가이자 경제학자였다. 부유한 지주의 집에서 태어나 후에 ‘인구론’을 써 냈는데, 인구론의 골자는 가난한 사람은 죽게 내버려 두라는 것이다

 

빈민층을 구제해봐야 쓸모없는 인구만 늘어날 뿐이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가난한 자들이 살아있는 것은 영국에, 지구에 도움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이 인구론의 골자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를 통해 뒤룩뒤룩하고 생각하기 싫어하는 상류층의 사람들을 맬서스에 비유했다

 

이후 디킨스는 미국으로 낭독 여행을 떠나는데 거기서 대초원의 미국을 보게 된다. 자유롭게 방목하는 소와 이타적인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거기서 디킨스는 맬서스의 인구론이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영국으로 돌아와서 스크루지가 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집필한다. 디킨스는 소설에, 눈은 욕심 때문에 늘 벌겋게 충혈되어있고 코는 악마처럼 메부리코에 볼에는 살이 없어서 움푹 꺼졌고 목소리는 갈라진, 냉기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스크루지라고 했는데 그 스크루지의 모델이 맬서스였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구호 좀 하라고 스크루지에게 찾아온다. 거기서 스크루지는 돈이 없다며, 일 못하고 가난한 자들은 빈민구호단체에 보내라고 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거기에 가느니 죽는 게 낫다고 한다,라고 말한다. 스크루지는 그렇다면 가난한 자들은 죽으면 되겠네, 죽으라고 해, 인구도 많은데 죽는 게 낫지 않냐,라고 말한다

 

스크루지는 영혼 2 인가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너의 부는 죽어간 사람들의 피와 살이 만들어낸 것이다, 같은 말을 듣게 된다. 디킨스는 맬서스의 인구론을 반박하면서 맬서스가 반성하기를 소설을 통해 바랐다. 그래서 맬서스가 스크루지처럼 하층민을 도와줬나 한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스크루지 이야기는 그해 12월 17일인가 출간을 하게 되고 불과 25일까지(인가 말년인가) 6,000부가 팔려나가면서 크리스마스 캐럴은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올리버 같은 영화를 보면 오래된 영화라고 해서 지금 영화보다 재미가 떨어진다는 게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마크 레스터는 이후 마이클 잭슨의 딸 패리스가 자신의 딸이라고 했으며 마이클에게 자신의 정자를 줬다는 인터뷰를 여러 곳에서 하기도 했다. 잭슨 패리스의 근래 모습은 섀넌 도허티와 패리스 힐튼의 얼굴이 섞여 있는, 미국에서도 비벌리힐스에서나 볼 법한 외모를 지니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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