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지내다 보면 알 수 없는 깨달음에 도달할 때가 있다. 남들에게 표를 내진 않았지만 내가 나에게 고집을 부려 지금까지 끌고 온 것들에게서 얻는 깨달음 같은 것들. 그렇다고는 하나 무슨 득도를 했다는 말은 아니다

 

몇 달 동안 에스프레소의 맛에 빠져들었는데 거기에 또 제임슨의 맛에 슬슬 중독이 되어 간다. 이런 맛에 빠지게 되면 한 모금의 여유가 가져오는 일상의 도피와 흔히 도파민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몸속에서 와아 하며 쏟아져 나오는 대 만족감, 무엇보다 시각적인 풍류와 듣기 괜찮은 이야기와 궁합은 말로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간 주로 마셨던 맥주, 와인, 막걸리는 묘하게도 배가 불러야 취기가 조금 오르는데 포감만이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제임슨은 맛도 맛이지만 몇 모금 홀짝홀짝하고 나면 나에게 일상의 도피를 가져다주는 것 같은 기분을 준다. 무엇보다 캐러멜 같은 끝 맛이 우우우 하며 미미하게 죽 남아있다

 

제임슨을 마시게 된 건 두 달 정도 되었는데 넷플릭스 마블 드라마 시리즈 때문이기도 하다. 실시간으로 볼 때는 몰랐다가 두 달 전부터 루크 케이지, 데어 데블, 퍼니셔를 정주행하고 있는데 너도나도 제임슨을 맛있게도 마시는 것이다

 

첫 장면은 데어 데블 시즌 3에서 케런 페이지가 자본으로 권력과 내무부(우리나라로 치면)를 휘어잡은 킹핀인 윌슨 피스크에 모든 것이 무너져 끝까지 내몰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을 때 마시던 장면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장면은 루크 케이지 시즌 1의 나이트 형사가 제임슨을 들고 마시는 장면이다. 캡처를 하지 못했지만 퍼니셔에서도 마다니 형사가 쪼그리고 앉아서 수통에 담아서 마시는 술이 제임슨이 아닌가 생각한다

 

데어 데블은 9살에 화악 약품이 눈에 들어감으로 시력을 상실하는 대신 다른 기능들이 대거 발달해서 악을 물리치는 영웅의 이야기고 루크 케이지는 이런저런 이유로 총알을 막아내는 피부를 가진 거침없는 헐크 같은 모습의 히어로로 악을 물리친다

 

데어 데블과 루크 케이지의 공통점은 총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 하지만 다른 점은 데어 데블은 변호사라 법이 악의 모습 그 위에 있음을 알리려고 하다 보니 고구마를 먹은 듯한 모습으로 악에 맞서는데 루크 케이지는 시원시원하다. 무엇보다 총알이 루크 케이지의 몸을 뚫지 못한다. 원래 형사였던 루크 케이지는 사람들을 죽이지 않고 악을 물리치려 하다 보니 또 이런저런 상황에 말려든다

 

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히어로가 그저 한 인간인 퍼니셔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악을 행하는 악당에게 자비는 1도 찾아볼 수 없다. 악당의 이야기를 듣고 할 것도 없다. 그저 방아쇠를 당겨서 얼굴에 구멍을 낼 뿐이다

 

데어 데블은 시즌 4를 예고하며 끝났지만 넷플릭스에서 제작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마블 티브이 시리즈가 자본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13부작을 10부작으로 하자고 넷플릭스는 디즈니사에게 여러 번 부탁 같은 것을 했다고 했지만 절대 안 된다고 했다. 공룡 같은 넷플릭스도 더 이상의 마블 티브이 시리즈를 제작하는 것에 무리가 온 것 같다

 

데어 데블에는 소설적인 대사가 철학적인 물음을 던지는 장면이 많다. 요컨대, 왜 심각하다는 얘길 안 했던 거죠?라고 물으니, 말하는 순간 사실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야, 같은 말이라든가

 

우리 모두 남들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사정을 끌어안고 살아가죠.

빠지는 게 아니라 빠지는 기분이에요, 전보다 깊게.

과거를 되돌릴 순 없지만 같은 실수를 두 번 하고 싶진 않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날 밀어내려 하면 힘을 내서 더 세게 잡아줘야 하는 거예요.

마지막엔 모두 괜찮아질 거다, 괜찮지 않으면 마지막이 아니다

 

같은 대사를 엄청 받아 적어 놨다. 워드로도 2페이지가 넘는 것 같다. 영화 속 이 녀석들 덕분에 제임슨에 맛이 홀딱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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