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지금까지 인생에 ‘어쩌다 보니’는 늘 따라다닌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무엇이 되었고 이제는 떼고
싶은 생각도 없고 그러기도 귀찮아졌다. 나의 인생을 한 마디로 줄이면 ‘어쩌다 보니’이다. 계획도 없고 걱정도 별로 없이 어쩌다 보니 이렇게
굴러와 버렸다. 이미 그렇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에서 사진부 생활을 했고, 그러면서 어쩌다 보니 백남준을 알게 되어 겨울방학에는
야간열차를 타고 서울로 가서 백남준 아트전을 보고 내려오게 되었다. 어쩌다 타게 된 야간열차는 밤 11시에 타면 새벽 5시에 청량리역에 도착하는
느려터진 기차였는데 어쩌다 타게 된 야간열차에서는 시간이 더디게 갔는데 지겹다는 느낌보다 하고 싶은 상상을 마음대로 하다가 졸다가 눈 떠서 물
마시고 어두운 창밖을 내다보고 다시 졸다가 생각하다,를 반복해도 목적지는 멀기만 했다
청량리역에 내려 배가 고파 어쩌다 들어간 새벽의 육개장 집에서 먹은 육개장 덕분에 서울만 가면 새벽의
육개장을 먹게 되었다. 육개장이 앞에 놓이면 육개장 특유의 냄새가 확 올라온다. 후추를 뿌려 먹었는지는 기억이 없지만 후추를 추추 뿌리고 밥을
말아서 한 입 먹으면 기차에서 내려 서울의 추위가 온몸에 달라붙었는데 그것이 한순간에 떨어져 나가는 것 같았다
어쩌다 서울에 가게 되면 야간열차를 고집하게 되고 야간열차에서 내리면 청량리역 근처에 있던, 2층이
다방이고 1층이 육개장을 파는 그 집에 슥 들어가서 조미료 향이 확 나는 육개장을 먹게 되었다. 그렇게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데
이 ‘어쩌다 보니’는 가끔 발목을 잡기도 한다. 어쩌다 보니 하게 된 후원활동은 담근 발을 빼지 못
하다가 12년이 넘어가니 후원하는 아동이 바뀌었다. 맙소사. 어쩌다 보니 하게 된 사진은 몇 번의 전시회를 하면서 빈털터리가 되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 찍어주게 된 청각장애가 있는 초딩 아이들은 대학생이 될 때까지 찍어주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보게 된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는 한
영화당 스무 번은 넘게 봤고 어쩌다 보니 병들어 버려진 개들을 주워와서 같이 뒹굴며 지내다 보니 18년이 지나가 버렸다. 어쩌다 보니 조깅을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생활을 하는데 어떤 점에 집중을 하는 데 도움이 되고, 어쩌다 보니 한두 개씩 모은 피규어와 인형이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내가 집을 나오는 순간 동네 할매들이 손주들을 데리고 우리집으로 삼삼오오 몰려오는 모양이다. 내
인생은 ‘어쩌다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