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한다. 혼자서는 절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랬을 때 누군가 나를 인정해주면 그것을 힘이나 동력으로 삼고 생활을 헤쳐나간다

 

이 영화에서 호아킨 피닉스는 누군가에게 의지하지도, 누군가가 의지하게 하지도 못하게 한 채 벗어날 수 없는 지난 과거의 트라우마에 존속되어 두려움과 절망과 분노와 자살의 경계에 머물러 지낸다

 

마지막 발랄한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컵에 남아있는 음료를 쪽 빨아먹으며 영화는 끝이 나고 호아킨 피닉스 즉 조는 니나에게 의지할 것이고, 자신과 비슷한 니나역시 조에게 의지를 할 것이라고 믿으며 나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을 내뱉게 한다

 

호아킨 피닉스가 실제인지 분간도 가지 않게 연기를 하는 건 어쩌면 리버 피닉스 때문일지도 모른다. 리버 피닉스의 동생인 호아킨은 어쩐지 형의 몫까지 자신이 해야 한다는 어떤 사명 같은 것을 각인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형인 리버 피닉스는 1993년 시월에 죽었다. 제임스 딘이 환생한 듯한 모습의 이 잘생기고 멋진, 당시 전 세계 동년배 모두가 사랑한 배우인 리버 피닉스는 시월의 마지막 날 할로윈데이에 죽음을 맞이했다. 리버 피닉스에 대해서 좀 더 멋지게 이야기하기 위해 김혜리 기자의 ‘영화야 미안해’를 소환해야 했다. 이 책에 리버 피닉스에 대한 그녀의 찬란한 글이 있다. 그 글은 2000년에 쓰였고 이 책은 7년 후에 나온 책이다

 

김혜리 기자는 동년배인 리버 피닉스를 참 좋아했다. 리버 피닉스의 다음 영화를 기다리던 김혜리 기자는 그의 영화 소식 대신 죽음 소식을 받았다. 책에 이런 글이 있다. - 리버 피닉스에 대해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고 마음먹었다면 아마 비슷한 이유였으리라. 그러나 시간은 모든 것을 희미하게 한다. 다짐도, 그 다짐의 이유도, 살았다면 리버 피닉스는 이제 서른, 남은 그의 옛 팬들도 서른 언저리에 서성이고 있다. 어느 소설가는 ‘서른 살’을 가리켜 고함치는 능력을 잃은 대신, 기억의 그물을 던져 과거의 자신과 자신이 속했던 공간을 끌어올리는 것이 가능해지는 나이라고 썼다. 그가 남긴 영화와 그가 간 뒤 이곳저곳에서 찾아낸 ‘쪽지’ 조각들을 모아 다시 그리는 한 배우의 초상은, 특정한 세대에겐 바람 많은 한 시절과의 재회일지도 모른다. 끝내 땅 위에 둥지를 틀지 못했던 발 없는 새의 이름을, 바람 위에 다시 쓴다

 

리버 피닉스의 죽음을 그 누구보다 호아킨 피닉스가 슬퍼했을 것이다. 샤말란 감독이 연출한 호아킨 피닉스가 나온 ‘싸인’을 나는 몹시 좋아한다. 거기에서 호아킨은 인간이 가지는 두려움 그 너머의 두려움을 떨쳐내는 장면이 나온다. 여러 번 본 영화의 장면보다 그 장면이 머릿속에 양각으로 각인이 되어서 잊히지 않는다

 

영화 ‘싸인’을 좋아했는데 이 책에도 싸인에 관한 부분이 있다. 거의 10년 전에 읽은 책인데 그 부분만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던 것같다. -싸인은 강렬하고 무섭다. 슬프고 교훈적이다. 첨단 특수효과로 테두리를 친 액션을 기대한 관객은 이 SF 미스터리의 망토를 쓴 애절한 가족 드라마에 실망할 테지만 그것은 애초에 샤말란 영화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기대이니 위로까지 필요치는 않을 것이다.- 바로 그 싸인에 호아킨 피닉스가 나온다

 

너는 여기에 없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호아킨은 살이 늘어지도록 몸을 부풀렸다. 한쪽 가슴이 작고 찌그러졌다. 그래픽인 줄 알았다. 앉았을 때 살집 속으로 드러난 근육의 물결로 이전 FBI 시절 얼마나 혹독한 훈련을 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고작 영화 주제에. 고작 영화 주제에 던지는 메시지가 이리도 강렬했던 건 린 램지 감독의 전작인 ‘케빈에 대하여’도 그랬다

 

영화를 관통하는 음악이 아주 둔탁하고 뇌에 금을 그어 놓는다. 도대체 영화음악이 어떻게 이렇지? 하게 되어서 보니 저니 그린우드가 영화음악을 맡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라디오헤드의 저니가 크립의 쿠쿵 할 때처럼 아직 악동으로 생각하고 있었나 보다. 음악이 대단하다

 

호아킨 피닉스가 이제 조커에 도전한다. 현실인지 비현실 분간할 수 없는 연기를 하는 호아킨이 펼치는 조커는 또 어떻게 표현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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