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로 넘기지 마세요. 무서운 장면을 캡처했음.

 

한국에는 공포영화라고 부를 만한 영화가 없을까,라고 하는 공포영화 마니아에게는 흡족할 한국의 공포영화다. 물론 마나아라면 이 영화는 봤을 것이다. 14년에 나온 영화로 아직 한국에서는 이만큼 무섭고 고어적이고 경악스럽고 상상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자극을 주는 공포물은 나오지 않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주연은 이름이 알려진 고은아지만 또 다른 주연인 연송하가 열연을 했다. 연송하가 이 영화의 이야기를 죽 이끌어 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연송하가 영화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영화가 어떤 식인지, 영화는 어떻게 결말이 나는지 전부 보여준다.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다. (내용은 알아서 찾아보기 바랍니다) 욕설이 난무하고 비제이로 접속자 수와 ‘좋아요’를 받기 위해 금기를 넘는다. 그 수위가 상상의 경계를 넘어가는데 거기에 작은 화면으로 보는, 관음의 병에 걸린 시청자들의 본능을 자극하고 본색을 드러나게 한다.

 

이런 현상은 요즘 방송 취지를 망각하고 청취율 질주를 하는 골목식당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음식 루저로 보이게 만들어 비슷한 서민이 루저로 보이는 화면 속 식당. 주인을 씹는다. 한 개인을 욕하는데 대중이 모니터로 결집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폰을 들고 골목식당에서 루저에서 벗어난 곳을 찾아가 다시 개인 방송을 한다. 개인방송이라도 광고가 끼어 들고 자본이 들어오고,,, 여기서 사람들은 흑과 백으로 갈린다. 중간은 없다. 모두가 우르르 씹고 욕을 하는 것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는 대단하다.

 

그러니까 가난하게 자란 아이가 성공을 하여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게 아니라 가난한 자들을 업신여기고 갑을 관계를 확실히 맺는 것과 흡사하다.

 

영화의 미장센은 눈에 드러나는 타격은 없다. 소리와 어두운 화면 구성 속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에 따라 보는 이들이 상상을 하게 만든다. 그 상상은 몇 분 후 그대로 현실이 된다. 배가 갈리고 그 속에서 장기가 밖으로 나오고 고은아는 아파하다가 몸이 반으로 잘린다. 물론 타격이 그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보는 이들의 상상으로 그 장면이 연출되게 만들었다.

 

연송하는 살인마에게 잡혀 살기 위해 살인마에게 몸을 팔기로 한다. 하지만 욕망은 결국 죽음으로 가고 만다. 이 영화를 보면 거대한 도심지에 있는 수많은 모텔은 고립이며 고독, 폐쇄, 개인의 욕망이 집합된 하나의 또 다른 세계다. 마치 하루키의 어둠의 저편에 나오는 ‘알파빌’ 같은 곳이다.

 

치안이 잘 되어 있는 서울의 거대 도심 속 모텔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일단 터지고 나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욕망을 푸는 곳, 지하에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그래서 인간도 알지 못하는 지하실과 하수구들, 꽈리처럼 꼬인 전선들이 인간을 공격한다.

 

폭력이 마치 정당화되어 벌어지는지는 도심 속 고독의 공간에서 그 모든 것을 라이브로 생방송을 하는 모습은 14년이나 지금이나 5년후나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깉다. 욕망과 본능을 제도가 막을 수는 없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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