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겨울의
추억2
가방에서 카메라를 꺼내서 들고 내렸다. 애완동물
공동묘지는 의자 위에 올려놓았고 카메라를 꺼낸 가방 속에는 가져갈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 책 위에 같이 올려놓고 버스에서 내렸다. 내 카메라는
30년이 넘은 올림푸스 팬 시리즈 중에 하나다. 지금은 단종이 되어서 더 이상 새로운 팬 시리즈를 구입할 수 없는 카메라로 필름을 밀어 넣으면
하프 타입인 카메라다. 필름의 고유한 색감을 잘 표현해 주었으며 비교적 작동 방법이 간단하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겨울의 냉기가 얼굴을 훑었다. 아주 차가운 기운이 얼굴에 와닿았고 발밑으로 눈이
밟혔다. 버스에서 내려서 보는 세상도 온통 새하얀 눈밭으로 덮인 휴게소의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없는 쪽으로 가서 내가 낸 발자국을 카메라에
담았다. 찰칵 찰칵.
휴게소에는 차들이 밀려 들어와서 그런지
평일치고 사람들이 많았다. 어째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평일에도 끊임없이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여행을 가고 밑 지방에서 위 지방으로 올라가는지 알
수 없었다. 평일에는 대부분 일을 해야,까지 생각하고 더 이상은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휴게소에도 일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휴게소는 일터이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는 일탈 같은 곳인 것이다.
국도에 있는 작은 휴게소의 화장실과는 달랐다. 깔끔하고 깨끗하고 음악도 솔솔 흘러나왔다. 오줌을
시원하게 놨다. 소변이 몸에서 빠져나가면서 체온이 조금 빠져나갔다. 손을 씻고 말린 다음에 화장실 입구에 서서 팬으로 또 몇 컷의 사진을
담았다. 그러는 동안 추위가 몰려와서 휴게소 안으로 들어왔다.
휴게소 안에 풍기는 음식냄새와 사람들의 웅성거림은 어딘지 서로 어울리지 못했다. 그건 대부분이
급격하게 내리는 폭설 때문에 억지로 휴게소에 들어온 기운이 강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휴게소 안에 들어왔으니 사람들은 돈가스를 먹고, 핫도그를
먹고, 감자를 먹고, 김밥과 어묵과 콜라를 먹었다. 어쩐지 다른 날 보다 더 왁작 지껄하는 소리가 실내에
가득했다.
커피부스로 가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다. 종이컵에 담긴
에스프레소는 뱀파이어에서 짜낸 피처럼 보였다. 이만큼 큰 종이컵에 요만큼 되는 에스프레소를 담아서 창밖이 보이는 긴 바가 있는 곳으로 옮겼다.
에스프레소는 쓰다. 쓴 맛으로 먹는 것이 에스프레소인 것이다. 등을 구부리고 카메라의 아서를 건드리고
있었다.
그때 옆에도 사람들이 앉았다. 그중 한 여자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그 카메라는 디지털카메라인데 오래전 모델인 니콘 D70이었다. 카메라를 만지고 있으니 혹시 D70의 브라케팅에 대해서 물었다.
그래서 브라케팅으로 사진을 담으려면 이래이래 해서 담으라고 알려 주었다. 그러다 보니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D70은 아무래도 지난 카메라지만
꽤 잘 나온다, 어지간한 건 다 담아낼 수 있다, 잘 어울리는 렌즈가 탐론의 90미리 마이크로 렌즈, 일명 ‘90마’로 담아내면 노란색에
관해서는 기가 막힌다, 등등 이야기를 해 주었다.
옆에 앉은
사람들은 사진동호회인데 신입들이라 중급 이상 모이는 곳으로 마음먹고 가는 길에 이렇게 고립이 되었다고 했다. 다행히 나는 D70으로 몇 년 동안
사진을 담은 적이 있어서 그 카메라에 대해서는 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었다.
이야기를 할 땐 몰랐는데 D70을 들고, D70에 대해서 물어본 여자만 정장 차림이었다. 일행들은
모두가 등산복 차림이었는데 그 여자만 검은색 정장 차림에 색조화장과 눈 화장에 머리도 방금 숍에서 하고 온 것처럼 웨이브가 파도처럼 져 있었다.
얼굴을 보니 30대 초반? 중반?쯤 되어 보이는 여자였다. 일행은 등산복 차림의 남자들로 대체로 50대 전후로 보였다. 다른 여자 일행도
있었는데 나이가 꽤 많이 보였다. 모두가 손에 대포 같은 카메라를 한 대씩 들고 있었다.
이후로 카메라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이야기를 하다가 휴게소가 금강휴게소처럼 2층이 있어서 거기로
올라가서 망원렌즈로 사진을 담는 것에 대해서 논했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는데 카메라를 들고 뷰에 눈을 대고 자세를 잡으니 영락없는
스나이퍼처럼 보였다. 길쭉한 손가락으로 카메라의 렌즈를 받치고 카메라 바디를 잡고 셔터를 누르면서 연신 이렇게요? 이렇게요?라며 물었다.
목소리가 농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내가 들고 있는 필름
카메라에 대해서도 흥미를 보였다. 디지털카메라처럼 찍고 바로 볼 수 없으니 빠른 디지털에 비해 시간이 느린 게 필름 카메라다. 아서를 돌려
환경의 밝기에 맞춰 조리개 따위를 조절하고 필름을 다 채울 동안 셔터를 누르고 나면 다 돌아간 필름을 수동으로 다시 처음으로 돌려야 한다. 다
돌아갔다는 끄그그극 하는 소리가 나면 필름을 탈착하고 현상을 한 다음 인화를 해서 손에 들어야 비로소 사진이 되는 것이다. 같은 말을
했다.
그녀는 자신도 필름으로 한 번 사진을 담아보고 싶다며 내
손을 어쩌다가 잡았는데 내 손이 너무 차다는 것이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내 손을 그녀는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그리고 우리는, 까지는 전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휴게소에 들어간 것도 눈이 심하게 내린 것도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2월에 서울에 간 것도 물론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겨울에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눈이 내린다면, 하는 상상을 왕왕 하다 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