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른 김에 뜨거운 밥을 싸
먹고 그 뜨거움을 갓 끓여낸 된장찌개 한 숟가락으로 후후 불어, 같이 식혀 먹었던 것을 하루키 식으로 말하면 소확행이다. 그리고 부른 배를 잡고
방바닥의 요만큼 볕이 드는 공간에 공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이승환 2집을 헤드셋으로 들었던 기억은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었다.
이승환 2집을 들으면 영화
필름 테이크가 뒤로 돌아가 버린다. 겨울에 썩 따뜻하지 않은 집에서 두터운 골덴바지를 입고 방바닥에 늘어진 귤 몇 개와 곧 싸락눈이 내릴 것
같은 잿빛 하늘이 고흐의 그림처럼 정경을 이룬다.
영화음악이 영화에서 얼마나
소중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감독, 배우, 스토리마저 기억이 나지 않더라도 영화음악이 스치면 그 장면이었어!라고 떠오르게
된다.
당시에는 가사가 전부 왜
이럴까. 이런 생각이 있었다. 내가 나에게 안녕을 고하고, 마음이 텅 비어 있고, 인생은 나그네 길이고 벌거숭이고, 그렇게 소리 없이 흘러만
가고. 지나고 나서 보니 가사가 참 시적이었다. 앨범 표지도 노래의 가사들과 잘 어울렸다.
앨범 하나를 만들어 내면서
여러 가지 많은 것을 신경을 써야 하는구나. 이승환은 이후에 점점 하고 싶었던 록으로 변모해갔는데 어쩐지는 나는 록을 좋아하지만 이승환의 변심에
흥! 해버렸는데, 3년 전에 여기 어촌에 와서 공연을 할 때 2시간을 방방 뛰며 같이 무대를 즐기면서 저 사람은 정말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는 사람이구나, 경탄하게 되었다.
2집에는 슬픔에 관하여,라는
노래가 있다. 가사를 잘 보면 -미처 내가 깨닫지 못했던 또 하나의 널
내 안에 감추며 내 안에
채우며 어찌 살아갈런지
하지만 이해해줘 이미 난 다른
슬픔에 길들여져
널 잊을지도
모르니
지난 사랑을 잊는 것은 새로운
사랑의 행복함이기보다는 어쩌면 새로운 슬픔이 아닐런지. 그런 생각이 늘 팽배해 있었는데 ‘슬픔에 관하여’라는 노래는 그것에 대해서 도돌이표처럼
생각을 계속하게 한다. 그랬던 이승환 2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