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교회에서 새벽송을 도는지 모르겠다. 종교가 없는 나는 중학교 때 3년이나 교회에 다닌 적이
있었다. 딱히 신앙심이 있어서 그렇게 3년이나 다닌 건 아니고 고모가 교인이라 끌려갔다가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했기에, 또 교회 지하에는
도서관이 마련되어 있어서 공부를 핑계 삼아 엎드려 잠자기에도 좋고 학생부 선생님이 있었는데 질문을 하면 학교 선생님보다 대답을 잘해주는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교회를 3년 동안 다녔었다
.
중학교 때는 뭐랄까 인간 같지도 않았다. 어린이도 아니며 그렇다고 제대로인 청소년의 모습도 아닌 뭔가
어정쩡하고 아주 냄새나고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상태였다. 게다가 나는 평소에는 그러지 않다가도 교회에만 가면 아주 개구쟁이가 되었다. 좋은
쪽으로 포장을 해서 개구쟁이지 조금은 극악무도한 중학생이었다
.
고등학생 누나들이 앉는 의자의 자리에 호치키스로 지뢰를 만들어 뿌려 놓거나 콩알탄으로 숨어있다가 휙
던져서 놀라게도 했고, 내가 기도하는 날이면 작은 교회의 전선을 끊어서 불이 들어오지 않게 해서 모두가 그것 때문에 서성거리게 만들기도 했다.
목사님도 깜짝 놀라게 한 사건이 있었지만 그건 적지 않겠다. 그럼에도 미움을 받지 않았다. 형들에게 혼나려고 하면 두 살 많았던 민정이 누나가
히어로처럼 다 막아 주었다. 민정이 누나가 형들을 한 번 노려보면 아무 소리도 못했다. 속으로 메롱이다 이 형들이라고 불리는
놈들아
.
민정이 누나 덕분인지 크리스마스이브때 나는 성가대에도, 성냥팔이 소녀의 연극에도 4중창에도 불려가서
하룻밤에 몇 번이나 무대에 섰다. 말썽쟁이에 사고뭉치였던 내가 미움을 받지 않고 3년 동안 교회를 다닐 수 있었던 건 어쩌면 꽤 대단한
일이었는데 민정이 누나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
넌 중학생인데 이런 음악을 듣니. 민정이 누나는 내가 듣고 있던 카세트테이프를 보며 그런 소리를
늘어놓곤 했다. 생각해보니 중학생 주제에 나는 바쏘리, 판테라, 오비추어리 같은 노래를 듣고 있었다. 과격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못 알아들을
정도로 음악이 강한. 너 이런 노래 많이 들으니 기도 많이 해야겠다. 앨범 카버에는 온통 해골이니 피가 터지는 그림이 잔뜩 있었고 그런 음악을
들으며 잘도 교회를 갔던 것이다. 하지만 휘트니 휴스턴의 두 번째 앨범이 있어서 그걸 교회에서 민정이 누나와 함께 듣기도
했다
.
크리스마스이브에 교회에서 하는 모든 행사가 끝나면 새벽송을 돌았다. 자정이 되기 전에 지하에서
소고기국에 밥을 말아 먹고 구역별로 나누어서 새벽송을 도는데 봉고차에 짐 꾸러미처럼 실려서 돈다. 봉고차는 짐을 싣는 용도라 운전석을 빼고
뒤에는 의자도 없고 창문도 없다. 그저 휑한 공간만 있고 그 안에 쪼그리고 앉아서 목적지까지 계속 이동을 한다
.
처음에는 재미가 있어서 차가 커브를 돌 때마다 매트로놈처럼 요렇게 움직이지만 새벽송을 한 곳, 두 곳
돌면서 계속 이동을 하다 보니 나는 그만 멀미를 심하게 했다. 새벽송을 돌기 전에 먹은 소고기국에 밥 말아 먹은 것이 그대로 올라올 것만 같다.
하지만 여자아이들이 있기에 참을 대로 참지만 이미 목까지 올라왔다
.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봉고차 그 안에 우웩 하고 전부 다 토하고 말았다. 소고기국에 밥 말아 먹은
것의 냄새가 봉고차 안에 퍼졌다. 나는 고통스러웠고 그것보다 창피했다. 그때 나에게 어쩌면 제일 많이 괴롭힘을 당한 민정이 누나가 차를 세우고
나를 시원한 밖에 내리게 해서 등을 두드리게 하고 더러워진 차 안을 다 닦아 주었다
.
구토를 하면서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고 뱃속의 장이 전부 꼬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그때 묘하게도
괜찮아, 괜찮아, 하는 그 소리가 고통을 덜어주었다. 민정이 누나는 그날 새벽에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주고 돌아갔다. 나는 어쩐지 그 이후로
슬슬 교회에 덜 나가기 시작했다
.
생각해보면 남녀가 스스럼없이 어울릴 수 있었던 공간이 교회였기에 민정이 누나는 나의 옆에 자주 앉아
있곤 했다. 이후에 나는 왜 민정이 누나에게 연락 한 번 해보지 못했을까. 나는 누나가 없기에 누나라는 존재가 주는 의미가 누나가 있는
아이들과는 달랐던 것 같다. 딱히 말로 설명을 못 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