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중에 일본 사진계의 ‘틀’을 깨버린 사진가가 있었다. 열도에 사진으로 대 파란이 일어난다. 때는 95년 캐논 공모전이 있던 날이었다. 사진의 대국답게 엄청난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공모전에 출품을 했다. 하지만 심사위원들의 눈을 사로잡는 작품은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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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위원 중에는 사진의 신이라 불리는 아라키 노부요시도 있었다. 이건 별로군, 이게 뭐야? 이건 사진이라 할 수 없군, 예술? 에응 하며 휙휙 던지고 있었다. 올해는 글렀구나, 이러면서 지루한 심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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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중 한 포트폴리오에서 앗 이런!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사진을 담아낸 이가 누구지! 하게 된다. 95년도에 혜성처럼 등장해서 열도를 사진으로 뒤집어 버린 ‘히로믹스’였다. 히로믹스는 포트폴리오 ‘세븐틴 걸 데이즈’라는 36페이지의 자작 사진첩으로 대상을 차지하면서 일본의 기성 사진가들을 위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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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찍어놓은 세븐틴 걸 데이즈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자동카메라 코니카 빅미니로 여고생이었던 자신과 친구들의 일상을 스냅으로 담아낸다. 친구들은 스스럼없이 그녀에게 속옷 입은 모습을 카메라에 담게 한다. 히로미스는 평소의 일상에서 타인에게 들키면 안 되는 여고생의 터부 같은 모습을 적나라하게 또는 담백하게 그리고 거짓 없이 담아낸다. 포트폴리오 제목처럼 17세 당시 일본 여고생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걱정, 불안, 미래, 밝음, 변칙 등의 모습을 그녀만의 방식으로 담아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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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찍는 순간은 찰나로 지나가지만 사진이란 사진을 찍고 현상을 하고 인화를 하면서 그렇게 펼쳐진 수많은 사진 중에 몇 장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사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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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벗어난 이야기로 저 위의 사진들은 내가 촬영한 것으로 지금은 이렇게 별 볼 일 없는 인간이지만 사진 전시회도 여러 번 했었다. 인기는 없었지만. 이 구역에서 얼마간 사진으로 미친놈이 나였지만 지금은 시들, 시들시들해진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개인전을 몇 번 하면서 좋아하는 것에는 충분히 푹 빠질 여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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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사진에 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타인에게 자신의 일상을 드러낸다는 건 참 난처하고 힘들일이다. 다이앤 어버스가 소외된 자들의 사진을 담으려고 그들 곁으로 굳건하게 다가갔듯이 방법은 여고생들 가까이 다가가야 하고 친하게 지내야만 그녀들의 일상을 담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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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생들은 밝고 웃음이 많고 즐겁지만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답답하다고 드러내놓고 마음껏 술을 마실 수도 없고 담배를 마음대로 피우지도 못한다. 수많은 생각들이 있지만 그것들을 입 밖으로 제대로 꺼내는 방법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들에게 있어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친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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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히로믹스로 돌아가서, 그녀는 공모전의 수상소감에서, 전 수동 카메라로 찍으면 실패할 확률이 높기 때문에 자동카메라를 썼어요.라고 했다. 아주 유명한 수상소감이 되었다. 그건 구도 무시, 초점 무시, 심도 무시였다. 사진은 그 순간을 담아낸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진을 찍을 때 카메라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많은 사람은 신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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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도 일본의 사진계에서는 그 일을 ‘사건’이라고 불렀다. 그 사건에는 세 가지의 객기가 만났다. 당시 심사 위원이었던 아라키 노부요시의 객기, 새로운 것을 바라던 일본 사진계의 객기, 자동카메라 한대로 은밀한 여고생의 불안을 담아내 전국 사진 공모전에 출품하는 히로믹스의 객기. 이 세 가지의 객기가 만났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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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히로믹스의 카메라로 불린 코니카 빅미니는 열도에 불티나게 팔려 품귀현상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색감이 아주 묘하게 좋다. 히로믹스의 사진은 배두나에게도 영향을 주었고 에프엑스의 앨범에도 영향을 강하게 주었다. 요즘 여자들이 화장실에서 셀카를 찍는 시초가 되기도 했다. 히로믹스는 그야말로 ‘틀’을 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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