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영화를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힘든 현실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된다. 영화를 빌려 하늘을 날기도 하고, 바다를, 땅속을 다니기도 하며 때로는 개미만큼 작아지기도 하고 집채만큼 커 지기도 한다. 과거로의 여행을 갈 수도 있으며 심지어 사람의 몸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이 멋진 체험을 할 수 있기에 우리는 당연하지만 영화를 기를 쓰며 보러 간다. 현실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경이로움의 공포와 감동과 전율을 2시간 동안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하나, 극장으로 누군가와 함께 가서 줄을 서 팝콘을 사고 나란히 앉아서 한곳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좋은 영화를 보는 것만큼 좋은 일은 그다지 널려 있지 않다. 그런 점에서 영화는 좀 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괜찮은 매개 중에서는 으뜸이라 생각한다
.
맘마미아에서 도나의 추억을 봤고 이번에는 스타워즈의 한 솔로의 추억이다. 스타워즈는 워낙 오래되었기에 그 세계관에 대해서 접근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는 동안 스타워즈 보다 더 흥미로운 것들이 한국에는 많아져 버렸다. 나 역시 스타워즈는, 스타워즈 시리즈는 워낙 어릴 때 나온 영화이기에 접근하려는 그 뭔가를 찾지 못하고 점점 커 가고 있었다. 스타워즈나 토이스토리는 미국인들에게는 그야말로 우리나라의 라면과 같은 관념이지만 한국인에게는, 그리고 어렸던 나에게는 본조비나 에어로 스미스 같지 않았다
.
어릴 때에도 설이나 추석이나, 간혹 국가 지정 어떤 날에는 스타워즈가 티브이에서 했지만 석가탄신일에 하는 서유기만큼 집중하며 본 기억은 없다. 그러던 중 스타워즈에 꽂히게 된 계기가 있었다
.
나는 가출을 싫어한다. 중학교 때 친구들이 야심 차게 가출을 결심하고 동맹하기를 바랐을 때 나는 그대로 집으로 왔다. 가출을 하면 뭐랄까, 생활의 포기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나는 어린놈의 자식 주제에 나 자신에 대해서 꽤 알고 있었다. 나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애어른 같아서 양말을 이틀 이상 신는다든가, 팬티를 계속 입어야 하는 것은 나의 문화권 안에는 없었다. 가출을 하면 양말은 물론이고 팬티를 갈아입을 수 없다. 친구 집에 하루만 놀러 가서 잠을 자더라도 인간이 이지경일 정도로 더럽고 추하고 망가져 있는데 가출은 싫었다
.
고등학교 3학년인가 졸업을 앞두고 서울에 있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도 서울에 왕왕 갔었다. 그건 삼성동에 있는 백남준 비디오 아트를 보기 위해서 일 년에 여름, 겨울 두 번은 상경을 했다. 왜 그런지 백남준의 예술 세계는 나에게 손짓을 했기에 나는 비디오 아트를 보기 위해 매년 어린놈 주제에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그리고 전시회장에서 큐레이터에게 질문을 너무 해서 따로 불려가서 주의를 들은 적도 있었다
.
졸업을 앞두고 서울의 고모 댁에 인사를 드리고 짐을 풀고 또 외가의 사촌 누나 집에 인사를 드리고 그대로 나와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전을 보고 바로 고모 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수순이었는데 나는 그대로 발길을 돌려 구로 공단 쪽으로 갔다. 그때가 고3의 12월 31일이었는데 나는 어디에도 연락을 하지 않은 채 구로공단의 한 골목으로 들어가 허름한 여인숙에 몸을 넣었다
.
그러니까 가출을 한 셈이다. 그것도 내가 있는 바닷가에서 400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가서 친척들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은 채 12월 31일 밤을 혼자 보낸 샘이다. 여인숙은 방에 이불이 곱게 몇 겹으로 개 있었고 방에 난 창문은 앉아서 여는 아주 낮은 곳에 위치한 여닫이 창문이었다. 창문을 여니 밖의 차가운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작은 창으로 보이는 밤 하늘의 별이 반짝이는데 이 세계에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
그때 당시에는 몹시 외로웠고 어디에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없다는 느낌이 들었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은 누구도 반기지 않는 것이었다. 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고요하고 조용한 성격인가 봐. 하지만 조용한 성격이란 없다. 사람 앞에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이 말을 들어주지 않기에 보통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말 수가 적은 아이도 마음에 맞는 친구와 함께 있으면 말을 많이 한다. 말을 하지 않는 성격이란 없다. 그러니 내가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상대방이 나의 말을 대체로 무시했기에 그러한 것이다. 당시에는 어린 마음에 이런 단순한 마음이 복잡하게 다가왔을 모양이었다
.
나는 사진부였기에 고등학생 놈 주제에 술도 많이 마셨지만 그날만큼은 방 안에 있는 주전자의 보리 차를 마시며 작은 창으로 난 밤하늘의 별들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해가 바뀌는 자정까지 있었다. 세상은 나와는 무관하게 흘러간다는 것과 나를 걱정하는 사람에게 헤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무렵 나는 그대로 몸을 말고 잠이 들었다
.
다음 날 사촌누나가 일하는 곳을 찾아가서 혼나고 사무실에서 짜장면을 얻어먹고 고모 댁에 가서 인사를 하고 나와서 둘째 외삼촌 댁이 있는 시흥으로 갔다. 나는 그때야 알았지만 내가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했던 12월 31일은 12월 30일이었다. 둘째 외삼촌은 뇌가 망가져 집에서 누워서 지낸지 오래되었고, 작은 슈퍼를 하던 외숙모가 나를 위해서 어려운 살림에 파티를 열어 주었다. 나는 더 쭈글어 들었고, 평소 친하지 않았던,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사촌들과 함께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사촌들과 다 같이 한 방에 한 이불을 덮고 잠을 자게 되었는데 31일 밤에 모두가 이불을 덮고 반쯤 누워서 티브이를 봤는데 때마침 스타워즈가 했다
.
모두가 두꺼운 한 이불에 발을 집어넣고 귤을 까먹으며 스타워즈에 빠져들었다. 스타워즈의 캐릭터와 몬스터들에 대해서 떠들며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몰랐는데 같이 보는 영화가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을
.
스타워즈는 그간 여러 시리즈가 나왔고 2000년 이후에 나온 시리즈는 혹평을 듣기도 했다. 스타워즈 시리즈는 만들어지면 스타워즈 시리즈에 속한다는 안도감과 함께 스타워즈 세계관에 흡수되지 못하면 외면받아야 한다는 불안함도 동시에 지녔다. 제다이 루크의 이야기가 있었다면 레아의 연인 한 솔로의 이야기도 사람들은 그간 궁금했다
.
물론 한국은 그 인기가 외국만큼 대단하진 않지만 스타워즈의 마니아들은 늘 한 솔로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레아 공주를 만나기 전 어떤 연인을 만났는지, 밀레니엄 팔콘 호는 어떻게 구했는지, 추바카-츄이는 어떤 식으로 만났는지. 궁금하고 또 궁금했다. 그리고 그 바람들로 스타워즈 한 솔로가 나왔다
.
젊은 시절의 한 솔로의 배짱과 연인으로 나온 에밀리아 클라크와 랜도의 젊은 모습과 한결같은 모습의 츄바카까지. 무엇보다 밀레니엄 팔콘의 우주 속 빛을 통과하는 모습까지
.
하지만 한 솔로의 젊은 시절의 에피소드는 조금 평면적이고 평탄에 가까웠고 초반 주인공들이 하는 대사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다. 코시악? 같은 별천지 말들을 서로 내뱉어서 스타워즈 골수팬이 아니라면 딴생각에 접어들기 십상이다
.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를 이끌어 가는 이야기의 중심 축은 키라와 우디 헤럴슨의 베킷이다. 그 이야기에 한 솔로는 거드는 역할로 보인다. 그건 한 솔로의 목표가 영화 시작 삼분의 일 정도가 지난 후부터 사라졌기 때문이다. 영화 후반에 감독이 교체되고 한 솔로 역의 엘든의 연기력 논란 등을 거치면서 정작 보여줘야 할 한 솔로의 이야기는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것 같다
.
액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다. 하지만 한 솔로의 팬들은 어쩌면 한 솔로의 액션보다는 한 솔로는 어떤 인물인가, 한 솔로는 어떤 철학을 지녀야 했고, 어떤 성장과정을 보내서 헤리슨 포드의 한 솔로가 되었는지를 보고 싶었을 것이다
.
2편을 예고해버렸고, 한 솔로는 스타워즈 시리즈에 병합되어 괴롭지만 싫은 소리도 들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스타워즈는 전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으니 분발해서 열심히 나와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