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친숙한 그녀들의 이야기.

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달콤한 나의 도시'의 처음 부분을 읽으면서 난 허걱 놀랐다. 갑자기 내 일기장을 읽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어 문득 표지를 다시 펼쳐봤을 정도다. 그렇다고 내가 작가 정이현처럼 현란한 필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고. 그만큼 은수와 그 친구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친숙하고 그네들의 언어가 매일 매일 내 주변에서 들려오는 그런 생생한 언어였기 때문에 놀랐던 것이다.

이렇게 일단 친숙함을 전면에 내세운 정이현의 소설은 왕년의 삼순이 신드롬을 가볍게 제낄만큼 재미있고 경쾌했다. 어찌나 재미있고 경쾌하면서 웃긴 지 읽어가는 족족 나는 이걸 영화로 만들면 은수는 과연 누구를 캐스팅 해야 하는가, 순정파 태오는 조인성이 좋지 않을까 하는 극히 비현실적인 고뇌를 해가며 책장을 넘겼다. 그러나... 이 소설은 한없이 가볍기만 한 것은 아니어서 우리의  속물적이고 비굴하고 유치찬란하면서 더없이 인간적인  주인공 은수의 좌충우돌 일상을 따라 가다보면 눈물이 설핏 나올 때도 있고 그녀의 담백하고 정직한 고백에  나의 일상이 겹쳐져서 섬뜩하기도 했다.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이므로 오락이어야 한다는 명제를 소설에 대입해 보자면 이 소설만큼 그 명제에 충실한 소설도 근래 없었던 듯 하다. 작가와 동갑인 나로서는 입에 쫙쫙 붙는 그녀의 문장력과 콧물을 흘리며 웃게 만들만큼 만화적인 설정과 인물들의 대사에 감정 이백프로 이입해서 읽었다. 소설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달으면서부터는 가슴을 죄며 은수의 향방을 주시하기도 했고 중구난방 뻗어가는 친구들의 인생과 놀라운 사건에 한숨 쉬며 읽기도 했다. 만화도 아닌 것이, 드라마도 아닌 것이, 소설이라는 이름하에 독자들을 이만큼 강하게 흡입하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 정이현의 첫 작품을 난 이렇게 즐겁게 만났다. 은수의 선택과 결말이 약간 진부해질 뻔 하기도 했지만 그 결말에 대한 은수의 담담한 독백이 맘에 들어 높은 점수를 준 채 책장을 덮었다. 다시 한 번 읽고 싶은 말랑말랑하고 달콤한 소설이었다. 그렇다고 읽고 나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허무한 로맨스 책도 아니었으니 정녕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