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약국 - 사랑의 상처를 치유하는 언어학자의 51가지 처방전
박현주 지음, 노석미 그림 / 마음산책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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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연애시대"를 보면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연애에 관한 대사가 나온다.



내일이 기다려지지 않고, 일년 뒤가 지금과 다르리라는 기대가 없을 때 우리는 하루를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하루를 견뎌낼 뿐이라고 .그래서 어른들은 연애를 하는 것이라고. 내일을 꿈꾸게 하고 미래를 기다리며 가슴 설레게 하는 것. 연애.



이 정의를 본다면 왜 그렇게 우리가 연애라는 단어에 설레어 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연애란 끝날 때야 미치고 환장할 것 같은 마음과 쓰라린 상처를 남길 수도 있지만 최소한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그리고 드디어 고백이라는 수순을 거치고 쌍방이 같은 음계로 노래를 할 때는 온 세상이 그야말로 장미빛 필터를 씌운 것처럼 밝아 보이는 마약 같은 기분을 선사해주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애를 다룬 모든 상품들이 그렇게 끊임없이 팔리고 소비되는 것일지 모른다. 이미 지나간 연애, 이제는 다시 할 수 없는 연애, 혹은 다가올 연애를 상기시켜주는 모든 물건이나 작품들이 사람들을 감상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런 연애를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한 멋들어진 책이 드디어 한 권 나왔다. 책을 쓴 저자는 사실 연애의 대가도 아니며 결혼상담소의 소장이나 저명한 카운슬러도 아니요. 연애학 박사 학위를 소지하지도 않았다.(그런 학위도 없지만) 하지만 언어를 전공하는 사람답게 그녀는 언어라는 매개체를 통한 연애의 본질을 그 어떤 심리학자나 카운슬러보다도 명료하고 솔직하게 밝혀냈다. 그리고 그 설명하는 방식이 무척이나 유쾌하고 신선하다. 연애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해 그녀가 즐겨 사용하는 수단은 바로 우리가 매일 매일 보는 드라마, 영화, 만화, 소설 그리고 시이다. 다행스럽게 시는 몇 편 나오지 않는다. 지은이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공감하고 즐겨 보던 이 매체들을 사용해서 그녀만의 독특한 시선으로 연애의 허상과 실상을 파헤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이런 것이다. 삼순이에 나오는 삼식이가 첫 사랑과 두 번째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심리, 멀리서 캔디를 후원하는 알버트 아저씨 증후군,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열렬히 투쟁하는 일라이자를 위한 변명, 당신을 위한 세상에 한 장뿐인 컴필레이션 테이프에 얽힌 아련한 추억과 날카로운 심리 분석, 간절하게 전화벨이 울리기를 기다리는 여인들에게 주는 충고 등. 연애가 시작되기 전 단계부터 헤어진 사랑과 추억을 정리하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마치 서랍 속에 옷을 정리하듯 깔끔하게 단계를 밟아가면서 무수히 재미있고 흥미로운 비교 대상을 통해 설명하는 그녀의 문장에 난 그냥 속수무책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읽는 도중 미친 여자처럼 혼자서 낄낄거리거나 때로는 미간에 주름 만들며 과거에 나는 어땠지? 하고 기억을 더듬어 보곤 했다.


어떤 연애에도 정답은 없다. 그리고 어떤 분석이나 상담도 백 프로 맞는다고 할 수는 없다. 모든 연애는 독특하며 그 관련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스토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허나 지은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연애에 나오는 공통적 특징과 패턴을 섬세하게 잡아내서 예리한 처방을 해준다. 사실 이 책은 모든 상담서가 가지고 있는 실제적인 기능은 가지고 있지 않다. 매번 실연을 당하는 20대의 남성이나 킹카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처자들이 읽으면  두 장도 못 나가고 던져버릴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연애에 얽힌 그 모든 복잡 미묘하고 진부하며 유치찬란하나 동시에 나와 그 그리고 당신이 겪었던 그 연애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나처럼 지나간 연애를 생각하며 한숨짓거나 가볍게 추억할 수도 있을 터이고 이제 다가올 연애를 기대하는 청춘들은 새롭게 각오를 다질 수도 있으며 이제 막 삐약거리는 청소년들은 이 책을 읽고 순수하면서 일생을 두고 다시금 꺼내볼 수 있는 연애사를 쓸 수도 있으니까.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연애 이야기를 아무 것도 아니라고 평가되는 대중문화를 통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이야기하고 있는 묘한 연애 상담서. 담담하고 일견 냉정해보이지만 한편으론 제법 효과가 있을 것 같은 처방전을 써주는 로맨스 약국을 오늘 당신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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