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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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해음허의 기(氣), 초목토석의 정(精)이 옮겨 물들고 섞여 합쳐져서 이매(魑魅,도깨비)로 화하니, 사람도 아니고 귀(鬼)도 아니고 유(幽)도 아니고 명(明)도 아니나 또한 일물(一物)이다.  - 해동잡록 권6

 

이 책을 다 읽기 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은 글귀였지만 책을 다 읽고 다시 책을 펼치니 맨 앞 서두에 이 글이 적혀있음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내용이 이해가 되었다. 작가는 우리네 전래 동화를 비롯한 설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깨비라는 소재를 갖고 판타지적 요소가 가미된 현대적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혹부리 영감의 전래 동화, 삼국유사에 기록되어있는 헌강왕과 산신령이야기, 초나라 굴원이 쓴 초사 구가 산귀편 이야기, 한국구비문학대계에 실려있는 설화를 바탕한 도깨비 전설에 관한 이야기를 다시 부활시켜 지금 현재 우리와 같이 살아가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작가의 상상력이 놀랍다.

 

공청옥과 공해경, 공윤후. 그들은 같은 모습을 하고 살아간다. 자신을 발현시킨 물건이 소멸되지 않는 한 천 년이고 만 년이고 사는 것이 도깨비라 한다. 퍼런 불빛을 내듯 청색 도포를 입은 공청옥. 파란 자켓을 입은 공윤후. 예부터 도깨비는 퍼런 불빛을 낸다고 했다. 즉 파란색은 도깨비임을 드러내는 요소로서 작용했을 것이다.

 

책의 내용이 이해되기시작한 것은 절반 이상을 읽고나서부터이다. 혹부리 영감 동화와 함께 처음 부분에 나온 신경성섬유종을 앓고 있는 여인의 이야기. 민혜와 병구, 룸룸 이야기, 석하 이야기, 아완과 룸룸이야기, 각각이 별개의 이야기인듯하다가 어느틈에 고리로 연결이 되어 있었다. 중간을 읽을 때까지 전혀 이야기들의 연관성을 찾지 못했었다.

 

전래 동화 '혹부리 영감'으로부터 시작한 이야기. 혹부리 영감의 노래가 혹에서 나왔다고 생각하며 혹을 떼어 간 도깨비  전래 동화 소개와 함께 공윤후가 등장한다. 신경성섬유종으로 온 얼굴을 덮고 있는 종양을 한 여인에게서 마술처럼 떼어낸다. 슬픈 여자들에게 행복을 주는 도깨비.  

 

공청옥과 장기실의 만남.  공윤후와 병구의 만남. 장기실과 병구는 누군가를 간절히 원하고 있다. 자기를 바라보지 않는 여인을 사랑하는 두 사람. 한 사람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공청옥과 공윤후는 장기실과 병구에게 인연을 선물한다. 누군가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이뤄주는 마술을 부린 공청옥과 공윤후. 바로 도깨비인 것이다.

 

소원을 들어주는 도깨비 방망이. 방망이를 두드리면서 금 나와라 뚝딱, 은나라 뚝딱하면 금과 은이 마구 쏟아지게 하는 신비의 방망이이다. 공윤후에게 방망이는 없지만  마술이라는 것으로 원하는 것을 들어준다.  누군가의 이루어질 수 없는 간절한 사랑도 연결해 주는 마술까지도....

 

정작 공윤후는 사랑하는 그녀를 다시 볼 수 없다. 사랑하는 여인 허아요는 자신과 다른 경계에서 살고있는 인간이기에 그녀와의 사랑은 스쳐지나가는 바람같은 것이었다. 단지 천 년 만 년 영원한 기억 속에 남을 뿐이다. 그래서일까 정작 공윤후 자신은 쓸쓸한 도깨비이다. 사람과 같이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을 발현시킨 물건이 소멸되기전까지는 영원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도깨비의 삶이기에 영원히 살아있으되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는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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