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책들에서 창립 35주년을 기념하여 세계문학 중단편을 모아 noon세트 10권과 midnight 세트 10권을 출간했다. 이번에 읽어 본 책은 도스토예프스키의 중편소설 '백야'로, 어느 몽상가의 회상이라는 부제가 붙었듯이 몽상가 '나'가 이 소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의 작품 중 내가 읽은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과는 확연히 다른, 감상적인 내용의 소설이다. 열린책들의 세계문학 중단편 noon세트 midnight 세트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읽을 수 있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특히나 처음 읽어보는 작품들은 나에게 더없는 기쁨을 준다.
몽상가 '나'는 가난하고 외롭고 고독한 이방인이다. 어느 저녁 운하의 난간에 기대어 울고 있는 여인을 보게 되는데, 비틀거리는 남자가 그녀에게 접근하는 것을 '나'가 도와주면서 그녀와 만남이 시작된다. 한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버린 '나'는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한다. "이 자리는 내게 이미 다정한 장소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그에게 그녀는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렸고, 그녀를 만난 빼쩨르부르그의 네바강 다리도 의미있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다.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빼쩨르부르그의 밝음이 마치 몽상가의 마음같다는 것을.... 그리고 그의 사랑도 백야처럼 짧고 속절없다는 것을.....
나스쩬까 역시 몽상가에게 점점 마음이 끌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말한다. 1년 전 모스크바로 떠난 사랑하는 그가 다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했는데, 그는 며칠 전 돌아왔음에도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고, 그래서 그녀가 울고 있었던 것이다. 몽상가는 슬퍼하는 그녀를 위해 조언을 해 준다. 그녀가 사랑하는 사람과 다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자신의 마음을 그녀에게 긴 문장으로 돌려서 말한 몽상가. 그의 고백을 받고 흘린 눈물은 무엇인가? 연민이었을까? 몽상가는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보다는 그녀의 사랑을 찾아주고자 그에게 편지를 전해주기로 한다. 진정한 사랑이란 바로 이런 것일 수도... 자신의 사랑보다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주는 것.....
하지만 그도 사람인지라 그녀의 말 한마디로 지옥과 천국을 오간다. 그와 결혼을 해도 자신과 오누이보다 더 친하게 지내자는 말을 하는 그녀... 그 말을 듣는 몽상가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고 하는 말인가? 무너져버리는 그 슬픈 마음을 조금이라도 아는 것인가? 꿩 대신 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