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열린책들 창립 35주년 기념 세계문학 중단편 NOON + MIDNIGHT 세트 - 전20권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외 지음, 황현산 외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8월
평점 :
품절



열린책들에서 창립 35주년을 기념하여 주옥같은 세계문학 중단편을 모아 noon 세트 10권과 midnight 세트 10권을 출간하였다. 이번에 읽은 '인간실격'은 다자이 오사무의 대표작이면서 자신의 삶에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을 곳곳에 심어놓으며 소설로써 풀어나간 지극히 자전적 이야기로, 1948년 완성된, 일본 전후 시대를 대표하는 소설이다.

화자인 '나'가 한 남자의 세 장의 사진을 본다. 사진 속 남자의 표정과 인상이 기괴하다고 생각하고 그 사람의 수기를 읽는 것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사진 속의 인물 요조의 기괴한 표정은 다분히 자신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지 않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왜 그럼 요조가 이런 기괴한 표정과 인상을 갖고 살 수밖에 없었을까? 그의 수기를 통해 요조의 삶을 들여다보자.

첫 번째 수기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유조가 인간에 대한 불안과 공포, 두려움에 시달리다 광대 짓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인간에 대한 두려움, 공포, 고뇌, 우울감, 긴장감을 철저히 감추면서 장난꾸러기로 행세한다. 인간을 극도로 두려워했던 요조와 광대 짓으로 사람들을 웃기는 요조는 정반대의 모습이기에 어느 누구도 요조가 우울하고도 아픈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사람들의 야비하고 위선적인 행동을 보면서도 결코 이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 어린 요조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자신을 철저히 숨기고 살아가는 방법 뿐이었을 것이다. 자신을 특별한 존재가 아닌 우습게 보아도 괜찮은 존재로 봐 주기를 원하는 요조. 그런 가면을 쓴 요조의 자아는 점점 바닥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는 결과를 낳고, 이런 소통의 부재는 결국 자신을 자기만의 세계에 가둔 채 부정적이고 자기혐오적인 인간으로 변해간다.

두 번째 수기는 중학생이 되면서도 광대짓을 계속하는 요조에 대한 이야기이다. 요조는 생각한다. '겉으로는 쾌활하게 웃으면서 사람들을 웃기고 있지만 실은 이렇게 음울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광대 짓을 하지만 어이없게 다케이치에게 가면을 쓴 자신의 모습을 들켜버린다. 철저히 일관되게 자아를 깊숙이 숨긴 채 또다른 자아로 살아가는 요조는 화실에서 만난 호리키 마사오에게 술과 담배와 매춘부와 전당포와 좌익 사상을 배우게 되고 그것이 인간에 대한 공포를 잠시나마 무마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호리키를 만나 퇴폐적인 생활을 하는 요조는 술집 종업원 쓰네코와 동반 자살을 시도하지만 그녀는 죽고 자신만 살게 된다. 항상 자신을 두렵게 만드는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었던 요조. 그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길은 두려움을 잊게 만드는 술, 담배, 매춘 등의 추악한 행동뿐이었을 것이다. 더러는 요조를 자기혐오에 빠진 나약한 인간이라 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약함의 원인이 결국 어린 시절의 성적인 학대와 위선에서 온 트라우마였고, 그것이 정신적인 우울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면 요조의 삶이 더없이 불쌍하게 생각된다.

세 번째 수기는 동반자살미수사건으로 퇴학을 당하고 무명만화가로 생계유지를 유지하는 요조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즈코와의 동거와 이별, 담배가게 아가씨 요시코를 만나 처음으로 안정을 경험하고 동거를 하지만 요시코가 성폭행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면서도 그녀를 위해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모든 일에 자신감을 잃게 되고,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한 요조는 결국 술에 의존. 수면제를 복용하고 자살을 시도하지만 실패한다. 몰핀 중독, 마약.... 이런 지옥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자살을 결심하는데 그날 호리키가 찾아와 그를 정신병원으로 데려간다. 요조는 생각한다. 이곳에 들어온 이상 미치광이, 폐인이라는 각인이 찍히게 되었고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 규정짓는다. 정신병원을 나온 후 고향 근처에 가 살게 되지만 27살의 그는 백발의 중년으로 보인다는 말을 하며 수기를 마친다.

자신을 인간 실격이라 말하는 요조는 과연 인간으로서 실격일까? 위선과 가식으로 가득한 인간의 삶을 이해하지 못할만큼 순수함을 갖고 있던 요조는 부모님에게까지 거리감을 느낀다. 다른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요조는 광대 짓을 통해 사람들과 인위적인 관계 맺기를 한다. 이 얼마나 저절한 몸부림인가. 가면을 쓰면서까지 사람들 속에서 살고자 했던 요조였다. 끝없이 인간사회에 이질감을 느끼며 방황하며, 정신적 아픔 속에서 홀로 처절하게 살아가야했던 요조. 그가 다소나마 위안을 찾을 수 있는 길은 퇴폐적인 삶이었다. 사람들에게 상처 받고, 사람들과 다름을 두려워했으며, 그들을 끝없이 인식하며 그들에게 소외되는 것이 더없이 두려워 철저하게 가면을 쓴 채 살다가 결국은 어두운 바닥으로 떨어져버린 요조. 그는 사회적으로 적응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를 실격된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요조 스스로 인간 실격이라 말하고 있지만 실격된 인간은 이 세상에 없다고 말하고 싶다. 단지 삶의 모습이 다를 뿐이지 인간이라는 본질은 사라질 수 없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