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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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로마신화 속에 등장하는 수많은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는 늘 나에게 호기심을 일으키고 한편 나를 설레게한다. 그리스로마신화를 깊이 있게 읽게 된 계기는 2000년 라디오 한 프로그램의 신간도서코너에서 이윤기의 그리스로마신화가 소개된 내용을 듣고나서이다. 올해 '키르케'가 신간 도서로 소개되었을 때 진즉 내가 읽어야지했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다 이번에 읽게 되었다.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당연 키르케이다.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은 거의 모든 그리스로마신화를 다루고 있는 책들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영웅이다. 전쟁을 끝내고 귀향하면서 여러 바다를 떠돌아다니며 겪은 모험의 이야기로 유명하다. 호메로스가 '오디세이아'를 노래했듯이....... 그럼에도 이 소설은 오디세우스라는 인물을 영웅적으로 그리고 있지않다. 오히려 그의 아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 오디세우스를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부정적인 인물로 묘사하고 있으며, 아테나로부터 아버지와 같은 모든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수호신이 되어주겠다는 제안을 거부하였다. 그는 아버지의 전철을 밟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설의 키르케는 단지 오디세우스를 유혹하여 처자식을 잊게 만들고, 남자들을 돼지로 변신시키는 마법을 부린, 마녀에 초점을 맞춘 키르케의 단편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키르케는 하급 여신으로 태어나 여러 신들의 눈치를 보고, 형제 자매에게 놀림과 치임의 시절을 보내다가 약초의 마법을 발견하고 동족을 변신시킨 죄로 무인도로 추방되는 벌을 받는다. 아이아이에에서 유배 생활을 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스스로 찾아내고, 그것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며 마녀로서의 모습을 갖추어 갔다. 끝내는 아버지 태양 신 헬리오스에게 분명한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함으로써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났다.

이 소설을 읽는 재미는 의외로 많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 준 죄로 코카서스 바위에 묶여 독수리에게 간을 쪼여 먹히는 영원한 고통을 짊어진 프로메테우스, 글라우코스와 스킬라 사이를 질투한 키르케에 의해 괴물이 된 스킬라, 여동생 파시파에와 황소 사이에서 태어난 미노타우로스, 미노스왕의 미궁을 만든 다이달로스와 그의 아들 이카로스, 오디세우스와 아테나 등의 이야기는 이 책을 읽어나가는데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키르케의 어린 시절은 보잘 것 없었다. 어머니한테 자식 대접을 받기는 커녕 동생들의 멸시와 조롱까지 받으며, 끊임없이 자신을 보잘것 없는 존재로 자각하며 살았다. 어느 누구도 그녀가 마녀의 자격을 충분히 갖추었다고 말해준 적이 없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의 운명에 순응하면서도 한편으로 그 운명을 나름의 방법으로 개척해 갔다. 그러는 사이 신일지라도 키르케를 뜻대로 할 수 없는 그런 당당한 마녀로서 자신의 위치를 굳건히 다져간다.

그녀에게는 여신들의 도도하고, 비정하고, 잔인한 모습은 볼 수 없다. 오히려 인간을 연민과 사랑으로 대할 줄 아는, 오직 자식만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따뜻함을 지녔다. 그래서 오히려 신이 아닌 인간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그녀의 운명은 그녀 스스로가 만들어 간다. 사랑하는 사람과 인간의 희로애락을 같이하고자, 인간의 삶을 살고자, 죽은 존재가 되지 않고자 주문을 외우며 자신이 만든 마법의 사발을 입술에 대고 마신다. ......

여신으로서의 삶을 포기하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한 키르케...... 키르케의 앞날에 영광만이 깃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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