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세 - 바로 지금,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하여 클래식 클라우드 22
정여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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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물의 생애에 대해 논한 평전을 읽는 것과는 사뭇 다른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

문장 자체도 부드러울 뿐 아니라 헤세의 작품 속에 그의 삶이 어떻게 반영되어있는가를 작가의 필치로 써 내려간 이번 클래식 클라우드 역시 강한 몰입감으로 읽어내려갔다.

이번 헤세편을 읽으면서 나는 헤세는 물론이거니와 정여울 작가의 또다른 작품에도 관심을 갖고 읽어보려 한다.

그녀가 헤세의 작품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부분을 나 역시 정여울 작가를 통해 공감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글을 읽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또한 그것을 온전한 글로 담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이 책은 헤세의 작품을 읽은 후에 머릿속에서 빙빙 돌면서 뭔가 정리가 되지 않았던 나의 생각을 깔끔하게 정리해 준, 마치 나의 이해를 돕기 위한 안내서같은 역할을 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정여울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는 부분도 많았으며,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을 새롭게 알아 간 뜻깊은 시간이었다.

 

 

헤세의 고향 칼프, 헤세 박물관과 헤세 하우스가 있고 헤세의 가족이 탄생한 도시 가이엔호펜, 제2의 고향이며 화가로서, 작가로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던 곳 몬타뇰라를 찾아가는 여정 속에서 작가는 헤세가 품었던 생각들을 하나 둘씩 조용히 꺼내보이고 있다. 헤세가 일상의 자잘한 기쁨, 생활의 사소한 걱정거리를 소중하게 여겼듯이..... 나도 여행자가 되어 같이 그곳의 풍경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면서 같이 떠나가보았다.

 

 

'데미안' 이후 헤세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추구한 삶의 목표를 '개성화'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있다. 헤세를 통해 '나' 답게 살 수 있는 용기를 얻었으며, 외롭지 않게 혼자 있는 법을 알게 될 것이라 한 정여울 작가가 어딘지 묘하게 자꾸 닮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외로움 때문일까?

'개성화'는 헤세 주인공들이 추구한 삶의 목표이면서도 헤세 자신의 삶의 목표이기도 하고, 또한 정여울 작가의 삶의 목표이기도 하다.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끝없는 탐구이며 오직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한 새로운 싸움이 '개성화'이다. 또한 자신의 발견과 성장을 향해 모든 것을 걸고 싸워나가는 과정이며 공동체로 내달리려는 충동과 싸우고, 홀로 오롯한 개인으로 설 수 있는 것, 자신의 어두운 그림자를 깨닫고 마침내 극복하는 과정을 통해 눈부신 나의 잠재력을 되찾는 것 그것이 '개성화'인 것이다.

 

 

'페터 카멘친트'에서 페터는 오로지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홀로 설 수 있는 길, 사회 속에 존재하더라도 다른 사람의 시선에 길들여지기보다는 '스스로의 시선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중시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으며, '데미안'은 싱클레어의 강력한 에고의 껍데기를 깨고 데미안의 셀프가 싱클레어의 셀프를 구했다.

 

 

'게르트루트'에서 쿤은 진정한 창조는 인간을 외롭게 만들며,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진 소중한 무언가를 완전히 포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좌절된 사랑과 다친 몸 때문에 더없이 큰 고통을 겪었지만 결국 그 아픔으로 인해 그의 음악은 아름다워졌다.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에서 클링조어는 지나간 시간에 대한 쓰라린 회한, 죽음에 대한 끝없는 두려움, 매번 새로운 작품을 창조해야한다는 사명감으로 인한 무거운 책임감. 누군가를 아무리 사랑해도 채워지지 않는 존재의 공허감으로 괴로워한다. 죽음을 앞둔 그는 자신의 기이하면서도 아름다운 자화상을 그려낸 이후 이런 괴로움과 공포를 이겨낸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예술 활동이 아닌 순수한 창작의 기쁨을 맛보았던 것이다.

 

 

'황야의 이리'의 하리 할러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점점 세속화되어가는 독일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 과거 뛰어난 작가로 사랑받았던 그의 인생도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헤세는 전쟁을 비판하는 글을 썼지만 대중은 그를 매국노, 비겁자로 몰아갔다. 바로 하리 할러는 헤세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의 분신이다. 전쟁의 상처를 극복하지 못한 독일인들은 더욱 쾌락주의적인 삶을 정당화 했다. 주인공 하리 할러가 스스로를 '황야의 이리'라고 부르는 까닭은 스스로가 인간들의 세상에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한 마리 야수처럼 느껴질만큼 깊은 소외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헤세의 작품 속에 등장한 주인공들은 헤세의 삶이 투영된 인물들이다.

헤세의 삶이 작품 속에 어떻게 투영되어있는가를 정여울 작가와 같이 살펴보았던 과정은 참으로 뜻깊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당당하게 혼자만의 길을 걸어간 헤세. 앞으로도 나는 또 그를 그의 소설에서 만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지금보다 좀 더 가까이에서 그를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싱클레어 옆의 데미안처럼 내가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고, 내가 나의 멘토가 되고, 내가 나의 스승이 되어 그 누구도 나를 다치게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보는 것을 꿈꾸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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