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니스 루헤인의 신작 『작은 자비들』(Small Mercies)은 그저 또 하나의 범죄소설로 분류하기에는 너무나도 강렬하다. 이 책은 1974년 보스턴의 사회적 갈등과 인종차별이라는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한 어머니의 복수와 분투를 통해 인간 본성과 공동체의 허상을 집요하게 파헤친다. 영문 원서를 먼저 읽었을 때의 그 거친 힘과 긴장감이 잊히지 않는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어 번역본을 읽으며, 서효령 번역가가 원작의 분위기와 감정을 섬세하게 전달하려 노력한 점이 돋보였다.


소설의 배경인 1974년 보스턴은 공립학교에서 인종 차별을 없애기 위해 시행된 ‘버싱’ 정책으로 인해 폭력과 증오로 얼룩진 시기다. 이 정책은 흑인 학생과 백인 학생을 서로 다른 학교로 통학하게 만들어 교육의 평등을 추구했지만, 가장 가난한 지역에서만 시행되었다. 부유층과 권력자들이 사는 교외 지역은 이를 피해 갔고, 결과적으로 가난한 백인과 흑인 사이의 대립과 분노만을 심화시켰다. 루헤인은 이 불편한 현실을 그대로 독자의 눈앞에 펼친다. 메리 패트가 살던 아일랜드계 백인 공동체는 마피아가 통제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흑인 갱들과 거래를 하고 폭력을 조장했다. 이 모든 구조 속에서, 메리 패트의 딸 줄스가 실종되고, 한 흑인 청년이 살해당한다. 처음에는 아무런 연관이 없어 보였던 이 두 사건이 얽히며, 메리 패트는 자신이 믿었던 공동체와 진실의 어두운 면을 마주하게 된다.


메리 패트는 한때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 어머니였다. 하지만 남편은 떠났고, 아들은 베트남 전쟁에서 돌아온 후 마약에 빠져 죽었다. 줄스는 그녀의 마지막 희망이었지만, 줄스마저 실종되면서 메리 패트는 절망 속에서 분노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루헤인은 메리 패트의 분노를 단순한 감정의 폭발로 묘사하지 않는다. 대신 그녀를 통해, 가난과 분열, 그리고 인종차별로 인해 희생된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메리 패트는 단순히 딸의 행방을 추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이 평생 몸담았던 공동체의 거짓된 안정을 뒤흔들며 진실을 드러낸다. 그녀는 자신의 방식대로 딸을 위해 싸우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 또한 점점 더 깊은 절망과 고립에 빠져든다.


이 책은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메리 패트가 속한 공동체의 증오와 갈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다른 사람을 증오하는가? 왜 우리는 누군가를 '타자'로 구분하고, 그들을 인간 이하로 간주하는가? 소설 속에서 흑인 청년 어기가 잔인하게 살해당했을 때, 대부분의 백인은 그가 마약상이나 범죄자일 것이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어기는 성실하고 사랑받는 아들이었으며, 그의 가족은 메리 패트와 함께 일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이런 대조적인 설정은 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가진 선입견이 얼마나 쉽게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한다.


한국어 번역본은 원작의 잔혹한 현실감을 섬세하게 전달하면서도, 번역 과정에서의 문화적 차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특히 루헤인의 대사는 캐릭터의 심리와 사회적 맥락을 동시에 담아내는데, 번역본에서도 이런 강렬함이 살아 있었다. 하지만 영어 원서에서 느껴졌던 날것의 리듬감과 거친 문장은 번역 과정에서 다소 완화된 느낌도 들었다. 이는 독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겠다.


루헤인은 메리 패트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측면을 조명한다. 그녀는 결코 완벽한 인물이 아니지만, 그녀의 분노와 고통은 독자를 사로잡는다. 『미스틱 리버』에서 보여준 가족의 비극보다도, 이 작품은 더욱 넓은 스케일에서 사회적 부조리를 탐구한다. 우리가 가진 편견과 분노,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폭력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만든다.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은 단순히 슬픔이나 분노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깊은 좌절감이었다. 메리 패트는 고통스럽게 현실을 깨달았고, 그 과정은 너무 늦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증오와 갈등의 순환을 멈추기 위한 도전을 던진다. 그 질문이 불편하더라도, 그 답을 찾는 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작은 자비"일지도 모른다.


『작은 자비들』이 주는 강렬한 여운과 사회적 메시지를 이어가고 싶다면, 다음 작품들을 추천하고 싶다. 


『미스틱 리버』(Mystic River)

같은 작가 데니스 루헤인의 대표작으로, 어린 시절의 비극이 현재의 살인 사건과 얽히며 드러나는 인간 관계의 복잡성을 다룬 작품이다. 강렬한 심리 묘사와 긴장감 넘치는 플롯이 돋보이며, 루헤인의 명성을 확고히 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가장 파란 눈』 (The Bluest Eye) 

흑인 소녀 피콜라의 삶을 통해 가난과 인종차별이 개인과 공동체를 어떻게 무너뜨리는지를 탐구한 작품이다. 토니 모리슨 특유의 시적 문장과 섬세한 서사가 돋보이며, 문학적 깊이와 감동을 선사한다.











『앵무새 죽이기』 (To Kill a Mockingbird) 

인종차별과 정의를 다룬 고전으로, 정의를 위해 싸우는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와 그의 딸 스카웃의 이야기를 통해 성장과 사회적 불의를 조명한다. 여전히 오늘날에도 강렬한 울림을 주는 작품이다.










『작은 불씨는 어디에나』 (Little Fires Everywhere) 

계급과 인종, 그리고 선택의 여파를 탐구하는 현대 소설로, 복잡한 인간관계와 사회적 갈등을 흡입력 있게 풀어낸 작품이다. 이 소설은 높은 평가를 받으며, 리즈 위더스푼과 케리 워싱턴 주연의 8부작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2020년 훌루(Hulu)에서 방영된 드라마는 원작의 긴장감과 감정선을 성공적으로 스크린에 옮기며 또 한 번 주목받았다.








이 작품들은 각각 다른 시대와 배경을 다루지만, 모두 깊이 있는 질문과 감동적인 서사를 통해 독자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작은 자비들』을 감명 깊게 읽었다면, 이들 책에서 또 다른 깊이와 통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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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ll Me Everything (Hardcover) -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Random House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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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작, 『Tell Me Everything』소식을 듣자마자 책을 손에 들었다. 번역본을 기다릴 인내심 따위는 없었다. 이 책은 스트라우트의 이전 작품인 『오, 윌리엄!』 과도 유사한 정서를 품고 있다. 『오, 윌리엄!』에서는 루시 바턴이 전 남편 윌리엄과 함께 메인 주로 떠나 과거와 현재를 되짚으며 관계의 상처와 화해를 탐구했다.


이번 작품 『Tell Me Everything』은 그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루시 바턴과 올리브 키터리지, 그리고 크로스비라는 작은 마을이 다시 무대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새로운 인물과 사건들이 더해져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마을의 조용한 풍경 속에서, 익숙한 인물들이 나를 다시 불러 세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 그녀의 문장은 북적거리는 소리 대신 한 사람의 낮은 목소리처럼 귓가에 닿는다. 『Tell Me Everything』에서도 그렇다. 메인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그 공간에서 이야기는 서서히 펼쳐진다. 이곳은 그녀의 인물들이 한 번쯤 지나쳤던 곳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고, 그들 사이에 엮인 관계의 실타래가 하나둘 풀려 나간다.


스트라우트는 늘 그렇듯, 한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의 삶을 얽어 간다.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하나 고유하다. 어떤 목소리는 오래된 슬픔처럼 낮고, 어떤 목소리는 다급하며, 또 어떤 목소리는 삶의 피로에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목소리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크로스비라는 작은 마을에 깊은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 생명력은 단지 마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는 진실을 속삭이는 듯하다.


루시 바턴은 여전히 자신과 싸우고 있다. 그녀의 기억, 그녀의 가족, 그녀의 과거가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끝내 떨쳐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질문은 루시만의 것이 아니다. 『Tell Me Everything』의 모든 인물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질문에 맞서고 있다.


한편, 우리의 올리브 키터리지는 마치 오래된 나무처럼 크로스비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녀는 변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지만, 바람은 점점 더 강하게 불어온다. 올리브는 그 나이에도 여전히 깊은 뿌리를 내리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크로스비라는 공간은 마치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다. 작은 마을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갈등과 상처가 조용히 엉키고, 그 사이로 희망의 씨앗이 잔잔히 움튼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이미 고령의 나이로 등장했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이야기에서도 그녀 특유의 고집과 연륜으로 독자에게 깊은 통찰을 선사한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가장 감탄하는 점은 그녀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의 미묘한 결을 포착해낸다는 것이다. 사랑과 미움, 오해와 화해, 이렇게 그녀의 인물들은 늘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자신만의 진실과 마주한다. 스트라우트의 문장은 그러한 순간들을 예리하고도 따뜻하게 조명하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이번 소설에서도 그녀는 과거와 현재를 능숙하게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루시와 올리브, 그리고 크로스비 마을의 또 다른 인물들은 각자 과거의 상처를 다시 들춰내며, 현재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스트라우트는 시간이라는 도구를 통해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탐구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오래도록 한 질문에 사로잡혔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스트라우트는 그녀의 인물들을 통해 이해란 단순한 동의나 공감이 아니라, 고통과 기쁨, 미련과 화해의 과정을 모두 아우르는 일임을 보여준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 관계를 이루는 본질임을 깨닫게 한다.


『Tell Me Everything』은 완벽한 화해를 약속하지 않지만 관계란 언제나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에서 엉성하게나마 만들어진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녀의 문학은 마치 낙엽 사이에서 귀한 이삭을 줍는 순간처럼, 우리가 지나쳤던 삶의 조각들을 깊이 응시하게 만든다. 이번 책도 참 좋았다. 스트라우트다, 역시. 그녀가 그려내는 크로스비의 풍경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여운처럼 오래 남아,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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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중반의 이탈리아. 통일운동이라는 거대한 물결 속에서 몰락하는 귀족 계급의 초상이 한 가문을 통해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표범』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순히 역사적 기록이 아니다. 시대의 변화 속에서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 개개인의 서사와, 삶의 유한성을 담아낸 우아한 철학적 탐구다. 이 작품은 비슷한 주제를 다루는 문학적 동료들, 프루스트, 톨스토이, 만, 졸라 등의 작품과 함께 문학사에서 빛나는 교감을 이룬다.










『표범』은 몰락하는 살리나 가문을 통해 귀족 계급의 종언과 함께, 한 개인의 내면적 고뇌를 탐구한다. 이 점에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깊은 공명을 이룬다. 두 작품 모두 귀족 계급의 화려함과 그 이면의 파국을 세밀히 묘사하며, 인간 욕망의 덧없음을 드러낸다. 그러나 『표범』이 주로 한 가문, 특히 살리나 영주의 내면에 집중한다면, 『안나 카레니나』는 여러 인물들의 엇갈린 관계를 통해 더 폭넓은 사회적 그림을 그린다.








또한,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은 『표범』과 유사하게 가문의 몰락을 중심 주제로 다룬다. 토머스 만은 독일 북부의 한 상인 가문이 세대를 거치며 쇠락해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두 작품 모두 몰락의 불가피성을 예견하면서도, 그 과정에 깃든 인물들의 인간적 약점과 고뇌를 탐구한다. 그러나 『표범』이 변화의 흐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살리나 영주의 품위를 강조한다면,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은 변화 속에서 저항하다 점차 쇠퇴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더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표범』의 핵심은 돈 파브리초 영주가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몰락하는 세계에 대해 품는 깊은 성찰이다. 그는 화려한 무도회에서도 춤추는 사람들의 얼굴 뒤에 스러져가는 생의 그림자를 본다. 이 점에서 프루스트의『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맞닿아 있다. 프루스트는 인간 기억과 시간의 흐름을 통해 삶의 덧없음을 탐구한다. 그러나 프루스트는 과거를 회고하며 시간의 흔적 속에서 의미를 찾으려 한다면, 살리나 영주는 변화와 죽음 앞에서 그 덧없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또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백년의 고독』은 몰락하는 가문과 삶의 순환성을 다룬다는 점에서 『표범』과 비슷하다. 부엔디아 가문의 이야기는 신화적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반면, 살리나 가문은 역사적 현실 속에서 자신의 종말을 맞이한다. 『백년의 고독』이 마술적 사실주의의 기법을 통해 몰락을 초월적이고 신비로운 시선으로 묘사한다면, 『표범』은 보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비애를 강조한다.








『표범』은 몰락하는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역사의 격변 속에서 개인의 위치를 성찰한다. 이 점에서 졸라의 『목로주점』과 연결된다. 졸라는 『목로주점』에서 프랑스 노동자 계층의 비극적 몰락을 다루며, 변화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인간의 욕망과 갈등을 생생히 그려낸다. 특히 신흥 부르주아 계급의 부상이 귀족 사회를 대체하는 과정은 『표범』과 졸라의 소설 모두에서 핵심적이다. 그러나 졸라가 자연주의적 시선으로 인물들의 운명을 사회적 요인에 귀속시킨다면, 『표범』은 보다 철학적이고 초월적인 시각에서 변화를 바라본다.




『표범』이 가진 가장 독특한 점은 변화의 불가피성을 인정하며 이를 품위 있게 받아들이는 태도다. 살리나 영주는 변화의 흐름 앞에서 체념하지 않고, 자신의 몰락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 점은 숄로호프의 『고요한 돈강』과도 대비된다. 『고요한 돈강』의 인물들은 격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발버둥치며, 변화와 맞서거나 그 안에서 길을 찾으려 한다. 반면, 살리나 영주는 변화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음을 직시하고,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태도는 『표범』을 더욱 독창적으로 만든다.


『표범』은 몰락과 변화라는 주제를 다룬 많은 작품들과의 대화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자리를 찾는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기억을 통해 잃어버린 삶의 조각들을 재구성하고,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이 세대의 쇠락을 고통스럽게 증언할 때, 『표범』은 한 개인과 가문이 역사 속에서 사라져가는 과정을 노래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단지 사라짐을 애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프루스트가 시간의 파편 속에서 의미를 찾고, 졸라가 변화의 폭력성을 사회적 시선으로 해부했다면, 『표범』은 모든 변화와 소멸 속에서 남는 인간적 품위를 탐구한다. 살리나 영주의 담담하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은 변화의 필연성을 받아들이는 지혜를 보여주며, 인간이 역사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한다.


『표범』은 사라지는 모든 것들 속에서 빛나는 순간을 포착한다. 우리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 그리고 그 흔적들은 또 어떤 새로움을 잉태할 것인가? 이 작품은 과거의 서사를 미래를 위한 유산으로 전환시키며, 문학적 동료들과의 조화 속에서 자신의 독창성을 우아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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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6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 지음, 이현경 옮김 / 민음사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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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위엄과 권위를 누리던 살리나 가문은 이제 무너져가는 시칠리아의 초라한 유산처럼, 변화를 외면하지 못한 채 몰락의 길을 걷고 있다.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표범』은 이 몰락의 이야기를 한 가문의 서사로 압축하지만, 단순히 사라져가는 귀족 계급을 애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시대의 굴곡과 함께 인간의 영혼을 관통하며, 변화와 죽음이라는 필연성을 품위 있게 노래하는 불멸의 기록이다.


살리나 가문의 문장은 위풍당당한 표범의 형상이다. 그러나 이 상징은 단지 권력의 그림자가 아니다. 표범은 눈앞의 사냥감을 끝까지 쫓아가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세상의 다른 사냥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마지막을 맞이한다. 이는 곧 인간의 삶을 닮아 있다. 권력과 욕망, 사랑과 성공에 집착하는 삶의 흔적들이 결국에는 죽음이라는 정점에서 사라지고 만다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작품의 중심에는 돈 파브리초 살리나 영주가 서 있다. 그는 천문학에 심취하며 별들의 규칙을 탐구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과 가문의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사냥과 연애, 무도회 속에서 자신의 욕망을 즐기지만, 삶이 주는 모든 풍요 속에서도 끊임없이 죽음의 그림자를 느낀다. 혁명과 부르주아의 부상이 가져오는 시대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그는 딸의 혼례보다 조카 탄크레디의 신분 초월적 결혼을 축복한다. 그것은 단순히 가족의 유산을 지키기 위한 결정이 아니라, 변화의 물결에 자신을 맡기는 한 인간의 결단이다.


돈 파브리초가 무도회에서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깊은 연민이다. 화려하게 빛나는 조명 아래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들은 마치 죽음이 가져갈 찰나의 시간을 모른 채 환희에 젖어 있다. 그는 그들의 춤 속에서 삶의 극적인 유희와 동시에 끝이 다가오는 조짐을 본다. 이것이 바로 『표범』의 가장 압도적인 힘이다. 변화는 겉으로는 새로움을 의미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기존의 세계를 허물고 소멸을 예고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길 원한다면,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

돈 파브리초의 이 고백은 단순히 추상적인 생각에서 나온 말이 아니다. 그는 변화를 통해서만 기존 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역설을 꿰뚫어 본다. 이 말은 단지 체념이 아닌, 삶의 불가피한 변화와 그 안에서 지속되는 본질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표범』은 이러한 통찰을 통해 변화와 보존 사이에 놓인 인간 존재의 모순적 아름다움을 탐구한다.


이 작품은 주세페 토마시 디 람페두사의 생애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생전에 자신의 작품이 거절당하며 좌절을 겪었지만, 사후 출간된 이 책은 그의 죽음과 함께 부활하며 이탈리아 문학사에 찬란한 족적을 남겼다. 알랭 들롱 주연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 현재 넷플릭스 시리즈로 재탄생을 준비 중이다. 작가의 증조할아버지의 삶을 바탕으로 한 이 이야기는 특정 시대와 개인을 넘어, 시간과 존재에 대한 보편적 성찰로 확장된다.


『표범』은 묻는다. 우리의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변화와 죽음을 앞둔 우리는 무엇을 두려워하며, 무엇을 기대하는가? 이 작품은 그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리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 의미를 탐구하도록 초대한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남는 것은 삶을 겪어낸 자들의 흔적이다. 살리나 영주의 마지막 순간처럼, 모든 변화와 죽음은 결국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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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계약 을유세계문학전집 136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송기정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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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법. 사랑. 발자크는 이 세 가지를 테이블 위에 늘어놓고, 우리가 보고 싶지 않았던 현실을 보라고 자꾸 찌른다. 사랑은 존재하지만, 결혼은 계약이고, 계약은 냉혹한 계산 속에서 성립된다. 『결혼 계약』은 낭만적 사랑이 법적 서류 위에서 어떻게 변질되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랑은 여기서 미끼일 뿐이다. 냉정한 협상 뒤에 숨겨진 인간의 욕망, 결혼이라는 제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불평등을 발자크는 한 치의 주저 없이 드러낸다.


발자크가 그린 19세기 프랑스의 풍경은 냉혹하다. 대혁명 이후, 사회는 귀족의 몰락과 부르주아 계층의 부상을 겪고 있었다. 그들은 경제적 힘을 축적하며 결혼을 또 하나의 사업으로 전락시켰다. 지참금 제도는 그 중심에 있었다. 여성이 결혼과 함께 제공해야 할 재산은 사랑이라는 단어 뒤에서 냉정히 계산되었고, 여성들은 지참금을 통해 자신을 상품화해야 했다. 결혼이란 가문의 번영을 위한 도구였고, 여성의 행복보다는 남성의 부를 위한 거래에 가까웠다.


발자크의 세계에서는 결혼이 개인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조건과 법적 시스템의 필연적 결과물이다. 지참금을 둘러싼 논의는 여성이 재산을 남편에게 넘겨주고, 그 대가로 안정된 삶을 보장받는 형태로 굳어졌다. 그러나 발자크는 그 안정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보여준다. 결혼 계약은 부르주아 계급의 욕망을 반영하지만, 그 욕망 속에서 여성은 쉽게 소비되고, 남성마저도 끊임없는 경제적 부담에 짓눌린다.


읽는 동안 짜릿했다. 사랑의 전율이 아닌, 법과 돈의 차가운 무게감이 전해져서. 발자크의 문체에는 마치 고발자의 숨소리가 묻어 있었다. 그는 단순히 사랑을 비판하거나, 결혼의 문제를 한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해체하고, 다시 그 조각들을 날카롭게 맞춰보인다. 결혼 계약서 위에 눕는 사랑은 여전히 사랑일까? 발자크는 끝까지 독자에게 그 대답을 유예시키며 질문을 남긴다.


결혼이 가족의 번영과 경제적 안정이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는지, 그 속에서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왜곡되는지를. 사랑이 아름답고 순수하기만 한가? 발자크는 단호히 “아니”라고 말한다. 대신 사랑이 법과 돈의 세계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지 묻는다. 그래서 『결혼 계약』은 단순히 사랑과 욕망의 비극을 그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사회적 계약의 민낯을 폭로하며, 그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지 시험한다.


발자크는 시대의 목소리다. 그는 당시 프랑스의 경제적 변화, 대혁명 이후의 법과 제도, 그리고 그로 인해 뒤틀린 인간 관계를 완벽히 꿰뚫어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법적 합의를 작성하고, 욕망이라는 이유로 자신과 타인의 삶을 조정하며,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 한 시대를 증언한다. 『결혼 계약』은 단지 냉소적인 작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과 계약, 인간의 욕망을 매혹적으로 탐구한 발자크의 역작이다.


결혼만은 하지 말게. 이 시대에 누가 결혼하나? 재산상의 이득을 보기 위해서거나 힘든 사업을 같이하려는 상인들, 일손이 필요한 농사일을 위해 아이를 많이 낳으려는 농부들, 직을 사기 위해 아내의 지참금이 필요한 증권 중개인이나 공증인들, 하찮은 왕국을 계승해야 하는 불행한 왕들이라면 몰라도 말일세. 우리 같은 사람은 그런 짐을 질 필요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기꺼이 멍에를 지고 살겠다고? …… 이보게 폴, 결혼이란 가장 어리석은 사회적 자기희생이라네. 자식들만 그 혜택을 받지. 그 자식들은 자기가 부리는 말들이 우리 무덤 위에 핀 꽃을 뜯어먹을 때가 되어서야 그 희생의 가치를 깨닫게 되거든. 자네는 자네의 젊음을 짓밟았던 폭군 아버지가 그리운가? 자네는 자식들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무엇을 할 텐가? 그들의 미래를 내다보고 신중하게 교육하고, 그들의 행복을 위해 한없이 배려하고,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엄격하게 대하는 자네에게 아이들은 애정을 느끼지 않아. 아이들은 돈을 펑펑 쓰거나 나약한 아버지를 좋아하거든. 물론 나중에는 그런 아버지를 경멸하지. P.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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