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ll Me Everything (Hardcover) - 오프라 윈프리 북클럽 선정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 Random House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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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작, 『Tell Me Everything』소식을 듣자마자 책을 손에 들었다. 번역본을 기다릴 인내심 따위는 없었다. 이 책은 스트라우트의 이전 작품인 『오, 윌리엄!』 과도 유사한 정서를 품고 있다. 『오, 윌리엄!』에서는 루시 바턴이 전 남편 윌리엄과 함께 메인 주로 떠나 과거와 현재를 되짚으며 관계의 상처와 화해를 탐구했다.


이번 작품 『Tell Me Everything』은 그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루시 바턴과 올리브 키터리지, 그리고 크로스비라는 작은 마을이 다시 무대로 등장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새로운 인물과 사건들이 더해져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그려낸다. 마을의 조용한 풍경 속에서, 익숙한 인물들이 나를 다시 불러 세운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소설은 언제나 조용히 시작된다. 그녀의 문장은 북적거리는 소리 대신 한 사람의 낮은 목소리처럼 귓가에 닿는다. 『Tell Me Everything』에서도 그렇다. 메인의 작은 마을 크로스비.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낯선 그 공간에서 이야기는 서서히 펼쳐진다. 이곳은 그녀의 인물들이 한 번쯤 지나쳤던 곳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등장하고, 그들 사이에 엮인 관계의 실타래가 하나둘 풀려 나간다.


스트라우트는 늘 그렇듯, 한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의 삶을 얽어 간다.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하나 고유하다. 어떤 목소리는 오래된 슬픔처럼 낮고, 어떤 목소리는 다급하며, 또 어떤 목소리는 삶의 피로에 스며들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목소리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크로스비라는 작은 마을에 깊은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그 생명력은 단지 마을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 어딘가에 숨어 있는 진실을 속삭이는 듯하다.


루시 바턴은 여전히 자신과 싸우고 있다. 그녀의 기억, 그녀의 가족, 그녀의 과거가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람은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끝내 떨쳐낼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질문은 루시만의 것이 아니다. 『Tell Me Everything』의 모든 인물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 질문에 맞서고 있다.


한편, 우리의 올리브 키터리지는 마치 오래된 나무처럼 크로스비의 한가운데 서 있다. 그녀는 변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지만, 바람은 점점 더 강하게 불어온다. 올리브는 그 나이에도 여전히 깊은 뿌리를 내리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크로스비라는 공간은 마치 인물들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 같다. 작은 마을의 고요한 풍경 속에서 갈등과 상처가 조용히 엉키고, 그 사이로 희망의 씨앗이 잔잔히 움튼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이미 고령의 나이로 등장했던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이야기에서도 그녀 특유의 고집과 연륜으로 독자에게 깊은 통찰을 선사한다.


스트라우트의 소설을 읽을 때마다 가장 감탄하는 점은 그녀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의 미묘한 결을 포착해낸다는 것이다. 사랑과 미움, 오해와 화해, 이렇게 그녀의 인물들은 늘 삶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자신만의 진실과 마주한다. 스트라우트의 문장은 그러한 순간들을 예리하고도 따뜻하게 조명하며,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과 관계를 새롭게 돌아보게 만든다.


특히, 이번 소설에서도 그녀는 과거와 현재를 능숙하게 교차시키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루시와 올리브, 그리고 크로스비 마을의 또 다른 인물들은 각자 과거의 상처를 다시 들춰내며, 현재 속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스트라우트는 시간이라는 도구를 통해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동시에 탐구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오래도록 한 질문에 사로잡혔다. "우리는 서로를 얼마나 깊이 이해할 수 있을까?" 스트라우트는 그녀의 인물들을 통해 이해란 단순한 동의나 공감이 아니라, 고통과 기쁨, 미련과 화해의 과정을 모두 아우르는 일임을 보여준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지만, 그것이야말로 인간 관계를 이루는 본질임을 깨닫게 한다.


『Tell Me Everything』은 완벽한 화해를 약속하지 않지만 관계란 언제나 불완전한 사람들 사이에서 엉성하게나마 만들어진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그녀의 문학은 마치 낙엽 사이에서 귀한 이삭을 줍는 순간처럼, 우리가 지나쳤던 삶의 조각들을 깊이 응시하게 만든다. 이번 책도 참 좋았다. 스트라우트다, 역시. 그녀가 그려내는 크로스비의 풍경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여운처럼 오래 남아, 마음 한구석을 조용히 가득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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