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면 가질 수밖에 없는 동물성과 유한성에 대한 두려움을 타인에게 투사하면서 혐오는 자란다. 승자만 지배하는 환경에서는 더 잘 자란다. 자신 안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것을 타자에게 덮어씌우고 자기에게는 없는 척한다. 이상적인 남성성에 대한 환호는 여성혐오로 완성된다. 이상적인 몸은 추한 몸이 없으면 있을 수 없다. - P25

44사이즈가 되어서만 얻을 수 있는 사랑이라면 애초에 사랑인가? - P33

내가 마음 깊이 사랑을 느꼈던 순간은 내 약함을 타인이 그대로 수용했다고 느꼈을 때였다. - P35

이건 30대가 아니라 세 살의 행태다. <사랑의 불시착>의 로맨스는 완벽한 의존과 보호 사이의 낙차에서 피어오른다. 북한은 그 낙차를 최대화하기 위한 판타지 설정이다. 여자주인공이 아이로 퇴행하는 공간이다. - P38

"딸은 애교도 많고 공감도 잘하고 노후에 부모도 잘 돌본다." 딸을 향한 상찬같이 들리는데 불편하다. 나는 이런 ‘딸바보‘들이 무섭다. 1950년대생인 우리 엄마가 평생 감내해야 했던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의 다른 버전 같다. 딸을 인간이 아니라 기능으로 환원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 P46

인간 대접 받으려 화장해야 한다면 차도르 같은 베일을 쓰는 것과 뭐가 다른가? - P54

변화는 완전한 몸과 마음을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늙고 죽을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했다. 불완전한 자신을 받아들이는 건 불완전한 타인을 끌어안을 준비가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 P85

마른 몸은 제게 상징이었어요. 처음엔 사랑받을 수 있는 자격이었어요. 나중엔 모든 것의 자격 조건이 돼버렸어요. 사회에서 존재해도 되는 자격, 말할 수 있는 자격…. 그런 자격을 획득하는 데 방해가 되는 식욕은 반드시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살 자격이라는 질문 자체가 틀린 건데, ‘소중한 존재가 아닌 나는 왜 살아야 하지‘ 같은 생각이 드니 자격 조건을 찾았던 거 같아요. - P88

"회사에서는 긍정적이고, 그늘 없는, 그런 빠질 데 없는 사람, ‘그럼에도‘ 약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는 거 같아요. 약자가 아니라요." - P107

특권은 편안함이다. 너무 자연스러워 특권을 누리는 게 느껴지지도 않아야 일상적 특권이다. 피부색, 성별, 가난 탓에 자기가 타인에게 어떻게 보일지 매 순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자유다. - P109

"백인 혼혈은 예능에, 동남아 혼혈은 다큐에 나오지." - P111

염운옥은 한국인의 백인 선망과 비백인에 대란 편견을 "강자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만들어진 편견"이라고 분석했다. 1876년 개항할 즈음 한반도에 ‘인종‘ 개념이 들어왔다. 백인 제국주의가 세상을 집어삼키던 시절이다. 개화파 학자들은 조선인을 개조해 서구가 만든 ‘인종 사다리‘를 오르려 했다. - P114

이른바 ‘정상‘이라고 불리는 특정 형태의 몸 이외에 다른 몸은 모두 한 꾸러미에 담는 이 분류는 백인 대 유색인 분류만큼 이상하다. - P126

2022년 3월 26일 제1 야당이자 곧 여당이 될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전장연 지하철 시위를 향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라고 말했다. - P140

그는 "소수자 정치의 가장 큰 위험성은 성역을 만들고 그에 대한 단 하나의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게 틀어막는다는 것에 있다"라고도 했다.
소수자를 비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가 침해당했다는데, 그의 말은 10대 일간지에 모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방송도 탔다. 전장연이 몇 개월 동안 아침마다 투쟁해도 얻을 수 없었던 발언권이다. 장애인 활동가들이 죽어서도 얻을 수 없었던 관심이다. 그의 발언 전부터 전장연은 욕받이였다. 권력을 쥔, 공적 인물인 그의 발언은 한국에서 이런 혐오 표현을 해도 양심의 가책마저 느낄 필요 없다는 신호를 줬다. 누가 누구의 입을 틀어막으려 하나? - P141

성 정체성, 인종, 성별 등으로 차별하지 말자는 데 합의가 된 사회라면 애초에 차별금지법이 필요 없다.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자는 데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사회라면 애초에 개식용 금지법이 필요 없다. - P145

2001년 지하철 오이도역에서 노인이 추락해 숨지고 2002년부터 장애인 이동권 보장 투쟁이 벌어졌어요. 우리가 지하철 연착 투쟁을 했어요. 휠체어 끌고 줄줄이 타니 한 역에서 30분씩 걸렸죠. 그때 인텔리로 보이는 한 남자가 우릴 보고 말했어요. "우리나라는 집단이기주의가 문제야." 제가 그랬어요. "선생님, 제발 아프지도 말고 늙지도 말고 장애인도 되지 말고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그렇게 살 수 있는 사람, 있나요? - P150

"네가 비장애인이었다면" 이런 말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제가 비장애인이었다면 무슨 역할을 했을지 잘 모르겠어요. 제 몸이 제 정체성이에요. 장애를 가진 여성의 몸이기 때문에 지금 제가 된 거예요. - P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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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간주되는 능력과 특징-언어, 이성, 복합적 감정, 효율성, 자립성-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동물의 고통은 삭제 또는 왜곡된다. 어떤 능력을 갖추거나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차별받는다는 점에서 동물은 비장애중심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 P10

서울우유의 유기농 우유 광고는 공개된 지 단 열흘 만에 철회되었는데, 당시 주된 비판으로 제기되었고 많은 이들이 동의하였던 지적 중 하나는 서울우유가 여성을 "젖소"에 비유하였다는 것, 즉 여성을 동물화하였다는 점이었다. 이는 여성을 동물화하는 남성 중심주의의 상징체계와 그 폭력성에 대한 반발이지만, "여성은 젖소가 아니다"라는 말 속에 "‘비참한 삶‘의 대명사로 쓰이는 동물의 삶에 대한 문제의식은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마땅히 인간 대우를 받아야 할 여성들이 동물 취급을 받았다는 사실만이 문제 삼아질 뿐(...) "동물이 처한 삶의 곤경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물이 처한 삶의 곤경을 알기에 자신과 동물을 차별화하려는 적극적인 인식이 가동되는 것이다." - P21

영성이란 다른 존재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자 보이지 않는 것을 응시하는 상상력이다. - P35

비거니즘을 개인의 미각을 조절하면 되는 문제거나, 착한 소비의 문제인 양 호소하는 방식은 20년째 크게 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 P40

우리가 비거니즘을 개인의 의지와 선택으로만 볼 때, 어떤 현실을 구체적으로 뚜렷하게 지우게 되는지도 질문해야 한다. 비인간 동물과의 연결성은 강조하면서, 인종 간 계층이나 빈곤에 대해 외면하는 태도가 재생산하는 현실은 무엇인가.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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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필수 요소는 무엇일까? 민주주의는 정해진 한 가지 모습일까, 아니면 하나 이상의 무엇일까? 선거를 치른다면, 또는 언론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이 있다면 일단 민주주의일까? 아니면 이보다 막연한 집단의 태도, 예를 들면 서로를 존중하며 정중하게 대하는 구성원 같은 것이 민주주의의 필수 요소일까?

민주주의의 모든 부품에 적용되어야 할 협상 불가한 원칙이 하나 있다. 모든 시민이 정치 체제의 자유롭고 평등한 구성원으로서 입지를 누려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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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 차를 운전하고 있었다. 구불구불한 길을 올라가다가 중턱에 차를 세웠다. 희끄무레한 구름이 안개처럼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팔뚝에 와 닿는 물방울이 시원했다. 깊은 계곡 아래서부터 실을 꼬아 만든 것처럼 가느다란 수증기가 끊임없이 올라왔다. 등을 대고 누운 차의 보닛이 보송보송했다. 한껏 뻗은 손이 닿는 데가 없었다. 비는 끊임없이 내리고 산맥은 푸르게 젖었다. 분홍색으로 노란색으로 물든 빗방울이 파도치는 안개 속으로 낙화했다. 어디선가 미지의 생물의 부상하는 소리가 들렸다. - P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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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곧 상실을 두려워했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것 외에는 두려울 게 없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겁에 질려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 P199

유령이 되는 건 외로움에 대한 저항이 실패하는 과정이었다. - P218

저마다의 이유로 뛰쳐나왔을 사람들이 피켓을 들어 올릴 때마다 도로가 한 가지 색으로 물들었다.

가끔 사진을 확대해볼 때가 있어. 점으로 존재하던 픽셀이 커다란 정사각형이 될 때까지 확대하면 사진은 전혀 다른 풍경으로 변해. 거친 사막은 부드러운 뺨이 되고, 시멘트 길의 물웅덩이는 잔잔한 호수가 되고, 시퍼런 곰팡이는 넓은 녹차밭이 되는 거야. 원본보다 흐릿하지만 덜 역겹고 추해지지. 그걸 또 확대하면 마지막에 라벤더나 올리브처럼 한 가지 색만 남아. 어디선가 한 칸의 자리를 차지할 수밖에 없는 작은 픽셀이 모니터를 꽉 채우는 걸 보면 위안이 돼.

언젠가 혜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지금 눈에 비치는 풍경을 사진으로 찍어 확대하고 또 확대하면 과연 무슨 색이 남을까. 나는 무심코 혜를 찾았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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