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모양은 삼각형
양주연 지음 / 디귿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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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사람도 천연덕스럽게 자기 세계로 끌어들이는 사람,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의 저자 양주연은 살갑게 나에게 다가왔다. 스스로를 ENFP형 인간이라고 소개하는 저자답게, 카페에서 친구들끼리 근황을 나누는 분위기처럼 책이 술술 읽힌다. 멋지고 건강한 언니의 말에 나도 모르는 사이 푹 빠져들었다.


『행복의 모양은 삼각형』은 등산에 얽힌 이야기이다. 저자는 스물아홉 살 가을부터 산에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첫 산으로는 꽤 ‘빡센’ 관악산을 선택해서 등산 다음날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고 ‘웃픈’ 소감을 남기긴 했지만, 그만큼 ‘짜릿’한 성취감 때문에 다음 산행을 기대하게 되었다고 한다.


(29-30쪽) 내 몸에 있는 줄 몰랐던 근육들을 발견하는 재미, 속쓰림 없이 맞는 아침, 하루 종일 몸이 가볍다는 것 등등 등산으로 얻은 장점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으나, 가장 큰 선물은 무엇보다 ‘성취감’이었다. …노력한 만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저자는 그 이후로도 등산을 계속하며, 산을 오르는 일이 꼭 인생과 같다는 사유를 남겼다. 친구들과 함께 산행하며 ‘페이스메이커’로서 사는 법을 배우고 ‘깔딱 고개’ 같은 야근을 견딘다.


(61쪽) 평소의 나라면 “어우 저는 못해요” 손사래를 치며 당장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더 슬픈 사실은 깔딱 고개 구간을 지나면 정상이 있다는 걸 내가 너무나 잘 안다는 것. 여기서 포기하고 하산한다면 두고두고 아쉬워할 내 모습이 안 봐도 뻔하다. 그러니 하는 수 없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대부분의 산엔 깔딱 고개가 있었고 몇십 번의 깔딱 고개를 넘으면서 단 한 번도 힘들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내가 쓰는 팁은 짧게 숨을 ‘후!’하고 몰아쉬고선 힘차게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일종의 기합 같은 거랄까.


대학생인 나로서는 ‘깔딱 고개’가 기말시험 기간처럼 느껴졌다. 한 학기에 설계 팀 프로젝트를 네 번이나 진행하고, 밤을 새워 공부한 몸으로 근로를 다녀오고 곧바로 시험을 치는 일상. 정해진 시험과 프로젝트 일정에 꾸역꾸역, 과밀하게 나를 밀어 넣는 기간. 그 후 남는 건 성취감이 아니라 피로와 좌절뿐이었다. 여섯 학기 동안 이런 악순환을 반복하고 나서야 내가 지쳤다는 걸 깨달았다. (누군가는 가뿐하게 해낼 수도 있겠지만) 몸도 마음도 약했던 나로서는 죽고 싶을 만큼 우울했다.


저자도 역시 20대를 지나며 우울했던 시기, 아무것도 하기 싫은 순간들이 찾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거기 멈춰서 우울의 땅굴을 파고 들어가지 않고, 산을 올랐다.


(77쪽) 혼자 산에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실연을 당하고 나서였다.


(78쪽) 이별 직후 한 달, 이때는 정말 방법이 없다. 그저 시간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영화, 드라마, 술, 여행 등 시간을 죽일 온갖 방법을 찾다가 생각난 게 산이었다. 적어도 잠을 잘 때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으니 어떻게든 몸을 지치게 만들어야 했다.


(80쪽) 마음이 약해질 때면 종종 혼자서 산을 올랐다. 산에서 내려올 때쯤이면 땀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들도 씻겨나갔다. 한 달 정도 혼자 열심히 산을 오르는 동안 이별의 아픔도 아물어 있었고, 덤으로 체력까지 얻었다.


(91쪽) 걷는 동안 들었던 생각이라곤 “언제 끝나지”, “점심으로 뭐 먹지”, “다리 아프다” 등 아주 원초적인 고민들이었다. 우울해할 시간이 없었다. 나의 밑바닥 감정에 대해 생각할라 치면 저릿저릿한 다리가 궁상 떨지 말라며 뒤통수를 ‘탁’ 쳤다.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 그래도 내게 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등산을 통해 저자가 몸과 마음의 건강을 찾아가는 과정을 읽으며, 나도 내 주변의 산을 떠올려 보았다. 본가 근처에 심학산이 있고 자취방 뒤편에 수봉산이 있긴 하지만… 따져보니 정상에 올라본 적은 없다는 걸 깨달았다. 나에게 산은 언제나 풍경이었을 뿐 올라야할 대상이 아니었다. 본가도, 학교도 평지에 가까워서 산이라는 개념 자체가 멀게만 느껴졌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심학산, 수봉산은 엄청나게 높은 것도 아니고 해발고도가 각각 200m, 100m 정도밖에 안 되는데 끝까지 가보지 않았다는 게 새삼 놀랍다. 저자가 올랐던 첫 산에 비하면 아주 낮지만 작은 산부터 차근차근 가야겠다는, 나도 성취감을 맛보고 싶다는 생각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내 몸에 있는 줄 몰랐던 근육들을 발견하는 재미, 속쓰림 없이 맞는 아침, 하루 종일 몸이 가볍다는 것 등등 등산으로 얻은 장점들을 나열하자면 끝이 없겠으나, 가장 큰 선물은 무엇보다 ‘성취감‘이었다. 체력이 좋아지고 몸이 변화하는 걸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나는 노력한 만큼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 P29

출근길 등산을 하며 알게 됐다. 내게 필요한 건 현실을 변화시킬 큰 모험보다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틈새 행복‘들이라는 것을. 아침에 숲길을 걸으며 출근을 하고 퇴근 후엔 건강한 도시락을 준비하는 등 온전히 내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일상에서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알 수 있었다. - P57

그러니까 행복이란 부단히 노력해서 달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매일을 살아내면서 발견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 P58

마음이 약해질 때면 종종 혼자서 산을 올랐다. 산에서 내려올 때쯤이면 땀과 함께 부정적인 감정들도 씻겨나갔다. - P80

나와 잘 지내는 것이 평생의 숙제니까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한 인간이 되지 않으려 한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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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 걷는사람 시인선 40
손병걸 지음 / 걷는사람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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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걸 시인은 시각장애인이다. 하지만 이건 그다지 중요한 사실이 아니다. 나는 한 점의 궁극을 딛고 산다에서 시각이 부재하는 화자를 연민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시인은 눈이 아니라 귀와 피부의 감각만으로도 얼마든지 시적 세계를 그려낼 수 있음을 입증했다.


베췌증후군은 시인이 실제로 병을 앓으며 느꼈던 고통을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온몸으로 느끼는 통증 때문에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화자는 행복과 불행은 선택의 문제라고/삶의 고통을 극복하라고말하는 희망도서를 떠올린다. 세상은 값싼 말을 던지며 개인의 고통을 무시한다. 죽고 싶을 정도로 아프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착함극복을 강요하는 무례를 범한다. 베췌증후군의 화자도 그런 지극히 당연한 문장들이 몸속에서 끓어오름을 느낀다. 그러나 통념과는 다른 사유로 나아간다. “극복은 없다 빛이 오면/ 어둠이 머물렀던 자리를 빛에게 내어주듯/ 어둠이 돌아오면 빛이 머물렀던 자리를 어둠에게 내어주는방식으로 고통과 장애를 인정한다. 단순 좌절이나 극복이 아니라 그 너머의 초월인데,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내가 이런 아프고 부정적인 상황에 처했더라면 매일 울면서 죽기만을 바랐을 텐데, 시인은 어떻게 궁극을 딛고 감사할 뿐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


국지성 호우를 통해 그 계기를 짐작해 보암직하다. 빗방울은 느닷없이찾아와서 화자의 온몸을 적셔 버린다. 그리고 화자는 쏟아지는 빗줄기 골고루 헤아리며집으로 돌아가는데, 계획에 없던 소나기를 맞는사건이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시커멓게 찌든 내 생활도/ 빗속으로 뛰어들면/ 꾹꾹 주무르다 탈수하여/ 무지개로 턱 널어 줄 것 같은”, “착각이라 해도 좋고 용기라 해도 좋은 마음이 생긴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소나기가 화자의 염원이나 기대 때문에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 화자로 하여금 오늘은 나를 통째로 빨래하는 날이라는 긍정적인 말을 하게 만들었다. 소나기를 어떤 인물에 대한 비유라고 생각한다면, 혼자만의 고통을 겪고 있던 주체가 타자(빗방울 또는 소나기)와의 만남으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 버리는 변화가 발생했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시인은 누구를 만났길래 자신의 삶에 무지개빨래를 들여놓게 된 것일까.


답은 댓거리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재래시장에서 채소를 파는 위층 아저씨와 이웃인데, “오늘밤은 다른 날보다 코 고는 소리가 유난히 힘찬 아저씨 때문에 원고 쓰기가 힘들다. 밤을 새워 겨우 원고를 마감한 화자가 빌라 현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아침 해를 기다리는데, ‘느닷없이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린다. 퉁명스럽게도, “어제는 무슨 글을 쓴 게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니까.”라고 아저씨가 시비를 거는,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다. “기습을 당한 나도 질세라 댓거리를 한다. 싱싱한 채소 같은 글을 쓰려고 했는데요. 아저씨 코 고는 소리 때문에 못 썼어요. 물어내세요.”라고 받아치는 순간, “골목 안에 팽팽한 햇살이 번진다. 아저씨도 웃고 화자도 웃는다. 채소장수에게 싱싱한 채소 같은 글을 쓰려고 했다니 웃을 수밖에. 결국 웃으면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뒤 아저씨는 일하러 골목길을 내려간다. 만남, 대화 그리고 웃음을 통해 눅눅한 산동네가 오랜만에 후끈후끈 달아오른다. ‘느닷없이귀에 꽂히는 이웃의 코 고는 소리, 처음엔 화자가 글을 제대로 쓰지 못할 정도로 방해하는 불편한 존재로 느껴진다. 그러나 밤새도록 몸집 키운 햇덩이가오르면, 그는 웃음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변모한다. 외부에서 먼저 다가오는 타자로 인해 주체의 상태가 바뀐다는 점에서 아저씨국지성 호우빗방울과 같은 역할을 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맛있는 악수에서는 이러한 만남이 더욱 확장된다. 목소리를 이미 알고 있었던 아저씨와는 다르게,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들이 온다”. 화자는 달팽이관을 열고 타자를 받아들인다. 그러면 모든 소리가 형체를 가지고 달려온다. 그들은 환한 얼굴로”, “맛있는 악수를 청하며”, “떨리는 내 손을 잡으며/ 나를 만지며 나를 흔들며/ 나를 깨우며 파동이 되어 온다”. “까무룩히 꺼져 가는 내 이름도 그들이 불러주면 몸이 일으켜진다. 시인이 살면서 만난, 특히 장애인이 된 이후에 마주한 수많은 소리들이 시인을 세계로 불러들였을 것이다. 이웃사람뿐만 아니라 달빛, 햇빛, 강물, 숲속, 먹구름, 허공에서 무지개처럼 다가온다. 시인은 스스로 잘나고 대단해서 특별한 소리를 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귀를 열었더니, 쏟아지듯이 소리들이 악수를 청했다고 감사를 표하며 겸손하게 고백할 뿐이다.


이제 시인이 어떻게 궁극을 딛고 감사할수 있었는지 답이 거의 다 나왔다. 마지막으로 빗방울 점자를 살피며 일어서는마음가짐을 알아보자. 비 내리는 어느 날 화자가 천둥 소리에 깜짝 놀라점자책을 바닥에 떨어뜨리면서 시가 촉발된다. “와르르 쏟아진” “점자들의 비명이 들려오고화자가 빗방울 소리 따라반지하 방바닥을 더듬을 때” “두두두두, 빗소리는 꽉 닫힌 창문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것 같다. 빗방울 점자천둥 소리빗소리국지성 호우에서의 빗방울처럼 피부에 직접 닿지는 않지만, 닫힌 창문 너머를 통과하여 화자를 찾아와 귓전을 때리고 점자책을 떨어뜨리게 함으로써 반응을 이끌어낸다. 점자책을 주워 올리면 다시 펼친 책갈피마다/ 하얀 여백을 딛고 오뚝한/ 점자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화자는 그래 다시 일어설 일이다라고 다짐한다. 쏟아져도 여전히 오뚝한 점자를 읽으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마음을 흡수한다. 화자가 점자를 손가락으로 만지는 모습은 악수를 연상케 한다. 맛있는 악수에서 악수를 청하며 다가오는 소리들과 빗방울 점자에서 훑어지는 점자들이 겹쳐질 때, 시인의 자세를 알 수 있다. 귀를 열고 손을 펼쳐 소리를 듣는다. 나보다 앞서 우뚝 딛고 선소리들이 기꺼이 나를 이끌어주면 따라 걸어갈 수 있다. 그 태도는 서슴없고 유쾌하기까지 하다.


느닷없이 찾아 온 빗방울, 아저씨, 악수, 점자들이 시의 세계로 나아가자고 초청할 때, 귀를 기울이고 고마워하며 수락하는 시인의 자세를 나도 본받고 싶다.

시커멓게 찌든 내 생활도
빗속으로 뛰어들면 꾹꾹 주무르다 탈수하여
무지개로 턱 널어 줄 것 같은

오늘은 나를 통째로 빨래하는 날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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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7-08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전자책]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 매일과 영원 2 매일과 영원 2
강지혜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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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 계기

팟캐스트 책읽아웃은 내 산책메이트다. 지난 토요일에도 학교를 어슬렁거리며 걷는 동안 책읽아웃과 함께 했는데, 강지혜 시인이 출연한 에피소드 186-1을 들으면서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를 덜컥 사버렸다. 23시가 다 되어가는 때였던지라 근처에 열린 서점이 없었는데 시인님의 목소리를 듣다보니 당장 읽고 싶어져서 전자책을 다운받았다. (책은 원래 충동구매하는 게 제맛🙃)

나는 종이책의 물성을 워낙 좋아하는데다가, 전자기기를 오래 보면 눈이 아파서 그동안 전자책 읽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호기심 앞에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시인의 삶과 문학관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고, 급한 과제를 마감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처럼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를 읽기 시작했다.

※ 이하 인용된 문장의 페이지수는 전자책에서 표시된 것이므로 종이책과는 다름.

2️⃣ 용사의 모험, 시인의 시 쓰기

강지혜 시인은 제주에서 터를 잡는 과정을 ‘용사’의 모험에 비유하여 에세이를 써냈다.

🔖(5쪽) 서른 살 나이로 섬에 기투된 용사는 두 가지 미션에 성공해야 한다.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의 세계와 이상으로 가득한 하늘의 세계, 각각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보석 하나씩을 모아 두 손에 넣는 것. 두 개의 보석이 모이면 완벽히 새로운 사람으로 재탄생할지니.

용사가 ‘땅의 보석’과 ‘하늘의 보석’을 획득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땅의 보석은 생활인으로서의 강지혜가 제주에서 경험한 것이고, 하늘의 보석은 작가로서의 강지혜가 성취한 것이다. 이제 막 시를 습작하기 시작한 애송이인 나로서는 시인의 문학관에 더 눈길이 갔다. 대학생 시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시를 잘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는 고백은 귀여웠고 직장인 시절 힘들었다는 회고에도 절절하게 공감돼서 빠져들 수 있었다.

🔖(20쪽) 세상의 모든 입이 먹고 사는 것에 집중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귀를 막았다. …그럼에도 나는 시를 썼다. …아무도 시 같은 것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너무 좋았다. 시를 읽고 쓰는 순간이면 무채색으로 무심히 흐르는 시간 속에 화악 색이 번졌다. …내가 쓴 시가 언젠가 누군가의 시간 속에 아름다운 색으로 화악 번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 엄마-됨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에는 각 장이 끝나는 지면에 시가 한 편씩 실려 있다(모든 장에 해당하는 건 아님). 16단계 뒤에 실린 「제왕절개 -다하에게」는 시인이 딸을 낳고 쓴 것인데, 첫 연부터 인상적이라 몇 번을 곱씹어 읽었다.

생살을 찢고 나왔으니
나와 너
우리의 고향은 차가운 칼이다

이생이 끝난다 해도
흉터는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다
내 몸에 새겨져
나와 너를 태우는

-「제왕절개 -다하에게」 부분

시인은 실제로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딸을 낳았고, 자신도 제왕절개로 태어났다고 한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몸이 피곤하거나 약해질 때 수술했던 자리가 간지러움과 따가움으로 다가온다는 게 엄마와 딸의 관계를 생각하게끔 하는 매체가 된다는 걸, 그 말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시인이 직접 쓴 시 외에도, 20단계에서 소개된 책 『분노와 애정』에 마음이 끌렸다. 무명서점에서 운영하는 ‘무모 독서 토론 모임’을 통해 읽었다는 이 책은 여성 작가들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86쪽) 내 딸은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하게 될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왜 그렇게 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을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딸이 나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가장 사랑한 여자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내 딸 역시 그 무엇보다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는 여자로 자존감이 충만한 인간으로 자라길 바란다.

진심이 담뿍 담긴 리뷰를 읽으면서 나는 나의 육친을 떠올렸고,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엄마와 내가 될 수도 있는 엄마의 모습을 알고 싶어졌다. 마침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소장하고 있길래 오늘 오후에 바로 빌려왔고 오늘 과제를 다 마치면 읽어 볼 참이다.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를 통해 강지혜 시인이 글 쓰는 사람, 작은 아이와 큰 개의 동거인, 제주도 이주민,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감각하는 것들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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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 - 애매하게 가난한 밀레니얼 세대의 '돈'립생활 이야기
신민주 지음 / 디귿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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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밑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담배냄새에 환기를 망설이고, 술 취한 이웃의 고성방가 때문에 이어폰을 귀에 꽂는 2년차 자취생, 이것이 내 생활의 요약이다. 『집이 아니라 방에 삽니다』의 저자도 은평구의 한 방에서 살아가는데, 나와 닮은 부분이 있어 공감되었다. 온갖 이웃들이 모여 있어 불편하고 시끄럽고 무서운 방에서, 저자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떠올린다.

🔖(21쪽) 그가 자기만의 방을 가지고 적지 않은 돈을 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었기에 그는 다른 많은 여성들과 달리 가족의 공동 거실에 앉아 있지 않아도 됐다. 울프는 자신이 글을 쓸 수 있게 된 배경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자기만의 방은 공간적 의미 외에 여성에게 주어지는 자유와 충분한 여가시간, 삶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상징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이야기를 끌어들여 기본소득을 논하는 저자의 관점이 흥미로웠다. 울프의 500파운드가 얼마나 크고 소중한 돈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자취 중인 나의 처지에 단순히 겹쳐보기만 할 뿐, 내가 그것을 가지리라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기 때문이다. 저자의 과감하고 대범한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 그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작년과 올해 코로나19로 인해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람이라면 기본소득에 대해서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대가없이 받는 재난지원금은 분명 침체된 일상에 활기를 가져다주었다. 하지만 1차 재난지원금에는 맹점이 존재했다. 소득이나 재산과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지원한다는 점에서는 대단했지만 그것을 ‘가구 단위’로 지급했다는 게 한계였다. 세대주가 아닌 국민은 그 돈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다. 저자는 이 틈새를 메울 방안으로 기본소득을 제시한다.

🔖(147쪽) 가족이 아니라 개인별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가족이 아닌 개인을 발견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기본소득의 핵심은 “누구도 선별하지 않고” 정부가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다. 현재도 저소득층이나 장애인 등을 위한 선별복지는 이루어지고 있지만 문제가 많다. 지원금을 받기 위해 가난과 장애를 증명하는 과정에서 수치와 모멸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고, 이건 너무나도 잔인한 일이다. 이같이 절절한 이유들 때문에 저자는 기본소득을 외치고 동료들은 국회에서 ‘재난지원금무새’(148쪽)가 되었다고 한다.

(약간은 과한 환원주의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저자의 기본소득 아이디어는 분명 긍정적이고 진지하게 생각해봄직한 것이다. 나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해 점점 변화하고 있는 일자리 구조를 보면서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느꼈다. 일자리들이 기계로 대체(예: 키오스크)되어가며 근로소득의 위상이 변하고 있다. 단순 ‘노동력’의 가치가 점점 하락하고 있다는 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노동력의 가치를 자신의 가치와 동일시하고 이를 비관한다. 하지만 노동력이 사람의 전부는 아니다. ‘돈 버는 일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각인시키기 위해서도 기본소득은 필요하다.

이 책에서는 ‘돌봄’의 맥락에서도 기본소득을 도입해야할 필요를 주장한다.

🔖(54쪽) 우리는 자주 돈을 가져오는 일만을 세상의 중심으로 사고하지만 누군가를 돌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임금노동 외에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면, 그래서 ‘돈을 받는 일’만 중요하다는 인식이 조금은 낮아진다면, 비로소 돈을 가져오지는 않지만 소중한 것들이 보일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돌봄’이라는 저자의 말에 힘이 실려 있다.

🔖(118쪽) 코로나19가 끝나지 않는 세상.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남을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잘 의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 연결된다. 잘 의존할 수 있는 사회의 시작은 위기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자격을 묻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138쪽) 온전히 혼자 독립하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독립한 후에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간다. …‘누군가의 도움’에는 당연히 사회의 도움이 포함돼야 한다.

‘다같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본질을 이루며 사람이 되기 위해 기본소득을 외치는 저자에게 힘을 보태고 싶어진다😌


가족이 아니라 개인별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가족이 아닌 개인을 발견한다는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다. - P147

코로나19가 끝나지 않는 세상. 우리는 다시 처음부터 남을 돌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잘 의존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과 연결된다. 잘 의존할 수 있는 사회의 시작은 위기 때 도움받을 수 있는 자격을 묻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 P118

우리는 자주 돈을 가져오는 일만을 세상의 중심으로 사고하지만 누군가를 돌보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임금노동 외에 기본소득을 받을 수 있다면, 그래서 ‘돈을 받는 일’만 중요하다는 인식이 조금은 낮아진다면, 비로소 돈을 가져오지는 않지만 소중한 것들이 보일 것이다. - P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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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 문학동네 시인선 152
장수양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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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잡으면 눈이 녹아』에는 유독 ‘사랑’이라는 단어가 많이 쓰인다. 도대체 ‘사랑’이 시인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길래 이렇게나 많이 사용하는 걸까. 먼저 사랑의 개념에 대해 말하는 「미소」를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끈을 쥐고 있는데, 그에게 “끈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거, 사랑이에요. 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사람은 “천진난만”했고, “영원히 끈을 쥐고 있어도 좋아요. 잡아당겨주지 않아도 좋아요.”라고 묘하게 수동적인 말을 하고, 심지어 “이거, 제 몸이에요.”라며 사랑을 자신과 동일시하기까지 한다. 그런데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말이 가관이다.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라요. 모르는 게 좋아요.” 자기 몸인데 모르는 게 좋다니, 이상하게 들린다. 화자는 끈을 쥐고 있는 사람이 힘들어 보여서 “도움을 요청”하라고 일러주지만 그는 거절한다. 화자는 “그를 부정할 방법을 찾을 수 없다.” 사랑을 놓지 않고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결국 화자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부정하지 못하는 것 아닐까. 시인은 인간이 사랑을 자기 몸처럼 느끼지만 동시에 그것을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모르면서 잡고 있는 기묘한 의식 속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렇다면 시인은 다른 존재와의 사랑을 어떻게 감각하고 있을까. 「작은 포크 병」에서 서로 사랑하는 인물들을 통해 알아보자. “싱은 아주 작은 포크를 샀다. 필요 없는 물건을 사버린 죄로 그는 여생을 포크에 찍혀 살아가게 되었다…//작은 포크는 싱의 눈동자에 박혀 있었다. 그게 싱을 아프게 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그가 누구를 바라볼 때면 대상의 뺨 위에 빗금을 새겼다.” ‘작은 포크’는 ‘싱’이 다른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식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그것을 “희귀한 피부 질환”으로 다루지만, “싱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나’(화자)를 바라보며 “가장 많은 빗금의 소유주”로 만든다. 사회는 싱과 ‘나’가 시선을 교환하며 사랑하고 빗금을 남기는 방식이 ‘병’이라고 낙인찍는다. 그렇기에 ‘나’는 그 누구도 ‘나’가 싱을 “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었다.” “신문을 끊은 날, 나와 싱은… 온몸에 작은 포크가 박혀 있는 커다란 개”를 발견하고 키우기 시작한다. “작은 포크는 생각보다 부드러웠다… 나나 개나 싱을 다치게 하지도 않았다.” 개의 ‘작은 포크’ 역시 ‘나’가 개를 사랑하는 데 장애물로 기능하지 않는다. 싱과 개의 ‘작은 포크’ 덕분에 “나는 많은 빗금을 소유했고… 오랫동안 나를 불안하게 했던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빈 접시 같은 건 없었다.” 남들이 뭐라 하건, ‘작은 포크’는 분명 화자에게 사랑의 증거이자 불안을 잠재워주는 사물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더 생긴다. 이렇게 좋은 사랑을 왜 다른 사람들은 ‘병’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요새」를 통해 작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각주에 따르면 「요새」는 2020년 진행된 전시 <낯섦의 몸>을 모티프 삼아 쓴 시인 듯하다. 이 전시는 여성 주체가 적극적으로 몸을 감각하는 작품들로 가득하다. 다시 시의 본문으로 돌아와서 “모든 농담에 조롱이 깃들어 있기에 그는 더 이상 웃지 않았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장수양 시인 역시 여성이고, 몸을 탐구하는 전시와 「요새」를 결부했다는 점에서 ‘농담’은 여성을 대상화하는 사람들이 던진 것으로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누군가 선천적으로 흰 그의 머리카락을 휙 잡아당기며 외쳤다 할머니!” 이 농담에는 사랑이 전혀 담겨 있지 않은 반면, 농담에서 조롱의 낌새를 감지한 시인은 ‘할머니’로 불린 인물을 옹호하고 사랑한다. 「작은 포크 병」의 맥락을 확장하자면, ‘싱’, ‘개’, ‘할머니’가 ‘다큐멘터리’가 ‘병’이라고 말하는 ‘조롱’을 들을 때 ‘나’는 사랑하는 존재들을 품는 것이다. 시인에게 여성을 사랑(꼭 성애가 아니더라도)하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사회는 그것을 조롱한다. 이런 부정적인 현실에서도 시인은 꿋꿋하게 사랑을 시로 풀어낸다.

시인이 계속해서 사랑에 대한 시를 쓸 수 있는 이유는 자신을 ‘좋은 사람’이라고 불러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인님」의 ‘치리’는 “뜨개질이 얼마큼 진행되었는지 물”으러 ‘나’를 찾아온다. 치리는 “나는 마족이다”, “나는 관산도서관의 연체된 소설에 나오는 선생님이다”, “난 망토를 두를 줄 아는 최초의 집토끼이다”라며 매번 “새로운 감상”을 표현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렇구나” 또는 “그래”라고 자못 무심하게 대꾸하기만 한다. ‘나’는 치리를 그다지 대단한 인물로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그러나 다 뜬 털모자를 주기 위해 “그달 마지막날” 치리의 집으로 갔을 때 ‘나’는 “다육식물 화분”을 보고 변화하게 된다. 치리가 사는 빌라 “앞에는 다육식물 화분이 줄지어 있”고 “화분 곁에는 하드보드지로 만든 팻말”에 “누가 당신을 만나기 위해 이 빌라까지 온다면/당신은 그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그런 사람에게라면 화분 하나쯤 데려가게 해도 괜찮을 것이다/분명 좋은 사람일 테니”라고 쓰여 있다. 치리는 ‘나’가 그에게 어떤 마음가짐으로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에 연연하기보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부르며 자신의 소중한 화분마저도 기꺼이 줄 수 있는 넉넉함을 보여준 것이다. 사실 “이 빌라 근처에는 빌라의 주민밖에는 오지 않는다 너무 외지고, 주변 경관도 좋지 않다”라는 말에서는 치리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않음이 드러난다. 하지만 “당신은 어차피 이 빌라의 주민”이라는 말은 결국 ‘나’가 치리를 찾아올 거라고 믿었기 때문에 쓸 수 있는 것이었다. 치리가 ‘나’를 찾아오고 또한 ‘나’의 방문을 기다린 것은 사랑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치리는 부드러운 어조로 독자에게 동참을 요구한다. 「요새」의 화자가 “뜨개질 같은 것은 일찌감치 집어치우고, 다육식물에 관한 연구를 시작”한 것처럼 상대방을 위한 사랑을 행동으로 옮기기를, 조롱하지 않기를 바란다. 시인은 이처럼 사랑하자고, 아프게 하지 않는 사랑을 하자고 시를 통해 우리를 부른다. “다육식물에 관한 연구”를 어떤 방식으로 펼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나도 그 사랑을 감각하고,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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