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 - 매일과 영원 2 매일과 영원 2
강지혜 지음 / 민음사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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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 계기

팟캐스트 책읽아웃은 내 산책메이트다. 지난 토요일에도 학교를 어슬렁거리며 걷는 동안 책읽아웃과 함께 했는데, 강지혜 시인이 출연한 에피소드 186-1을 들으면서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를 덜컥 사버렸다. 23시가 다 되어가는 때였던지라 근처에 열린 서점이 없었는데 시인님의 목소리를 듣다보니 당장 읽고 싶어져서 전자책을 다운받았다. (책은 원래 충동구매하는 게 제맛🙃)

나는 종이책의 물성을 워낙 좋아하는데다가, 전자기기를 오래 보면 눈이 아파서 그동안 전자책 읽기를 꺼려했다. 하지만 호기심 앞에서 그게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시인의 삶과 문학관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었고, 급한 과제를 마감하고 나서 스스로에게 주는 보상처럼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를 읽기 시작했다.

※ 이하 인용된 문장의 페이지수는 전자책에서 표시된 것이므로 종이책과는 다름.

2️⃣ 용사의 모험, 시인의 시 쓰기

강지혜 시인은 제주에서 터를 잡는 과정을 ‘용사’의 모험에 비유하여 에세이를 써냈다.

🔖(5쪽) 서른 살 나이로 섬에 기투된 용사는 두 가지 미션에 성공해야 한다. 발을 딛고 서 있는 땅의 세계와 이상으로 가득한 하늘의 세계, 각각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한 보석 하나씩을 모아 두 손에 넣는 것. 두 개의 보석이 모이면 완벽히 새로운 사람으로 재탄생할지니.

용사가 ‘땅의 보석’과 ‘하늘의 보석’을 획득한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이를테면 땅의 보석은 생활인으로서의 강지혜가 제주에서 경험한 것이고, 하늘의 보석은 작가로서의 강지혜가 성취한 것이다. 이제 막 시를 습작하기 시작한 애송이인 나로서는 시인의 문학관에 더 눈길이 갔다. 대학생 시절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시를 잘 쓰는 사람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는 고백은 귀여웠고 직장인 시절 힘들었다는 회고에도 절절하게 공감돼서 빠져들 수 있었다.

🔖(20쪽) 세상의 모든 입이 먹고 사는 것에 집중하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 귀를 막았다. …그럼에도 나는 시를 썼다. …아무도 시 같은 것 신경 쓰지 않았지만 나는 너무 좋았다. 시를 읽고 쓰는 순간이면 무채색으로 무심히 흐르는 시간 속에 화악 색이 번졌다. …내가 쓴 시가 언젠가 누군가의 시간 속에 아름다운 색으로 화악 번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3️⃣ 엄마-됨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에는 각 장이 끝나는 지면에 시가 한 편씩 실려 있다(모든 장에 해당하는 건 아님). 16단계 뒤에 실린 「제왕절개 -다하에게」는 시인이 딸을 낳고 쓴 것인데, 첫 연부터 인상적이라 몇 번을 곱씹어 읽었다.

생살을 찢고 나왔으니
나와 너
우리의 고향은 차가운 칼이다

이생이 끝난다 해도
흉터는
뜨거움을 간직하고 있다
내 몸에 새겨져
나와 너를 태우는

-「제왕절개 -다하에게」 부분

시인은 실제로 제왕절개 수술을 통해 딸을 낳았고, 자신도 제왕절개로 태어났다고 한다.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몸이 피곤하거나 약해질 때 수술했던 자리가 간지러움과 따가움으로 다가온다는 게 엄마와 딸의 관계를 생각하게끔 하는 매체가 된다는 걸, 그 말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시인이 직접 쓴 시 외에도, 20단계에서 소개된 책 『분노와 애정』에 마음이 끌렸다. 무명서점에서 운영하는 ‘무모 독서 토론 모임’을 통해 읽었다는 이 책은 여성 작가들의 ‘엄마됨’에 관한 이야기라고 한다.

🔖(86쪽) 내 딸은 나를 어떤 엄마로 기억하게 될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왜 그렇게 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내가 행복해야 내 아이가 행복하다는 말을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나는 내 딸이 나를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스스로를 가장 사랑한 여자로 기억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내 딸 역시 그 무엇보다 스스로를 가장 사랑하는 여자로 자존감이 충만한 인간으로 자라길 바란다.

진심이 담뿍 담긴 리뷰를 읽으면서 나는 나의 육친을 떠올렸고,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엄마와 내가 될 수도 있는 엄마의 모습을 알고 싶어졌다. 마침 학교 도서관에서 이 책을 소장하고 있길래 오늘 오후에 바로 빌려왔고 오늘 과제를 다 마치면 읽어 볼 참이다.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를 통해 강지혜 시인이 글 쓰는 사람, 작은 아이와 큰 개의 동거인, 제주도 이주민,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감각하는 것들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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