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 아딕투스 - 알고리즘을 설계한 신인류의 탄생
김병규 지음 / 다산북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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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리즘을 설계한 신인류의 탄생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같은 sns를 하다보면, 조금 전 다른 사이트에서 검색했던 내용과 관련된 것들이 수시로 튀어나오곤 한다. 이것을 흔히 알고리즘이라고 한다. 개인정보가 알려진 듯한 기분이라, ‘알고리즘이라는 말로 이런것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올때마다 썩 유쾌하지 않은 기분이었다. 그럴때마다, 이들은 어떻게 나의 검색 내용을 아는거지? 궁금했다. 나 한사람에게만 이렇지 않음 또한 알고 있었다. 이것이 이들의 수입과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생산과 소비라는 경제 활동의 기본 구조가 가상 현실 세계로 옮겨가고, 소비자 또한 물리적 장소가 아니 가상 공간에서 존재하며 소비 활동을 할 수 있는 시대, 이른바 디지털 경제활동 시대가 더 이상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이미 일상화 된지 오래이며 앞으로 더 확장될 것이다.

단순히 생필품이나 기타 물건을 구매하는 단순 소비 활동 뿐만 아니라, 게임 산업 등 하지 않아도 일상생활에 지장 없는분야(?)에서도 디지털화와 확장력은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경제적 가치로 환산시, 그 규모에서도 놀랍기 그지 없다.

 

사람들은 왜 디지털 경제에 중독되며, 누가 중독시키는 것인가?

나는 중독되는 사람인가, 중독되게 하는 사람인가?

나는 무엇에 중독되어 있는가?

 

나 또한 아침에 눈을 떠서부터 잠자리에 들기전까지 온종일 스마트폰과 함께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뉴스를 보고, sns로 지인이나 친구들과의 소통(?)은 물론 쇼핑, 중고거래 어플 둘러보기, 은행 송금 업무 등등...책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중, 게임을 제외한 나머지는 거의 하는 것 같다. 나 역시 이 시대 호모 아딕투스인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디지털 중독경제가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쉬워진 접근성과 낮아진 진입장벽이다.

전 세계에서 인구대비 스마트폰 사용률이 가장 높은 국가에 해당하는 한국.

그리고 스마트폰은 유동성이 좋을 뿐 아니라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는 강력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소유한 뒤로 며칠 이상의 시간동안 스마트폰과 분리되어 지내 본 사람이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수리, 감금, 재난 등 특별한 사유를 제외하고) 그만큼 가까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디지털 중독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했다. 놀라우리만큼.

떨어져 있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라는 말이 있다. 그 속담이 디지털 중독 경제에서 벗어나는 곳에서 정확히 적용되었다.

그리고 스마트 기기들의 용도를 정하는 일.

나도 비슷하게 이용 중이라 매우 공감했다.

노트북은 업무적으로 많이 사용하다보니, (검색을 할 때도 있지만 노트북으로 하는 검색은 업무와 관련된 것일 때가 많다) 노트북을 볼 때 sns를 하고 싶다거나 게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sns는 스마트폰으로만 하고 있다.

일종의 나만의 루틴, 룰인 것이다.

 

디지털 경제는 다양하면서도 획일적이다.

같은 어플, 같은 사이트를 사용하는 사람은 같은 포맷의 정보, 정보 제공 방식에 놓여있게 된다. 그것이 질릴 때, 우리는 내가 원하는 것만을 모은, 믿을만한 추천, 바로 큐레이션에 주목하게 된다.

 

특정 분야의 책으로 구성된 서점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로서, 매우 공감했던 부분이다.

그리고 공부도 여럿이 함께하면 덜 힘들다는 말에도 정말 정말 공감한다.

서로가 상대의 목표 성취를 돕는 일, 그 일은 과정에서 결과까지가 남을 돕는 듯 하지만 결국 오롯이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자신이 되는 일이라는 것을, 해 본 사람들은 안다.

 

디지털 경제가 준 장점도 무수히 많다. 그러므로 중독으로 인해 나타난 단점들이 있다고 해서 많은 장점들을 모두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다.

중독에서는 벗어나고 좋은 습관을 들이고 싶다. 그것들을 엮어 나만의 큐레이션을 만들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내 삶의 알고리즘을 만들고 싶다.

 

호모 아딕투스의 시대, 큐레이션과 함께 하는 공부를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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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조급하고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 처방전, 100만 부 기념 전면 개정판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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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이혜란



우리 속담에 ‘여우하고는 사랑도 곰하고는 못산다’는 말이 있다. 둔한 사람보다는 날렵하고 민감한 사람이 더 낫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 책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둔감’이라는 것이 그렇게 살기로 ‘결심’까지씩이나 해야 할 일인가 싶어 궁금해졌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저자가 말한 둔감력이 마냥 곰같은 사람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마음 저 깊은 곳에 있는 여우같은 면은, 곰같은 대응과 방식으로 살리라는 것.



의사 출신인 저자 와타나베 준이치는 ‘실락원’으로 일본 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유명한 작가이다. 의사도, 작가도 일반적으로 ‘예민군’에 속하는 직업으로 생각되기 쉽다. 그런 사람이 ‘둔감력’을 말하다니...흥미롭다 못해 신기할 노릇이다.



모두 16개의 꼭지로 이루어져있다. 본인이나 주변의 경험 사례, 또는 예를 든 이야기들이 쉽게 와닿고 한번쯤 겪었을 법한 이야기들도 있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읽게 되었다. 단 하나, 16번째 꼭지를 제외하고는.

나도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있는 엄마이지만, 이해가 안되거나 반문하고 싶은 내용이 더러 있었다. 작가도 물론,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 내용만으로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는 없을뿐더러, 그렇게 해서도 안되겠지만 남성인 작가의 시선이라는 것은 결국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 여성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오는 한계인가 싶어 아쉽기도 한 부분이었다.



재능은 있거나 없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끄집어 내는가의 문제라고 말한다.

둔감력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평소 주위에서 ‘둔하다’ ‘무던하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사람들도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예민한 부분이 있기도 하다. 반대로, ‘예민하다’라는 소리를 자주 듣는 사람도, 어떤 부분에서는 평소의 예민함에 반해 놀라우리만치 둔감하기도 하다. 킬링포인트는 ‘둔감’한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 우리가 맺는 모든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의 이유가 어쩌면 이것인지도 모른다.

치약을 어떻게 짜느냐가 한 쪽에서는 예민하게, 한 쪽에서는 둔감하게 받아들였던 것처럼.



둔감력은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재능을 한껏 키우고 활짝 꽃피우게 하는 가장 큰 힘입니다.

변화할 수 있는 능력, 이것이야 말로 둔감력입니다. 매사에 예민하고 자기가 정해놓은 틀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까지 변하지 못합니다.



저자의 말대로라면 누구에게나 재능은 있다. 둔감력은 그 재능이라는 나무를 키우고 꽃피우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그리고 구체적인 방법으로는 ‘말의 힘’을 들고 있다.



말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꽃피게 할 수도, 시들게 할 수도 있죠.



칭찬이라는 동기와 노력이라는 행위, 이 두가지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좋은 방향으로 회전했을 뿐인데 좋은 결과가 나온 사례도, 칭찬하는 말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주변 환경의 변화에도 늘 자기 자신을 유지하는 몸과 마음의 힘, 이것이 바로 이 시대가 원하는 둔감력입니다.



마침 최근에 읽은 다른 책에서도 이와 비슷한 문구를 보았다.



일상 속에서 반복하는 힘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절제를 통해 삶을 견뎌라.



흔들리지 않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지난 2년간의 코로나 팬데믹으로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깨달았다. 무수히 변하는 주변 환경과 사람, 세상 속에서 일상과 자기 자신을 온전히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힘이라는 것. 그것은 끊임없는 반복과 자기절제가 동반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변화라는 것은, 그런 강력한 자기절제력과 지속성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으며 그것이 최상의 ‘둔감력’이라고 나는 읽었다.



이 모든 원리가 삶에서도 그러하겠지만 공부에도 적용된다. 대학시절 은사께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던 부분이 ‘꾸준함’과 ‘자기절제’였다. 그저 왔다갔다 하기만 하는 것 같은 파도가, 매일 반복되는 그 현상을 통해 실은 바닷속을 정화하고 있고 모진 돌들을 깎고 갈아내기까지 하는 것처럼.

둔감력도 결국은 나를 정화시키고, 나를 깎고, 그럼으로 인해 나를 꽃피워주는 ‘능력’이 아닌가 싶다.

둔감력을 타고난 재능으로 가지지 못했다면, 인위적으로 키워내는 ‘능력’으로라도 가지고 살아야 할 것같다. 나는 오늘부터, ‘더 둔감해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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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 이탈리아 복원사의 매혹적인 회화 수업
이다(윤성희)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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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탐구하는 미술관

이탈리아 복원사이자 공인 문화해설사인 저자는 친절하게르네상스 시대 여러 거장들의 작품을 설명해주고 있다.

나같은 일반 대중에게는 그림이라 쓰고 미술작품으로 읽히는 것들에 대해 다가가기 어렵고 낯선 면이 있다. 저자는 이 부분을 잘 알고 있었다. 미술관 가이드를 해온 경험이 대중의 눈높이에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언어를 찾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르네상스 미술의 키워드는 이성아름다움이라고 한다.

우리가 흔히 예술분야라고 말하는 것들은 이성보다는 감성과 더 가깝다고 생각하는데, 그 감성적인 분야에서 이성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노력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면서 흥미롭다.

사람도, 작품도, 사건도 마찬가지다.

어떤 것을 이해할 때는 시대적 배경과 당시의 사회 제도, 사상, 문화 등을 아울러 봐야 한다. 그렇게 해도 온전히읽어내기란 어렵다. 읽어내기 위한 키워드에 나의 배경지식과 주관성이 더해져 또 하나의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르네상스 작품들을 읽어내기 위한 키워드가 무엇인지를 알려주어, 적어도 해석오류를 범하지 않게, 그리고 작품을 즐길 수 있게해주고 있다.

 

미술은 감성적이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건 나만의 절대 오산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미술 작품 하나를 위해, 미술과 콜라보하기에 뜻밖의분야라 생각되는 수학, 의학 적 지식 탐구가 이렇게나 필요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해낸 결과물을 남긴 이른바 거장들의 작품들을 보며, ‘거장이 거장인 이유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덮을 때까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을 나는 계속해서 소환해내고 있었다.

 

신 중심의 사상과 봉건적 제도에서 인간 중심적 사고, 인본주의(人本主義)의로의 전환, 인문적 가치를 발견한 르네상스 시대에는 보다 인간답게 만드는 일이 핵심 사상인 시대였다. 신 중심의 세계관이 지배했던 시대에서, 인간의 창조성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모든 것들을 존중하고 표현하고자 했던 시대였고, 그것을 고대 문화에서 찾고자 했다.

인간의 가치를 발견한 르네상스 시대에는 영혼과 이성만큼 행복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p.100)는 것을, 당대 예술가들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현실과 똑같을수록 현실에서 멀어진다고 하지만 인간의 결국 현실을 그린다고 말했다. 단순히 저자의 표현일 뿐 아니라 삶을 관통하는 원리일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교과서적으로만소중함이었다. 매일 내게 와닿는 공기의 소중함도 잊고 살기 일쑤인데, 이역만리 타국에 있는, 책으로만 보던 작품들의 소중함을 간절히 느끼며 살기란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난 뒤, 그것이 왜 소중한지, 우리는 이 작품을 왜 복원해야 하며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지 느끼게 되었다’.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교과서적인 과는 느낌이 다르다.)

복원한 건 어차피 가짜잖아?’라는 1차원적인 생각이 얼마나 무식한생각이었는지를 정통으로 뼈맞은 느낌이다...

역사가 훼손하고 인간이 복원한 작품이라는 말에 만감이 교차했다...

복원되는 작품이 많아지기를 바라며 복원사라는 직업에 감탄과 경의를 표한다.

 

역사가 훼손하고 인간이 복원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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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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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멩코 추는 남자

 

실화인 듯 실화 아닌 실화 같은이야기.

소설 속 아버지의 이름이 실제로 작가의 부친 성함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흥미로웠다.

답답하지 않은 빠른 전개와, ‘이런 게 흔한 일인가?’싶은 의문이 들게 하는 부분들이 꼭 드라마 같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나 보다.

그제서야 띠지에 둘러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출간 즉시 영상화 판권 판매 완료.

 

60대 후반의 아버지, 전처와의 사이에 낳았던 딸 보연, 새 아내, 새 아내와 낳은 딸 선아.

청년일지와 버킷리스트.

 

굴삭기, 스페인어, 플라멩코, 양복, 그리고 관계회복.

 

한국사회에서 관계에 가장 서툰사람, 혹은 입장을 고르라면 아버지 아닐까.

심지어 아버지와 딸. 그것도 ()’()’로 나뉘는 두 명의 딸이 있다.

그러나, ‘헤어졌던딸 보연을 찾고 만난 일도, 그로 인해 상처받은 선아와의 화해도 결국은 궁극적으로 남훈 자기 자신과의 관계회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공사현장에서 험한 일 속에 있었을 굴삭기 한 대 팔면서 살인사건 담당 형사마냥 호구조사를 하는 남훈을, 중고거래 어플로 약속을 잡아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드라이브 쓰루로 거래한다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꼰대 중의 상 꼰대라고 느꼈을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 읽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남훈이 이해될 수도 있는 거지, 내가 그 상황의 젊은이였다면 나 역시 황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내게도 청년일지와 버킷리스트 같은 것이 있었다.

20대의 마지막, 29살의 크리스마스는 스페인에서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지옥같은 입덧으로 하루종일 구토하며 보냈던 내 마지막 20대 크리스마스...

그 뒤로 스페인이라는 단어는 내게 해소할 수 없는 갈증, 그리움 같은 것이 되었다.

코로나 종식 후 다시 갈 수 있다 해도 나는 ‘29의 내가 아니니까.

 

굴삭기를 판 이후 남훈의 여정에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장면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하다못해 미간이 살짝 찌푸려질만큼의 의문이 들었다.

몇 십년간 공사판에서 일만 하며 지낸 할아버지는 도서관에 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심지어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 쉽게 도서관에 가서 책까지 빌려온다.

이 장면에서 공감이 되지 않는 건 나뿐이었을까...그야말로 소설스러운전개라 아쉬움이 남았다.

 

 

언어학자가 되고 싶었다던 남훈.

 

더 이상 무엇도 에둘러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청년 시절을 무기력하게 보낸 게 한국어 어순 탓이란 생각을 했다. 만일 동사를 먼저 말하는 언어를 사용했다면 조금 더 진취적으로 세상을 살았을 것 같았다.

 

언어는 사고를 반영하고, 사고는 언어를 반영한다.

이 부분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흥미롭게 읽힌 문구였다.

나는 한국인이면서 동사를 먼저 사용하는 언어(외국어)를 전공했다. 내 삶의 진취성은 어느 정도인지, 나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단 이 문장 뿐 아니라 이 책을 읽고나면 누구나 버킷리스트가 쓰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늘 문제는 현실이다.

 

무엇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이냐.

 

20대는 시간과 체력이 있으나 돈이 없고, 40대는 돈은 있으나 시간과 체력이 없어서

그 밸런스 조합이 좋은 30대가 가장 좋은 시기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공감성 제로퍼센트(0%). 출처가 어디인지 묻고 싶다.

하지만 공감되지않는 나와 다른 30대도 어디인가는 있을 수 있다.

소설 속 남훈에게, 그건 너의 핑계였다고, 늦게라도 대학 갔으면 되지! 그때 보연이를 데리고 올 수 있었잖아! 라고 자신있게 손가락질하며 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누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 더 옳은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에 스스로 마주한 시간, 그때가 남훈의 나이 67이었다.

 

자신이 똑바로 설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

 

나의 공간과 바로 선 나를 위해 남훈은 스페인어와 플라멩코를 배웠고 보연을 찾았다. 그리고 함께 스페인에 갔다. 양복을 맞춰 입고.

사실, 생각지 못한 결말이었다. 선아를 낳아준 아내와 갈 거라고 예상했던 터였다. 예상과 빗나가 준 결말이 의외이긴 하지만 반갑기도 하다. 보연과의 갈등이 해소됨으로서 남훈이 가진 마음의 부채가 상환되길 바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당당하게 똑바로 설 공간은 빚이 없을때 가능해지는 법이니까.

 

가족의 형태나 의미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에 대한 고민은 많아지고 깊어지는 듯 한 요즘이다.

청년일지, 그것은 청년시절의 기록이 아니라 스스로 나누는 자신과의 대화, 고백이라 생각한다.

가족과의 대화도, 나 자신과의 대화에도 다시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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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설런스 - 인간의 탁월함을 결정하는 9가지 능력
도리스 메르틴 지음, 배명자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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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하다는 것과 우월하다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문장을 읽고 ‘아-!’ 했던 느낌이 있다.

‘대체불가존재론’에 대해서는 두말할 나위없이 믿고 있으며 행하고 싶은 삶의 방식이다.

그러나 대체불가적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탁월함’이 있어야 하는데 나의 탁월함은 무엇이며, 어디서 찾을 것이며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는 매 순간 난제였다.

 

앞서 읽은 두 권의 자기계발서에서 저자의 성별, 결혼유무, 경험의 종류 등이 그대로 반영된 차이를 느끼며 다른 장르를 보고싶다 생각할 때 만난 <엑설런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단거리 선수가 애써 중장거리 레이스를 하고있는 느낌이었다.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몰입도도 있는 편이고 곱씹고 생각할 거리도 느껴지지만, 뒤로 갈수록 동어반복적인 내용이 많아서 몰입도가 떨어졌다.

마치, 주말 드라마를 보다가 일일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랄까?

별 거 없고 뻔히 아는 내용이지만 끝까지 보게는 되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중요한 내용, 새롭게 알게 된 내용, 알고 있었지만 다시금 깨닫게 되는 내용 들이 고루 있었다.

자기계발서란 그런 것이다. 콜럼버스의 계란처럼, 해 놓고나면 별 거 아닌 것 같고 ‘나도 이런 말(정도는) 할 수 있겠다’ 라고 쉬이 말하지만, 그렇게 말하지 말고 ‘너 스스로’ ‘먼저’ 하지 그랬어? 라고 강력하게 되받아치는 테니스 공 같기도 한 것. 타이밍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같은 내용도 어떻게 표현해내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21세기의 ‘탁월함’이라는 것이 전근대 시대의 그것과는 다르다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탁월함을 가지기 위한 맵을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알고 있는데 하지 않았던 것 뿐’이라고 말하지는 말자. 탁월한 사람은 ‘하지 않지를’ 않는다. 지도를 들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읽어내는 것, 내가 모르는 기호와 암호같은 문자로 적혀 있더라도, 지도를 읽기 위해 그 문자를 기꺼이 공부하는 자세와 노력이 탁월함이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적으로 이 책에서 말하는 ‘지적노동자’에 속한다. 그래서 ‘생각이 자본이 되는 시대’라는 추천사의 문구가 누구보다 눈에 들어왔던 사람이다. 저자는 삶과 일의 분리를 말한다. 그 행간에는 결국 삶과 업(業)이 일치해야함을, 일치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느꼈다.

 

‘가치지향적’ 삶이어야 함을 논하는 시대는 끝났다. ‘무엇을 가치로 둘 것인가?’와 ‘어떻게 그 가치를 실현시킬 것인가?’가 화두다.

 

나 스스로 가치의 기준이 되는 삶, 그 삶을 이끄는 리더십.

비행기는 절대 조종사의 실력만으로 안전운행이 보장되지 않는다. 객실 내에서 규정에 따라 행동하고 매너를 지켜주는 승객들, 안개나 폭풍우가 없는 날씨, 문제없는 엔진과 기관들, 조종사가 비행을 책임지는 동안 객실을 책임져주는 승무원 등... 이 모든 것의 합이 맞을 때가 ‘최상의 컨디션’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종석에 ‘앉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기위해 ‘함께’ 가야 한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조종석에서는 내가, 객실에서는 승무원이, 좌석에서는 승객이, 기체에서는 엔진이, 각각의 리더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어우러질 때, 그것을 위해 진심으로 노력할 때, 그 노력의 방향이 올곧을 때, 그 사람이 바로 조종석에 앉을 수 있는 리더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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