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멩코 추는 남자 (벚꽃에디션) - 제11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허태연 지음 / 다산북스 / 2021년 9월
평점 :
품절


플라멩코 추는 남자

 

실화인 듯 실화 아닌 실화 같은이야기.

소설 속 아버지의 이름이 실제로 작가의 부친 성함이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흥미로웠다.

답답하지 않은 빠른 전개와, ‘이런 게 흔한 일인가?’싶은 의문이 들게 하는 부분들이 꼭 드라마 같다고 생각했는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나 보다.

그제서야 띠지에 둘러진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출간 즉시 영상화 판권 판매 완료.

 

60대 후반의 아버지, 전처와의 사이에 낳았던 딸 보연, 새 아내, 새 아내와 낳은 딸 선아.

청년일지와 버킷리스트.

 

굴삭기, 스페인어, 플라멩코, 양복, 그리고 관계회복.

 

한국사회에서 관계에 가장 서툰사람, 혹은 입장을 고르라면 아버지 아닐까.

심지어 아버지와 딸. 그것도 ()’()’로 나뉘는 두 명의 딸이 있다.

그러나, ‘헤어졌던딸 보연을 찾고 만난 일도, 그로 인해 상처받은 선아와의 화해도 결국은 궁극적으로 남훈 자기 자신과의 관계회복이었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공사현장에서 험한 일 속에 있었을 굴삭기 한 대 팔면서 살인사건 담당 형사마냥 호구조사를 하는 남훈을, 중고거래 어플로 약속을 잡아 차에서 내리지도 않고 드라이브 쓰루로 거래한다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꼰대 중의 상 꼰대라고 느꼈을 것이다.

독자 입장에서 읽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남훈이 이해될 수도 있는 거지, 내가 그 상황의 젊은이였다면 나 역시 황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내게도 청년일지와 버킷리스트 같은 것이 있었다.

20대의 마지막, 29살의 크리스마스는 스페인에서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지옥같은 입덧으로 하루종일 구토하며 보냈던 내 마지막 20대 크리스마스...

그 뒤로 스페인이라는 단어는 내게 해소할 수 없는 갈증, 그리움 같은 것이 되었다.

코로나 종식 후 다시 갈 수 있다 해도 나는 ‘29의 내가 아니니까.

 

굴삭기를 판 이후 남훈의 여정에서,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장면에서는 고개가 갸우뚱하다못해 미간이 살짝 찌푸려질만큼의 의문이 들었다.

몇 십년간 공사판에서 일만 하며 지낸 할아버지는 도서관에 가는 것 자체가 어렵다. 심지어 두렵기도 하다.

그런데 너무 쉽게 도서관에 가서 책까지 빌려온다.

이 장면에서 공감이 되지 않는 건 나뿐이었을까...그야말로 소설스러운전개라 아쉬움이 남았다.

 

 

언어학자가 되고 싶었다던 남훈.

 

더 이상 무엇도 에둘러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가 청년 시절을 무기력하게 보낸 게 한국어 어순 탓이란 생각을 했다. 만일 동사를 먼저 말하는 언어를 사용했다면 조금 더 진취적으로 세상을 살았을 것 같았다.

 

언어는 사고를 반영하고, 사고는 언어를 반영한다.

이 부분은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흥미롭게 읽힌 문구였다.

나는 한국인이면서 동사를 먼저 사용하는 언어(외국어)를 전공했다. 내 삶의 진취성은 어느 정도인지, 나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왔는지, 살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단 이 문장 뿐 아니라 이 책을 읽고나면 누구나 버킷리스트가 쓰고 싶어질 것이다.

그러나 늘 문제는 현실이다.

 

무엇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자라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이냐.

 

20대는 시간과 체력이 있으나 돈이 없고, 40대는 돈은 있으나 시간과 체력이 없어서

그 밸런스 조합이 좋은 30대가 가장 좋은 시기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공감성 제로퍼센트(0%). 출처가 어디인지 묻고 싶다.

하지만 공감되지않는 나와 다른 30대도 어디인가는 있을 수 있다.

소설 속 남훈에게, 그건 너의 핑계였다고, 늦게라도 대학 갔으면 되지! 그때 보연이를 데리고 올 수 있었잖아! 라고 자신있게 손가락질하며 욕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아니, 누가 있을까 라는 질문이 더 옳은지도 모르겠다.

그 질문에 스스로 마주한 시간, 그때가 남훈의 나이 67이었다.

 

자신이 똑바로 설 작은 공간을 만드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된다.

 

나의 공간과 바로 선 나를 위해 남훈은 스페인어와 플라멩코를 배웠고 보연을 찾았다. 그리고 함께 스페인에 갔다. 양복을 맞춰 입고.

사실, 생각지 못한 결말이었다. 선아를 낳아준 아내와 갈 거라고 예상했던 터였다. 예상과 빗나가 준 결말이 의외이긴 하지만 반갑기도 하다. 보연과의 갈등이 해소됨으로서 남훈이 가진 마음의 부채가 상환되길 바라는 의미였을지도 모른다. 당당하게 똑바로 설 공간은 빚이 없을때 가능해지는 법이니까.

 

가족의 형태나 의미가 갈수록 다양해지고 있다. 그럴수록 자신의 정체성과 소속에 대한 고민은 많아지고 깊어지는 듯 한 요즘이다.

청년일지, 그것은 청년시절의 기록이 아니라 스스로 나누는 자신과의 대화, 고백이라 생각한다.

가족과의 대화도, 나 자신과의 대화에도 다시 온기를 불어넣어주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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