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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평점 :

악마가 고의로 장난을 치듯, 불행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그랬다. ‘불행’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의 삶을 뒤덮은 어둠은 감히 언어로 다 닿을 수 없는 깊이다. 그의 서사는 마치 삶 자체가 형벌인 사람의 기록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서서히 찢어놓는다. 그림자처럼 붙은 악마의 손은 끝내 그를 단 한 번도 놓아주지 않았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1942년 프랑코 정권의 검열 아래 출간되었다. 억압의 공기를 피해 가지 않고, 오히려 그 공기를 더 짙게 들이마신 이 소설은 격리된 농촌의 피폐함과 왜곡된 신앙, 가족 내부의 기형적인 사랑과 증오, 육체와 본능이 충돌하는 장면들을 거칠고도 정교하게 직조한다.
소설의 독특한 점은 파스쿠알의 언어가 놀라울 만큼 문학적이고 격조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고백은 격정 대신 차분과 담담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치 고해성사처럼 자신의 죄를 하나씩 나열하고 조용히 해명한 뒤 받아들인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이 소설의 비극을 더 깊고 오래 아프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죄를 나열하고 해명하고 끝내 받아들인다. 바로 그 차분함과 냉정한 어조가 오히려 이 소설의 비극을 더 깊고 오래 아프게 만든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문학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편하며, 그만큼 정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정적으로는 격렬하고 문체적으로는 절제되어 있다. 철학적으로는 불쾌할 만큼 진실하다. 그 불편한 진실은 독자의 가슴에 깊이 남는다.
이 소설을 통해 나는 한 인간의 파괴를 본다. 그 안에 담긴 체념과 슬픔을 넘어 문학이 사회적 유전자를 어떻게 기입하고 복사해내는지 보았다.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사이코패스에게서조차 설득력을 느끼게 만든 이 작품이다. 그 ‘설득의 침묵’이야말로, 이 소설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불편하고, 다 읽고 나서도 내내 머릿속에 남는다. 마치 죄처럼.
<돈키호테> 다음으로 많이 팔린 스페인 소설이고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스페인에는 작가의 동상까지 세워졌다.
스페인 문학은 이 작품 전과 후로 나눠진다던데 그만큼 영향력이 강했던 소설이다.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비극을 이토록 강렬하게 그려낼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불편함과 몰입이 공존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