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먼슬리 클래식) 먼슬리 클래식 10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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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셸리는 열아홉의 나이에 <프랑켄슈타인>을 써냈다. 흔히 천재라 불리지만, 나는 이 작품이 그녀의 고통이 응결된 자서전이라 믿는다. 작가의 내면은 작품 속에서 투명해진다. 대작의 탄생은 결국 불우한 삶의 산물임을 증명한다. 그녀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프랑켄슈타인>은 심리적 에세이라 부를 만하다.


이 작품은 단순한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작가의 내면 풍경이다. 셸리는 창조자이면서 동시에 피조물이다. 자신의 ‘괴물’을 세상에 내보내고, 그 괴물에게 심판받는 작가. 바로 그 아이러니 속에서 작품의 비극미가 탄생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오만은 인간의 한계를 고발하고, 괴물의 고독은 그녀가 겪은 상처와 결핍을 고백한다.


<프랑켄슈타인>의 위대함은 이 분열에 있다. 작가는 자신을 둘로 나누어 프랑켄슈타인과 괴물로 형상화했다. 그 대립은 자기 내면의 투쟁이다. 과학소설이라는 외피 아래 숨어 있는 가장 개인적 서사. 이 작품은 문학적 상상력과 작가 자신을 해부하는 자전적 실험이 결합한 드문 사례다.


문장은 유려하면서도 감정의 핵심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껍데기 없는 감정이 맨살로 드러난다. 200년이 지난 지금도 세련미는 낡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은 이후의 모든 ‘창조자와 피조물의 서사’를 클리셰로 만들며, 문학사의 거대한 원점으로 자리한다.


기술이 인간의 손끝을 벗어나 독립해버린 지금, 셸리의 고전은 더 이상 19세기의 괴담이 아니라 예언서처럼 읽힌다. 그녀가 200년 전, 열아홉의 나이에 이 작품을 썼다는 사실은 결국 우리가 ‘천재’라는 말을 꺼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재능의 돌발적 폭발이 아니라, 삶이 만들어낸 필연적 결과물이라고 믿는다. <프랑켄슈타인>은 단순히 천재의 창작으로 평가절하될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비극에서 태어난 한 천재의 필사적 고백이 우리 심장에 날카롭게 닿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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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모프의 천문학 입문 - 우주는 여기까지 밝혀졌다 현대과학신서 119
I.아시모프 지음, 현정준 옮김 / 전파과학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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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은 지식의 전달을 넘어 세계를 바라보는 눈 자체를 바꿔놓는다. <아시모프의 천문학 입문>은 바로 그런 책이다. 흔히 ‘입문서’라는 말이 덧씌우는 얄팍함이나 가벼움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책은 방대한 우주를 한 인간의 언어로 옮기는 일이 얼마나 치열한 사유와 서술의 균형을 요구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아시모프는 천문학을 단순히 과학의 하위 분야로 묘사하지 않는다. 그는 우주를 인간이 묻고 또 답해야 할 궁극의 질문들로 제시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SF 거장 아시모프가 보여주는 문장의 리듬이다. 그는 물리학적 사실을 서술하면서도 언제나 그 사실에 깃든 은유적 울림을 놓치지 않는다. 일상에서 그에게 과학 얘기를 꺼내는 순간 그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그가 뛰어난 이야기꾼인 건 확실하다. 그에게 태양의 진화는 한 별의 생애사이자 인간 생의 덧없음을 압축한 우화가 된다. 은하의 팽창은 우리가 결코 닿을 수 없는 진리와의 거리를 은밀히 속삭인다. 


별과 은하의 간격은 그에겐 계산식이 아니라 상상력의 무대다. 과학 서술임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문학적인 매력을 띤다. 독자는 지식을 얻는다기보다 우주와 인간 존재가 맺고 있는 은밀한 관계를 새삼 자각하게 된다. 읽다 보면 상상력이 극대화된 칼 세이건을 만나는 듯한 경험을 준다.


물론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면 이 책의 지식은 낡은 부분이 있다. 그러나 바로 그 낡음 속에 빛나는 것은 과학을 단지 ‘업데이트 가능한 데이터’로 소비하지 않고, 당대의 언어와 세계관으로 우주를 서술하려는 아시모프의 열정이다. 그는 교과서적 정밀함보다 독자의 정신을 흔드는 통찰을 선택했고, 그 선택이 '천문학 입문'을 단순한 학습서가 아닌 우주의 문학으로 만든다. 우주에 관심을 갖게 하는 데 이보다 완벽한 책은 드물다. 무엇보다 책이 짧으니까!


우주는 누구도 끝내 설명할 수 없는 공간이자, 인간 정신이 끝내 포기할 수 없는 대상이다. 아시모프의 이 책은 그 간극에서 태어난 아름다운 기록이다. 그는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가능한 한 멀리, 넓게 독자를 데려간다. 바로 그 집요한 열망과 상상력이 이 책의 가장 큰 감동이다.


아시모프는 자신이 천문학에 전문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말한다. 그의 호기심과 상상력은 전문 지식의 울타리에 갇히지 않았기에 순수하게 살아남았다. 그런 원천에서 길어 올린 언어는 SF 거장다운 아름다움으로 독자에게 전해진다. 이 책은 과학이라는 이름을 빌려 결국 인간학의 깊이를 드러내는 드물게 순수한 고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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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
오후 지음 / 동아시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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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라는 작가를 처음 접한 책이다. 그는 늘 농담처럼 시작해 진담으로 끝낸다. <믿습니까? 믿습니다!> 역시 그렇다. 제목만 보면 종교 서적인가 싶지만 책을 펼쳐보면 '미신'에 관한 이야기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읽다 보면 미신을 믿듯 글을 믿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사실과 어긋나는 부분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이 아쉬움은 절대 작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웃음을 자아내는 재능이 확실하다. 그의 문장에는 웃음 뒤로 뒷골을 당기는 서늘함이 있다. 작가는 미신을 조롱하는 대신 그 내장을 파헤친다. 더럽지만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미신은 '믿음'을 흉내 내는 인간적 장치라고 그는 말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재미다. 얕은 지식으로 여러 역사적 사실들을 늘어놓는 방식은 인문 교양서라 부르기엔 다소 민망하다. 사실이 아닌 것들을 사실처럼 서술해 둔 부분은 곧잘 검색을 필요로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의 과감한 문장은 곳곳에서 흠칫 놀라게 만들고, 재치 있는 전개는 불시에 웃음을 터뜨리게 한다. 이 점만큼은 분명히 이 책의 미덕이라 할 만하다.


문체는 특유의 익살을 띠지만, 그 익살은 결국 독자의 무장을 풀어내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한 장을 읽으며 키득거리다 보면 이내 “나 역시 다른 이름의 미신을 믿고 있구나”라는 자각이 따라온다. 그때의 웃음은 미묘하게 쓴맛을 동반한다. 목이 타서 시원하게 들이켠 콜라가 목 안에서 타오르는 순간이다.


책은 유쾌하게 읽히지만, 동시에 가볍게 소비되기에는 곤란한 질문들을 던진다. ‘믿음’이란 검증 불가능한 것을 확신하는 행위다. 과학, 종교, 정치적 신념 역시 동일한 구조 위에 세워진다. <믿습니까? 믿습니다!>는 이런 모순들을 지적하며 '미신'을 비웃는 대신, 그것을 비웃는 우리의 태도를 거울처럼 비춘다. 작가의 능청스러운 문장력과 재치는 독서의 즐거움을 보장하지만, 주제의 무게에 비해 내용이 지나치게 얕다는 아쉬움은 끝내 지워지지 않는다.


결국 이 책은 완벽한 교양서는 아니다. 웃음 속에서 불편한 자각을 안겨주는 에세이에 가깝다. 미신을 믿든 말든, 적어도 오후의 농담만큼은 한 번쯤 믿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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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서의 괴로움
오카자키 다케시 지음, 정수윤 옮김 / 정은문고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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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배송비를 맞추기 위해 덤으로 얹은 책은, 단순히 표지와 제목만 보고 고른 오카자키 다케시의 <장서의 괴로움>이었다. 그러나 독서가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책에 관한 책은 언제나 유혹적이라는 것을. 이 책은 독서가이자 ‘장서가’로 살아가는 이들의 잡문을 모은 에세이다. 작가 자신과 책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단순한 애정에서 시작된 책에 대한 감정이 어느새 집착과 결핍, 불안이라는 병증으로 변질되는 과정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작가는 책 없이 살 수 없다. 애서가와 수집광 사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걷다 결국 수집병으로 떨어진 사람이다. <장서의 괴로움>이 특별한 이유는, 책에 대한 사랑을 찬양하거나 독서의 미덕을 역설하는 교양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 책은 넘치는 책의 탑에 압도되어 결국 읽지 못하는 자신을 풍자한다. 자신이 잘 공간도 침범할 정도로 책의 요람 속에 싸여서 괴로워하면서도 또 다시 책을 사지 않으면 미쳐버리는 자신의 체질을 고백한다. 이 책에는 ‘독서’를 위한 수집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수집에 가까운 장서가들의 진실한 고백이 담겨 있다.


목적이 반전된 ‘책을 사는 행위’는 결국 존재의 방식이 된다. 이 책 속 인물들은 책 때문에 집이 무너지고,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눈총을 받으며, 안락해야 할 공간마저 책에게 점령당한 삶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그들은 책 속에서 살아 있음을 느낀다. (여기서 말하는 ‘책 속’은 말 그대로 책탑에 둘러싸인 삶을 뜻한다.)


<장서의 괴로움>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의 부끄러움을 껴안는다. 완성되지 않을 독서의 꿈을 다정하게 감싸는 고해성사다. 인간의 끝없는 소유욕과 불완전함을 유쾌하게 품는 문학적 자화상이다. 해결되지 않는 욕망을 자백하며 그 욕망과 웃으며 마주선다. 실용서의 외형을 띠고 있지만, 본질은 책에 대한 왜곡된 사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열정에 대한 자전적 고백이다. 남들이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잘못된 건 아니다. 그들의 사랑이 다소 뒤틀려 보일지언정, 결코 틀린 사랑이라 할 수는 없기에.


오늘도 우리는 읽지도 못할 책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바쁜 하루의 틈에서 괜히 서점에 들러 책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다. 장서가의 기질을 가진 애서가들은 자신이 가진 책의 수보다, 죽기 전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의 수가 훨씬 적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또 책을 고른다. 그런 이들이 바로 이 책의 잠재적 공범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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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4
카밀로 호세 셀라 지음, 정동섭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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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가 고의로 장난을 치듯, 불행이 평생을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파스쿠알 두아르테가 그랬다. ‘불행’이라는 단어 하나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그의 삶을 뒤덮은 어둠은 감히 언어로 다 닿을 수 없는 깊이다. 그의 서사는 마치 삶 자체가 형벌인 사람의 기록처럼, 읽는 이의 마음을 서서히 찢어놓는다. 그림자처럼 붙은 악마의 손은 끝내 그를 단 한 번도 놓아주지 않았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1942년 프랑코 정권의 검열 아래 출간되었다. 억압의 공기를 피해 가지 않고, 오히려 그 공기를 더 짙게 들이마신 이 소설은 격리된 농촌의 피폐함과 왜곡된 신앙, 가족 내부의 기형적인 사랑과 증오, 육체와 본능이 충돌하는 장면들을 거칠고도 정교하게 직조한다.


소설의 독특한 점은 파스쿠알의 언어가 놀라울 만큼 문학적이고 격조 있다는 사실이다. 그의 고백은 격정 대신 차분과 담담으로 점철되어 있다. 마치 고해성사처럼 자신의 죄를 하나씩 나열하고 조용히 해명한 뒤 받아들인다. 그 차분함이 오히려 이 소설의 비극을 더 깊고 오래 아프게 만든다. 그는 자신의 죄를 나열하고 해명하고 끝내 받아들인다. 바로 그 차분함과 냉정한 어조가 오히려 이 소설의 비극을 더 깊고 오래 아프게 만든다.


<파스쿠알 두아르테 가족>은 문학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편하며, 그만큼 정직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감정적으로는 격렬하고 문체적으로는 절제되어 있다. 철학적으로는 불쾌할 만큼 진실하다. 그 불편한 진실은 독자의 가슴에 깊이 남는다.


이 소설을 통해 나는 한 인간의 파괴를 본다. 그 안에 담긴 체념과 슬픔을 넘어 문학이 사회적 유전자를 어떻게 기입하고 복사해내는지 보았다. 소름 돋는 경험이었다. 사이코패스에게서조차 설득력을 느끼게 만든 이 작품이다. 그 ‘설득의 침묵’이야말로, 이 소설을 잊을 수 없게 만든다. 그래서 이 책은 읽는 내내 불편하고, 다 읽고 나서도 내내 머릿속에 남는다. 마치 죄처럼.


<돈키호테> 다음으로 많이 팔린 스페인 소설이고 작가는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그리고 스페인에는 작가의 동상까지 세워졌다.


스페인 문학은 이 작품 전과 후로 나눠진다던데 그만큼 영향력이 강했던 소설이다. 인간 내면의 폭력성과 비극을 이토록 강렬하게 그려낼 수 있구나... 하고 감탄하게 만든 소설이었다. 읽는 내내 불편함과 몰입이 공존했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여운이 많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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