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 과학의 모든 역사 - 인간의 가장 깊은 비밀, 뇌를 이해하기 위한 눈부신 시도들
매튜 코브 지음, 이한나 옮김 / 심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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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모둠초밥 먹을 때 어떤 초밥부터 드세요?
1. 제일 맛있는 거 먼저
2. 맛있는 건 제일 마지막에
3. 아무거나

뇌 과학자 정재승 교수에 따르면 통상적으로 장남 장녀는 맛있는 것을 마지막까지 남겨두고, 막내는 맛있는 걸 남길 여유가 없어서 가장 먼저 먹는다고 한다. 쾌락을 오래 유지하려면 마지막까지 둬야하기 때문에 권력이 있고 형편이 괜찮은 장남장녀의 뇌가 맛있는 걸 마지막에 먹기로 선택하는 거란다. 초밥은 원칙대로 흰살생선 초밥부터 먹지만 다른 음식 먹을 땐 제일 좋아하는 걸 마지막에 먹는 편인 나는 K-장녀라서 이 얘기가 조금 무서우면서도 흥미로웠다. 뇌를 이해하는 것이 곧 나 자신을 아는 길이란 생각에... 또 나의 뇌를 더 계발하고 싶단 생각에 뇌 과학 관련 책을 읽어보기로 했다.

정재승 교수가 어마무시하게 재미있는 뇌 과학의 역사책이라고 강력추천한 <뇌 과학의 모든 역사>는 맨체스터 대학교의 생명과학부 교수이자 동물학자인 매튜 코브가 쓴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간이 뇌를 어떻게 이해해왔는지 방대한 역사를 다룬, 600페이지가 넘는 벽돌책이라 첫인상이 꽤 위압적인데 의외로 아주 많이 어렵진 않다. 저자가 학자일뿐만 아니라 작가이자 번역가로도 활동 중이라 그런지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비교적 쉽게 쓴 덕분인 거 같다. 그래서인지 정재승 교수는 이 책을 LA에서 한국으로 건너오는 비행기 안에서 단숨에 읽었다는데 아무리 그래도 이런 책을 어떻게 단숨에 읽는지 곰돌이 박사님 참 대단쓰...🙊

💕말해주세요, 사랑은 어디에서 태어나나요?
심장인가요 아니면 머리인가요?
- <베니스의 상인> 3막, 셰익스피어

인간은 불과 300여년 전까지 뇌가 아닌 심장을 생각과 감정의 근원이라 여겼다. 거기에는 우리가 익히 아는 아리스토텔레스도 크게 한몫 했다. "온기가 있고 움직임이 있는 심장이야말로 생명의 핵심 요소라는 증거"란 주장은 충분히 일리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그의 영향력이 워낙 막강해서 심장 중심의 관념이 쉽게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중세 유럽까진 사실보다 신앙이 지식의 본질이었다. 이렇게 실증적 탐구를 방해한 요소들이 과거의 이야기인가? 그렇지가 않다.

"2010년, 세계 2대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과 아스트라제네카에서 정신질환 피료 목적의 신약 개발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돈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 -418p

지금은 돈 돈 그놈의 돈이 문제다. 백신 개발도 인류를 위해서가 아니라 돈 때문에 했던 거지... 그래서 개발도상국이나 최빈국은 백신을 제대로 지원받지도 못한 게 그제야 떠올랐다.

이 책은 역사서인데도 뇌 과학의 현재와 미래까지 다루고 있다. 인간이 뇌를 이해하기 위해 시도했던 것들, 마침내 밝혀낸 사실들만 흥미롭게 볼 게 아니라 그 과정에 윤리적 문제는 없었는지 성찰하고 앞으로 수반해야 할 윤리적 태도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뇌 과학뿐만 아니라 우리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마찬가지다. 그리고 이런 것이야말로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ㅡ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대로 작성한 서평입니다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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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 말을 못하는 겁니다 - 일의 디테일을 완성하는 말투와 목소리
이규희 지음 / 서사원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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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열심히 하면 언젠간 알아주시겠지..."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겸손이 미덕이었던 시대는 끝났다.
곰처럼 일'만' 잘하는 당신에겐 이 책이 필요하다!

제목보다도 위의 세 줄 때문에 본 책이다. 내가 바로 그 곰이니까. 티내지 않으면 손해보는 게 사회생활임을 안 지는 꽤 됐다. 물론 알아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 수가 적었고 나에게서 자신들의 과거를 본 선배 곰들이었다. '나는 알아. 실은 네가 한 거. 근데 다른 사람들은 몰라. 보이게 일해. 넌 네가 한 티를 좀 낼 줄 알아야 돼" 이런 얘기 한 두번 들은 거 아닌데 그게 참 쉽지 않다.

"일만 잘하면 되지 말까지 잘해야 합니까!"
내말이 그말이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들하고만 일할 수 있다면 고민 없을 텐데... 그렇지가 않은 게 이바닥 현실이고 사회생활이니 바로 적용가능한 팁을 얻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나한테는 효용성이 없거나 아는 얘기가 많았다 . 특히, 두괄식으로 보고하란 얘기. 4년 차 때 만난, 인간적으론 좋아하지 않았지만 일 하난 확실했던 선배가 그거 하난 확실하게 알려주었다. 본인은 기억도 못 할 것 같지만 어디선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 가르침에 대한 고마움은 표현해야겠다.

내가 기억해 둘 내용은 자기소개에 퍼스널브랜딩 적용하기와 상대의 핵심적인 단어를 반복, 복사함으로써 상대방에게 공감을 표시하고 신뢰를 얻는 능동적인 경청습관, 백트래킹이다.

그외의 내용은 서비스직에 종사하거나 종사하고 싶은 사람 또는 말하기 자체에 자신감이 부족한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참고로 저자가 국제선 퍼스트클래스 담당 승무원이자 항공사 교육훈련팀에서 기내방송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 교관이고 보이스 및 이미지 메이킹 코치다. 올바른 키톤 찾는 법, 매력적인 보이스 연출, 자기만의 말투와 분위기로 '셀프 브랜딩' 하는 법이 궁금하다면 읽어보시길!

-출판사 #서사원 #seosawon 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대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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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온
고승현 지음 / 99퍼센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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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힘을 창조된 기계에 불어넣으면
우리는 기계를 제어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계들은 야생성을 획득하고,
또한 야생에 수반되는 의외성을 띤다.
이것이 바로 모든 신들이 마주하는 딜레마이다.
즉, 신들은 그들이 만든 최상의 창조물을 완전히
지배할 수 없게 된다는 문제를 받아들여야 한다.
-케빈 캘리

SF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편인데 정말 우연히 읽었던 #돌이킬수있는 이란 소설은 진짜 너무너무 좋았다. (feat. #정여준🙆‍♀️💕)그런 작품을 또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에 SF는 믿거하던 습관을 버리기로 했던 터라 읽게 된 책이다.

솔직히 프롤로그 볼 때 이게 대체 뭔 얘기인가 싶었다. 단서 제공 차원인지 영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언급되기도 하는데 안 본 영화라 별 도움이...ㅎㅎ 옛날에 내가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에 똑같이 트롤이란 이름의 괴물이 등장하는 걸 신기해하자 트롤은 북유럽 신화의 괴물이 모티브고 웬만한 판타지물에 다 나온다고 얘기해주던 친구가 떠올랐다. 혹시 SF물을 좀 아는 사람들은 뻔히 아는 얘기인데 내가 영 문외한인 게 문제인 걸까. 끝까지 이러면 어떡하지 싶었는데 (다른 분들 서평보니 다행히 나만 이랬던 건 아니었다ㅋㅋㅋ) 1부에 들어서자 첫줄부터 흥미롭더니 꽤 흡입력 있는 전개가 펼쳐졌다.

1부 음모, 2부 실체, 3부 진실로 구성된 <이데온>은 정확히 언제인진 알 수 없지만 아주 먼 미래의 가이아란 세계를 배경으로 팽이라는 인물이 테라라는 이름의 이드를 우발적으로 살해하면서 시작된다. 이드는 구성하는 모든 세포와 입자, 겉모습은 인간과 똑같지만 굳이 따지자면 90% 정도는 인간, 10%는 기계 같은 존재로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그 역사나 그들의 정체성에 관해선 밝혀진 바가 없다. 알 수 없는 이유로 관련 연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드 살해는 중대 범죄인데 이상한 점은 핑이 불과 하루 전까진 만난 적도 없는 정체 모를 여자 때문에 이런 짓을 하게 됐단 점이다.

아니 도대체 왜? 그리고 이드는 어떻게 생긴 것이며 연구는 왜 못하게 한단 말인가. 또 갑자기 나타나 핑의 인생을 뒤흔든 여자의 정체는 무엇이며 가이아에 대체 어떤 음모가 있는 것인지, 진실은 무엇인지 궁금해서 책장을 부지런히 넘길 수밖에 없었다. 등장인물이 워낙 많아서 헷갈리지 않으려면 메모도 부지런히 해야했고ㅎㅎ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피라미드와 훈민정음, 단군이 이 세계의 신화 속에 등장할 정도로 아주아주 먼 미래가 배경인데도 등장하는 이어폰, 자동차 등의 신문물은 아주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가 이용하게 될 것 같은 것들이었단 점? 물론 특이한 것도 나오긴 하지만 이미 개발 중인 걸로 뉴스에서 본 것도 있고 다른 영화에서 봤던 거 같기도 하고~ 분자생물학이나 물리학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라 해도 이런 면은 살짝 아쉬웠다….그래도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걸 상상했을까란 생각을 더 많이 한 게 사실이지만🤣

여튼 스포없이 이 책이 뭔 내용인지 궁금하시다면
아래 문단을 참고해주세용👍

"<이데온>은 인간의 유한한 삶에 대한 저항과 그것을 뛰어넘은 인류가 펼치는 미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류가 만들어낸 신과, 신이 되려는 창조물, 그리고 그 틈바구니에서 발버둥 치는 인류의 모습이 실타래처럼 얽혀있습니다."
 
-출판사 #99퍼센트 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았으나 주관대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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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 -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위선적 신분제
이저벨 윌커슨 지음, 이경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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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카스트 #RHK북클럽

제목만 봤을 땐 당연히 인도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가장 민주적인 나라의 위선적 신분제'라는 부제를 보니 물음표가 생겨서 읽게 됐다. 카스트는 인도 고유의 문제적 신분제 아니던가? 의아했는데 저자인 이저벨 윌커슨이 아프리카계 미국인 여성이고 미국의 인종차별과 불평등을 밝힘으로써 미국 언론 역사상 최초로 퓰리처상을 받았다는 걸로 보아 이 책에서 말하는 카스트는 인도가 아니라 미국의 것임이 분명했다.

"인류의 역사에서 카스트 체제는 크게 3개가 있다.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들어 비극으로 치닫다 진압된 나치 독일의 카스트 체제. 좀처럼 사라질 기색 없이 수백 년을 이어온 인도의 카스트 체제. 마지막으로 드러나거나 언급되지는 않지만 형체를 바꿔가며 존속해 온, 인종에 기반을 둔 미국의 카스트 피라미드. 이 세 카스트 체제는 특정 부류에 열등한 족속이라는 낙인을 찍어 서열의 밑바닥에 묶어둔 채, 규칙대로 실행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비인간적 행위를 정당화했다. "-36p

"인류학자 애슐리 몬터규는 인종을 생물학적 개념이 아닌 '인간의 발명품이자 하나의 사회 구조'라고 주장한 최초의 인물이다. (중략) 1942년에 그는 이렇게 쌌디. '우리는 미국에서 인종 문제를 말하지만, 사실 그것의 실체는
카스트 체제다. 인종 문제는 그 카스트 체제가 미국에서 만들어 낸 현상이다." -46p

미국의 인종차별 문제가 극심하다곤 해도 나치와 유대인, 브라만과 불가촉천민에 견줄 정도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카스트>를 통해 인종차별의 역사와 수많은 사례들을 접하고 나니 저자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인종은 인간의 발명품이고 인종 문제는 카스트 체제가 만들어 낸 현상이란 주장 역시 근거가 넘쳐나서 여지껏 인종을 당연히 생물학적 분류로 여겼던 나 자신에 모순을 느끼고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카스트>에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학살하는 데 있어 롤모델로 삼은 것이 미국의 인종차별이었다는 충격적 역사도 담겨 있고 차라리 소설이기 바라게 되는 실제사례도 넘쳐난다. 미국 역사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적었던 나로서는 이제야 영화 #그린북 도 제대로 이해됐다.

읽으며 한숨이 절로 나오고 손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하기도 하고 순식간에 슬픔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다 한동안 읽어내려가지 못한 때가 있었는데 한 백인 여성이 백인 아이 둘을 데리고 있는 흑인 남자가 납치범인 것 같아서 쫓아다니며 지켜보다 결국 신고했다는 사례때문이었다. 솔직히 처음엔 카스트때문에 스토킹까지 하게 된 사람으로 소개된 그 여자의 행동에 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연관성이 전혀 없어보이는 세 사람의 그림이 좀 이상해서… 납치범일 가능성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나? 신고는 좀 과할지라도 나도 좀 이상하게 여겨서 지켜보긴 했을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문제인가 싶었는데 다음 줄에…뉴욕 타임지에 실렸다는 아이의 인터뷰를 읽고 너무 부끄러워졌다.

"다음번에 만나면 그 아줌마에게 우리를 3개의 피부색으로 보지 말고 그냥 세 사람으로 봐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우리가 루이스 아저씨의 입양아일 수도 있잖아요." -275p

그러게. 게다가 만약 백인 남자가 백인 아이 둘을 데리고 있었다면 그들을 한순간이라도 눈여겨 봤을까 하는 생각에 미치자 한동안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절대 아닌 줄 알았는데… 이렇게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조차 미국 카스트 영향권 안에 있는 걸 보면 그 사회에 속한 이들은 오죽할까.

어렵진 않은데 흥미롭다, 재미있다기엔 너무 아프고 무거운 진실이 많네..그래도 이런 책이 널리 읽혀야지..

#필독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북리뷰 #독서 #책 #책추천 #book #bookstagram #rea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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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 해 봐요 - 판사 김동현 에세이
김동현 지음 / 콘택트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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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해 보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걸 알지만 생각만 실컷 하고말 때가 많다. 그래도 자극이 있으면 단 며칠이라도, 뭐라도 시도해 보기도 하니 종종 동기부여용 책을 찾아 읽곤 한다. 그렇게 만난 <뭐든 해 봐요> 동기부여와 함께 恕(용서할 서)라는 또 하나의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저자인 김동현 판사는�후천적 시각장애인이다. 로스쿨 재학 당시, 남들도 많이 하는 간단한 시술을 받았는데 주사액이 혈관으로 들어가 역류하면서 눈으로 가는 동맥을 막았고, 혈액 공급이 되지 않아 시신경이 괴사한 것이다. 명백한 의료사고였고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tvn <유 키즈 온 더 블록> 출연 영상을 보면 사고였단 사실은 언급되는데 구체적인 사고 경위나 그 비극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밝힌 바가 없다. 아무래도 당시를 회상하는 건 심적으로 너무 힘든 일일 테니 섭외를 수락하면서 양해(?)를 구하셨나 보다 지레짐작했었는데 책을 보고 나니 사고를 낸 의사에 대한 배려였구나 싶다.

" 恕(용서할 서)는 如 (같을 여)에 心(마음 심)이 합쳐진 글자다. 마음은 다 같으므로 내 마음을 통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뜻이다. "-49p

"사고가 난 그날 밤 나는 절망과 분노와 한숨으로 밤을 지새웠다. 그러다 문득 병실 구석에 웅크린 채 잠든 의사의 존재를 알아차렸다. 저 의사도 자기가 원해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닐 텐데 새벽까지 혼자 동분서주하며 사고를 수습하려고 애쓰던 모습이 생각나 짠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밉고 화가 나긴 하지만 그래도 자기 도리는 하는 사람이다 싶었다. 마음이 조금 누그러들었다. 그 이후로도 그는 내가 전원할 병원을 알아보고 이것저것 챙기느라 며칠 집에도 못 들어간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면서 내가 그 입장이라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자기 과실로 큰 사고가 생겼다. 피해자는 양안 실명 상태. 회복 가능성 없음.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 피해자 가족들은 어떻게 나올까? 나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도 많이 두렵고 힘들었을 것이다. 자기 선에서 해야할 것은 다 하고 있었고,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거기다 대고 내가 화를 내고 무리한 요구를 하면 어떻게 될까? (중략) 명백한 의료사고인 만큼 피해자가 완전히 우위에 있었다. 어떤 관계를 설정할지에 대한 주도권이 순전히 나에게 있었다는 뜻이다. 이미 벌어진 일, 화를 좀 참고 상대방 입장을 배려하자 내가 원하는 것도 얻고 내 마음도 편해질 수 있었다." - 50~52p

믿기 어려웠다. 자신의 시력을 앗아간 의사를 용서하고 끝까지 배려한다는 것이... 본인은 착해빠진 순둥이도 아니고 대단한 성인군자도 아니라는데 이런 종류의 용서는 성인(聖人)만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옳은 방향을 알아도 그쪽으로 내딛진 못하고 후회할 때가 많은데…갈림길에 놓일 때마다 김동현 님의 용서를 떠올리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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