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법은 인간이 잉태된 순간부터 13세에 이를 대까지 그 생명에 대한 침해를 금지한다. 그러나 13세에서 18세 사이의 아동은 부모가 소급적으로 <중절>할 수 있다. 조건은 아동의 생명이 <기술적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아동을 중절하는 동시에 살려 두는 과정을 <언와인드>라 한다. 언와인드는 현재 사회에서 용인되는 흔한 관행이다.” -p.11👩💻첫 페이지를 읽었을 때의 충격이 생생하다. 시리즈 내내 그랬다. 4편도 마찬가지다. 일례를 공유한다.📚“리사는 잠깐 시간이 지나서야 그 방의 반대쪽 끝에서 이 공간을 점령하다시피 자리하고 있는 것을 알아본다. 악기다. 파이프 오르간이다. 다만 반짝이는 놋쇠 파이프 대신, 이 파이프에는 얼굴이 달려 있다. 수십 개의 얼굴이. (중략) 박박 깎인 머리들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그저 건반 위에 대칭적으로, 여러 층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원형의 관과 도관으로 건반에 연결되어 있다. 혐오감 그 자체다. (중략) 너무 끔찍스럽다.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천천히 건반을 누른다. 그녀의 눈 바로 앞에서, 몸이 없는 얼굴이 입을 벌리며 완벽한 가온음 도를 목소리로 낸다.”-p.371~372#스포주의아니, 작가님…. ‘장기 오르간’이라니요… 이 끔찍한 상상물을 공개하시기에 앞서 실존하는 신체 예술(인간의 살과 피, 뼈로 만들어진 창작물) 관련 자료를 제공함으로써 최소한의 예고를 하시긴 했지만…이건 너무 가지 않았나 싶었을 정도로 소름이었습니다….게다가 주인공 코너가 언와인드를 당하다니… 당연히 속임수인 줄 알았는데!!!!이 대목에서 또 한번 큰 충격을 받은 난… 마치 내가 리사라도 된 듯 슬픔에 잠겨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밤하늘의 별 따기를 실행에 옮긴 레브의 자기 희생도… 끝까지 처절하게 저항하는 아이들의 운명이 완전한 비극으로 치닫는 것 같아 마음이 너무 무거웠는데와… 리와인드를 이렇게 써먹네… 나는 왜 전혀 예측을 못 했지? ㅎㅎㅎ솔직히 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 중 위기나 절정에 해당할 3편 언솔드가 살짝 늘어진다 싶었는데 4편이 완전 휘몰아치고 떡밥 수거까지 깔끔해서 기분 좋게 끝냈다.하지만 작품 전체가 허구인 듯 허구가 아닌 것 같아 마냥 좋지만은 않기도. 특히 주인공들이 마침내 승리했다는 점이… 해피엔딩을 맞이했다는 점이 가장 허구적인 것 같아 아이러니하달까.그리고 하나의 질문이 계속 맴돈다.✅️‘무엇이 우리를 사람으로 만드는가?’갓 잉태된 태아 vs 인간이 창조한 인간, 캠 vs 사람단 한 명만 살릴 수 있다면 대부분 사람을 택할 텐데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인가? 사람이 대체 무엇이기에…?이렇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져주는 동시에 지루하지 않은 작품은 많지 않다. 고로 나는 오늘도 추천한다.닐 셔스터먼의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를!
말도 안 되는 착각 때문이었다. 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와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을 헷갈렸던 것;;; 물리학은 몰라도 <알쓸인잡>이라는 프로그램에 소개된 파인만의 러브스토리와 편지 덕분에 그에게 좋은 인상을 갖고 있던 내가 아주 단단히 착각해서 모종의 위로를 기대하며 읽게 됐는데…책날개에 있는 저자 사진을 보고도 이상한 줄 모르다가 ‘현재 뉴칼리지의 명예교수로 재직 중’이란 정보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어쩐지… 유작이 아니라 신작으로 홍보하더라니 세상에… 헷갈릴 걸 헷갈려야지 나도 참… 덕분에 위로를 얻긴커녕 팩트로 두드려 맞았다.이 책의 주제는 하나의 책이자 사자(死者)의 유전서인 동물의 몸과 행동 즉, ‘표현형’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다.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도킨스가 특별한 장치 하나를 마련했더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동물의 몸을 접하고 그 표현형을 읽어내는 일을 하는 가상의 미래과학자 ‘소프’가 그것.📚 유전자는 어떻게 ‘불멸성’을 획득할까? 사본의 형태로 생존하고 번식할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다음 세대로 더 나아가 미래까지 성공한 유전자가 전달되도록 몸들의 기나긴 연쇄에 영향을 미침으로써다. 성공하지 못한 유전자는 집단에서 사라지는 경향이 있다. 그 유전자가 성공적으로 깃든 몸이 생존해서 다음 세대를 남기는 데, 즉. 번식에 실패하기 때문이다.-.p.252👩💻 이해를 돕는 사진자료도 풍부한 편이고 진화나 자연의 신비함은 놀라웠지만 내겐 역시나 어려웠고 실패한 유전자로 확인사살 당한 기분을 떨치기는 더 어려웠다. 착각하지 말았어야 할 것을 착각한 업보지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킨스의 신작이 나오면 또 눈이 갈 것 같다. 그때는 확실히 소화할 수 있게 배경지식을 더 탄탄히 해두기를.📚 당신은 하나의 책, 미완성 문학 작품, 기술적 역사의 보관소다. 당신의 몸과 유전체는 오래전에 사라진 연속된 다채로운 세계들, 오래전 살았던 조상들을 에워싸고 있던 세계들에 관한 종합 기록물로서 읽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자(死者)의 유전서다.-p.9👩💻 일단 어제보단 더 charmer가 돼야지, !
📚“사람들이 장기에 매달리게 된 만큼, 잰슨은 언와인드를 끝내는 유일한 방법이 언와인드에서 채취할 필요가 없는 더 저렴한 장기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았지. 채취의 필요성을 없애면, 사람들은 양심을 되찾을 테고 언와인드는 종식될 테니까.”-p.573👩💻 <언와인드 디스톨로지>를 읽으며 뇌세포를 포함한 신체 모든 부위를 이식할 수 있는 신경 접목 기술의 실제 개발 가능성이 궁금했다. 작중에선 근육 기억 때문인지 뭔지 때문에 기증자의 기억까지 이식되기 때문에 과학과 의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실현 불가능하길 바라며 읽었고. 그런데 3부 <언솔브> 후반부에서 인간의 장기를 만들 수 있는 프린터가 등장하면서 이러한 기술 개발을 조금 기대하는 나를 발견했다. 실현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3D프린터가 음식도 만들어줄 수 있다던데 장기 제작도 가능하지 않을까? 가능해진다면 이 작품에서처럼 기증자의 기억까지 이식되는 불상사(?)도 없을 테니 나쁠 것 없지 않나 싶은데 너무 안일한 생각같기도. 어리석은 우리 인간의 욕심이 일부 장기에 그칠 리 없을 테니…3부를 보며 언와인드란 끔찍한 제도의 시작과 끝이 결국 ‘돈’이었구나 싶었다. 인류를 구하고자 개발한 기술을 돈 때문에 악용한 인간들이 죄도 힘도 없는 동족에게 저지른 참극. 하지만 그 시작과 끝에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 때문에 희생되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죽는 날까지 맞서 싸운 한 사람, 잰슨 라인실드가 있었으니… 우리는 지금도 눈 앞의 이익, 당장의 편리함을 위해 지구를 파괴하며 살아간다. 일회용컵 하나 덜 쓰려고 노력하는 사람에게 “야, 너 하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거 없어.” 라고 하는 사람 진짜 많은데... 남들이 뭐라 해도 후대를 위해 작은 것 하나라도 소신 있게 지키는 그 ‘한 사람’이 작중 라인실드 같은 사람일 수 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 덕에 인류가 존속하는 것 같기도. 그래서일까? 4부작 중 위기, 절정에 해당할 3부를 완독했는데도 딱히 긴장감이 없네. 다 잘될 것 같달까… 📚“희망은 멍들 수도 있고, 두들겨 맞을 수도 있다. (중략) 그러나 희망을 죽일 수는 없다.”-p.580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시리즈 중 2편인 <언홀리 :무단이탈자의 묘지>도 꿀잼이다. 한 번이면 충분할 단순 재미가 아니라 함께 사유해보고 싶은 대목들이 많아서 더 재미있다. 보라색 인덱스는 인상깊은 문장, 파란색 인덱스는 생각할 거리가 있는 대목에 붙였는데 보라! 한 두개 붙인 게 아니다ㅎㅎ 나도 모르는 새 디스토피아 SF가 취향이 된 것 같기도.#스포주의 1편에서 내게 가장 큰 충격을 안긴 소재가 ‘인간 십일조’였다면 2편에는 ‘최초의 합성 인간, 캠’이 있다.영화화된다던데 캠을 어떻게 구현할지 상상이 안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새로운 형태의 생명체이자 완벽한 짐승이라고도 불리는 캠은 언와인드된 99명의 신체 일부를 합성한 존재라 피부 조각이 전부 다른 색조로 이루어져 있어 뼈와 근육, 연골 위에 덧붙여진 살아 있는 퀼트처럼 보인다. 머리카락도 서로 충돌하는 작물이 들쑥날쑥하게 돋아난 밭처럼 다양한 색깔과 질감으로 채워져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프랑켄슈타인이 만들었던 괴물보다 형언하기 어려운 형상인 그의 심장은 올림픽 수영 선수가 될 수도 있었던 소년의 것이며 팔과 어깨는 최고의 야구선수의 것이었으며 손은 뛰어난 기타리스트의 것이었다. 신체 전부가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존재를 창조한 인간들은 그가 새로운 세상의 기적이라 말하지만 그는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처럼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 그의 탄생이 기적이라 한들, 무엇과 누구를 위한 기적이란 말인가? 자신을 창조한 이유를 묻는 캠에게 그들은 ‘할 수 있으니까’라 답할 뿐인데…참, 2편에서는 ‘언와인드’가 단순히 하트랜드 전쟁을 끝내기 위해 만들어진 타협안이 아니라 테러 세대를 없애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는 비밀도 밝혀진다. 뭔 소린지는 직접 읽어봐야 ㅎㅎㅎ그나저나 참 재밌는데 제목이 하필 <언홀리>라서 샘 스미스와 황제성이 자꾸 떠올랐네. 고것이 고것이 아닌디ㅎㅎㅎ 4편까지 어서 독파하고 싶다!📚 “자유롭지 않은 세상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법은, 존재 자체가 반란 행위가 될 만큼 절대적으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알베르 카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