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우스트 열린책들 세계문학 73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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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트헨과 엮이는 초중반부는 전개속도가 빠르고 흥미진진한데 중반부를 지나서부터는 지지부진한 감이 든다. 그레트헨이 그후 어떻게 됐는지도 확실히 나오지 않아 아쉽고 파우스트의 감정이 너무 얄팍해보인다. 뭐 둘의 이야기에 너무 집중하면 막장드라마 전개가 될 테니 적당히 잘라주는 게 작가의 의도에 맞겠지만. 그리고 파우스트의 영혼이 구원받는 과정이 순식간이라 당황스러웠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의외로 읽기 쉬웠던 작품이다. 고전이라 해서 읽기 전엔 겁먹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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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에디션 D(desire) 9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지음, 김미정 옮김 / 그책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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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한창 상영 중이라 과연 영화를 볼 날이 올지는 알 수 없어도 미리니름 당하기 전에 책은 읽어봐야겠다는 마음에 읽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상처 입은 두 여성이 만나 진정한 사랑에 빠진다는 식의 익숙한 퀴어 로맨스 서사인가 생각했다. 그래서 중반부를 넘어서도 주인공 테레즈에 대한 캐롤의 마음이 손에 잡히지 않는 듯해 갸우뚱했다. 결말도 자꾸만 비극에 가까운 결말만을 예상했다. 테레즈는 둘째치고 캐롤은 진심이 아니라 한순간의 불장난, 아니면 자기에게 호감 있는 젊은 여성에 대한 호기심으로 상대한다고만 여겼기 때문이다. 실제 후반부까지만 해도 캐롤은 과거 사귀었던 애비란 소꿉친구와 더 친밀해보였다. 그 모습에 나도 테레즈처럼 안달복달하면서 테레즈가 기만당하는 것만 같아 안타까웠다. 테레즈가 금세 사랑에 빠지는 기질인 만큼 회복력도 남달라보였기에 이번 고비를 무사히 잘 넘기면 나름대로 평탄한 삶을 살 거라 믿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테레즈의 캐롤에 대한 마음이 과연 사랑일까 의문스러웠다. 테레즈의 가족사를 보면 예술가가 되고 싶어했지만 실력 없고 패기도 없어 어정쩡한 위치에 머무르다 아내가 다른 사랑을 찾았기에 이혼해야 했던 아버지가 있었고 그 아버지는 테레즈가 여섯살이었을 때 죽어버렸다. 테레즈는 아버지와 달리 실력도 있고 야심도 있는 피아니스트인 엄마에게 반발하여 가능한 한 엄마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살아가려 했다. 그런 상황이면 아버지에게 연민을 느끼고 아버지 같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기 쉬울 법도 한데 테레즈는 엄마와 비슷한 느낌의 여성들에게 더 끌리는 듯했다. 테레즈가 캐롤에게 첫눈에 반하여 마구 돌진할 때는 마더 컴플렉스에 사로잡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때 푹 빠졌던 얼리샤 수녀와 로비체크 부인과의 관계에서도 그런 징후가 엿보인다. 중반까지 테레즈와 사귀던 리처드는 화가 지망생이지만 재능도 야심도 없이 어정쩡하게 갈림길에 머물러만 있었다. 반면 테레즈는 자기 엄마처럼 무대 디자이너로서 재능도 있고 야심도 넘친다. 상냥하지만 테레즈의 이상에는 못 미쳤던 리처드는 테레즈를 잡고 싶어했으나 포기하고 원망하며 떠나간다. 동시에 화가의 길도 버리고 만다. 리처드와 달리 캐롤은 매혹적이며 자신만만하고 패기에 넘친 것처럼 보여 캐롤이 남자라면 체홉의 <<갈매기>>에서 여주인공이 좋아한 소설가 느낌이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불행한 결말을 예상했으리라. 캐롤이 테레즈를 갖고 놀다 버리는 결말을 말이다. 후반부로 가면서 둘의 관계는 역전된다. 초반부에서는 끈질기게 따라다니는 테레즈가 무서우면서도 불쌍하더니 후반부로 갈수록 캐롤이 불쌍하여 테레즈가 그대로 캐롤을 버리고 떠났으면 테레즈는 내 안의 나쁜 여자 순위권에 올랐을 것이다. 놀랍게도 둘은 이어졌고 그 결말에 퀴어 로맨스가 맞긴 맞구나, 영화 선전 문구가 거짓은 아니었구나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 후기에서 행복하게 끝나는 퀴어 로맨스를 그리고 싶었다고 해 1950년대에 그런 생각을 했다니 재미있는 사람이라 느꼈다. 후반부 캐롤의 권총으로 비극의 냄새룰 폴폴 풍겨 권총이 둘 사이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믿었는데 아무 일 없이 끝난 것에 맥이 빠졌다. 권총은 맥거핀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비극을 예상한 독자들을 한방 먹이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이런 깜찍한 사람 같으니. 하하. <<열차 안의 낯선 자들>>을 탈고한지 얼마 안 되어 집필을 시작했다는 말에서는 테레즈와 캐롤의 모습이 낯익었던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전작의 둘처럼 테레즈는 경계선 인격장애, 캐롤은 회피성 인격장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전작과 다른 점은 끈질기게 좇아다니고 애정을 갈구하는 사람이 주인공이며 둘 사이에 육체관계를 포함한 로맨스가 끼어들어 있다는 것일까. 
그나저나 번역이 말 많은 이유를 알겠다. 문장은 뒤죽박죽, 안 어울리는 관용구 범벅, 줄임말 남발('하고 싶은'을 '하고픈'이라 줄인 걸 대화 아닌 곳에서 보게 될 줄이야, 맙소사.) 오탈자 속출. 속이 메슥거린다. 차라리 평범하게 써라. 버티고의 하이스미스 번역처럼. 편집자가 셋이나 되던데 다 농땡이치셨는지. 영화 개봉을 앞두고 졸속으로 번역서를 내놓은 거 아닌가 의심스럽다. 인터넷 글쓰기면 상관없지만 파는 책이 이런 식이면 곤란하지 않나. 요새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에게 관심이 생긴 독자로서 더 화가 난다. 하이스미스 월드를 세우려는 내게 이런 시련을 안겨주다니. 하필 이 시리즈에 내가 읽고 싶은 책들이 잔뜩 있어 더더욱 뿔이 난다.
 
덧. 알고보니 '버티고' 출판사도 이 책이 나온 '그책' 출판사도 오픈하우스 계열이었다. 그러니까 같은 출판사란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은 왜 이리 번역이 심각하지. 번역자의 문제인가, 편집자의 문제인가. 둘은 편집자가 다른 걸까. 아니면 영화 개봉에 발맞춰 내놓느라 이렇게 된 건가. 문학 브랜드라면서 왜 장르문학 브랜드보다 못한 모양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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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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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특정한 시간을 반복하여 겪는다는 설정을 보고 처음엔 SF에 종종 나오는 루프물을 떠올렸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서 며칠 동안 여러 잡다한 일들을 하는 와중에 퍼뜩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소설은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을 할 때 플레이어가 겪는 심리를 적은 글 같지 않은가.

주인공은 패턴을 읽을 줄 알고 이미 다른 패턴을 시험해 본 적이 있으며 다른 패턴으로 가면 평범하고 무난한 삶을 살기는 하지만 히로인과는 만나지 못한다니 말이다. 주인공은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동급생을 죽이지 않는 선택을 하면 그 여자애와는 무조건 이루어질 수 없다니 게임 시나리오를 따라가기만 해야하고 직접 내용을 뜯어고칠 순 없는 플레이어와 같지 않은가. 실제 삶이었다면 무한한 변수가 존재하기에 그렇게 확신하지 못한다. 굳이 과거로 돌아왔는데 한 여자와 다시 만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하는 걸 보면 이 소설의 진짜 주제는 죄와 용서의 의미에 대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패턴' 대신에 게임계에서 자주 쓰이는 용어인 '루트'를 써도 딱 들어맞는다. '패턴'이란 용어만 봤을 땐 SF 작가인 로저 젤라즈니를 가장 먼저 떠올렸기에 SF 설정을 차용했다고만 생각했는데 말이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는 주인공의 삶이 바뀌는 루트가 여럿 존재하고 루트가 갈리는 분기점이란 것이 있다. 플레이어는 그 분기점을 알기 위해 게임 공략을 찾아볼 수도 있고 그 분기점을 세이브하기도 한다. 게임의 주인공이 히로인과 만나 연애를 하는가 여부는 그 분기점에서 한 선택에 달린다. 참고로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주인공은 고등학생일 경우가 많다. 또한 엔딩에서는 그로부터 시간이 몇년 흘러 주인공이 어른으로서 어떤 삶을 사는지 보여주고는 한다. 

아즈마 히로키가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이란 책에서 말했던 '게임적 리얼리즘'을 드러낸 소설, 이른바 메타픽션 중 하나임에 새삼 흥미를 느꼈다. 소설 자체는 작가 특유의 간결한 문체 덕분에 술술 읽혔고 주인공이 자기 삶이 망가질 것임을 알면서도 그 패턴을 선택했다는 얘기에서는 '얘가 그 여자애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순정물이네' 정도만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하긴 '에반게리온' 관련한 소설도 쓴 작가니 놀랍지는 않다.

흥미로운 사실은 끝에 실린 심사평과 인터뷰에서 게임 관련해선 누구 하나 지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뭐 소설 한 편 재미있게 잘 읽었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더 흥미진진하게 논의할 수도 있었는데 이건 너무 시시하잖아. 그건 그렇고 '패턴'이란 용어로 위장전술을 펼치다니 이 작가 깜찍한데? 참 재미있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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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16.1.2 - no.004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엮음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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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나`잡지 인터뷰와 인터뷰어 말투가 비슷한데 그곳에서 볼 때와 여기서 볼 때 느낌이 다르더군요;거기선 인터뷰이도 반말투였고. 매체 차이를 생각하고 인터뷰를 진행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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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rdo 2016-01-29 2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어서....얼굴을 직접 맞대고 한 인터뷰였으면 말 아닌 다른 제스처로도 의도를 전할 수 있지만 이메일로 글만 주고 받으면서 인터뷰한 건데 좀 더 조심스럽게 인터뷰 대상에게 접근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얼굴을 직접 맞대고 했으면 나름대로 친분도 쌓였을 테니 예의를 덜 차려도 됐을지 모르지만;설문지를 보내고 작성해달라고 해서 그런 건지...
 
투명인간
성석제 지음 / 창비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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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지 일년쯤 지나서야 읽었다. 남의 리뷰를 보아 사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거나 신간이라 사은품을 챙기려고 산 책들 중엔 이렇게 한참 묵히고서야 읽는 책들이 종종 있다. 사놓고서는 남들이 우르르 리뷰를 쏟아내기 시작하면 그새 흥미를 잃어버리고 책장 한구석에 꽂아놓고 딴청을 피우다 바람이 지나가면 읽고는 한다. 이 소설도 그런 책 중 하나였다. 영영 읽지 않고 버려질 수도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요사이 사둔 책들을 몰아서 읽기로 마음 먹으면서 가까이 있던 덕분에 간택을 받았다.

제목만 봐서는 웰스의 동명 소설이 자연스럽게 연상되어 이 소설 또한 과학소설의 투명인간 설정을 이용하여 썼을 거라고 예상했다. 더욱이 처음 부분에선 화자가 자신을 투명인간이라 소개하고 그런 부류가 여럿 있음을 알려왔기에 투명인간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와 같은 무리를 모아서 사회에 넘쳐흐르는 악을 없애는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왠걸, 화자는 바로 다른 사람으로 넘어갔고 한 가문을 중심으로 하여 여럿이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래서 초반부에선 사람들 이름을 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화자가 자주 바뀌니 온전히 감정 이입을 하기 보다는 거리를 두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가끔 가다 막내 석수처럼 괘심하기 짝이 없는 화자가 나오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기도 했다. 그만큼 막내 석수가 짜증났기 때문이다. 둘째 형 만수가 먹여주고 재워주고 학비 보태주고 하면 고마워해야 할 텐데 다 자기 잘나서 잘된 줄 아는 게 그 당시 막내 아들들의 '종특'인가. 석수의 아들이 만수 밑에서 자라면서 말썽을 피우고 끝내는 제 목숨을 버리는 부분에선 속이 답답해왔다. 그리고 아이가 화자가 되어 제 속내를 털어놓는 부분에선 안타까웠다. 만수의 아내와 아이가 진작에 마음을 열고 서로에게 진심을 보였더라면 그런 비극은 없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죽었다고 확실하게 언급되지 않은 사람들이 투명인간이 되어 계속 함께 산다는 대목에선 어쩌면 저들 또한 이미 다 죽었고 유령으로 세상에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투명인간 이야기는 서두에 조금 얘기가 나오고서는 중간중간 가볍게 암시를 할 뿐 중반을 넘어서도 별 진전이 없다가 결말 가서야 다시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투명인간은 실제 투명인간이 아니라 유령들인지도 모르겠다. 유령들 역시 세상에 잊힌 존재, 투명한 존재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살아있더라도 지나가든 말든 죽었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돌아보지 않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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