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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 두고 온 것들
구로야나기 테츠코 지음, 한성례 옮김 / 혼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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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유명 배우이자 유니세프 활동가인 『창가의 토토』 저자 구로야나기 테츠코의 에세이집으로 『창가의 토토』가 어렸을 적 대안 학교에 다니면서 벌어진 일들을 썼다면 여기서는 주로 나이가 들어 겪은 일들을 썼다. 부끄럽게도 『창가의 토토』는 사두고는 시간이 없다면서 계속 읽지 않고 묵혀두는 중이라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른다. 다만 그녀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기존 학교를 본의 아니게 그만두고 요즘의 대안 학교라 할 학교에 입학해 벌어지는 일들을 적었다는 사실은 안다. 그녀의 대표작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도 아이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관심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책 속에서 그녀는 아프리카나 네팔 등지에서 전쟁과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을 돕는 활동을 하며 겪은 일들을 그녀답게 온화한 어조로 서술한다. 그런 진지한 얘기들 말고도 흥미로운 에피소드도 많았다. 이를테면 판다나 도마뱀붙이 같은 동물 이야기는 귀여우면서 우스꽝스러웠는데 각 동물의 특징을 잘 묘사해 읽으면서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책의 첫머리를 판다 이야기로 장식할 정도인데다가 양자로도 들였으니 그녀의 판다 사랑은 짐작하고도 남음 직했다. 그녀는 어리고 약한 동물뿐만 아니라 어린이, 여성, 노인과 같은 약자에 대한 보호 욕구가 강한 사람이었다. 그 마음이 문체에서도 흘러나온다.
그 밖에도 이 책에서는 일본의 쇼와 시대를 간접 체험하게 하는 에피소드들이 자주 나온다. 이 부류에 속한 이야기들에서는 일본인이라면 알 테지만 외국인이라면 다 알기는 어려운 일본의 유명인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나오면 반색하며 읽었다. 「여류 작가 모리 마리 씨」는 나도 알만한 작가인 미시마 유키오와 모리 마리가 나와 무척 흥미진진했다. 그 둘이 구로야나기 씨와 지인이었다니 신기했다. 모리 마리는 일본 근대 작가 모리 오가이의 딸로 그녀 자신도 소설을 썼다. 그녀의 탐미적인 소설을 생각해봤을 때도 '마리'라는 프랑스풍 이름에서도 잘 다듬은 정원이 딸린 단독 주택에서 우아하게 차를 마시는 여성일 것이라는 느낌이 물씬 드는데 웬걸 방 한 구석엔 잡지와 신문이 가득 쌓였고 바퀴벌레도 네댓 마리 기어 다녔다니 무척 뜻밖이었다. 어쩌면 이게 작가들의 실상일지도 모르겠다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도 꾸준히 자기 일을 하고 산다는 면에선 본보기가 될만했다. 그밖에 전쟁과 관련한 이야기에선 회고적 취향이 강하구나 싶은 부분도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작가가 반전파라서 읽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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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털 고양이 홈즈의 추적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아카가와 지로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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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 두 번째 권이다. '삼색털 고양이 홈즈' 시리즈를 읽기 시작할 즈음엔 고양이가 홈즈라니 '장화 신은 고양이'처럼 의인화한 고양이가 등장해 빵모자와 체크무늬 코트, 파이프 담배를 입에 물고 점잔을 빼며 의자에 앉아 추리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런데 막상 책장을 열고 보니 홈즈가 직접 추리하지 않고 왓슨 역이라 할 가타야마 형사가 홈즈가 마음 내킬 때만 툭툭 던져주는 힌트를 받아들고서 과거의 명탐정들 비스무레한 무대를 마련하여 사건을 관객들에게 해명해준다. 이 장면에선 <<명탐정 홈즈>>란 일본 만화에서 주인공 코난의 도움을 받아 사건을 해결하는 모리 사설탐정을 떠올렸다. 물론 본 사람은 다들 알겠지만 모리 탐정은 코난이 쏜 마취총으로 잠들어 사건 해결 자체도 모리 탐정이 아닌 코난이 한다. 그런 면에선 가타야마 형사가 모리 탐정보다는 한 수 위라고 해야 할까. 가타야마 형사는 그 정도로 얼빠지지는 않아 직접 풀이를 하나 홈즈의 도움이 없었더라면 실마리를 놓쳤을 사건들이 수두룩하리라. 과연 영묘. 홈즈는 그렇게 노골적이지 않으면서도 적확하게 힌트를 집어준다. 가타야마 형사도 영 바보는 아닌 게 그 암시들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그럴듯한 추리를 펼쳐나간다. 지금은 홈즈 밑에서 수련(!)을 쌓는 중이지만 얼마 안 지나 그에 못지않은 명형사가 되지 않을까 짐작한다. 바람직한 형사, 탐정에겐 반드시 있어야 할 자질인 고운 마음 씀씀이와 바른 자세만큼은 보장하니까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물론 고소공포증에 여성 공포증 등 형사로선 그다지 탐탁지 않은 약점들이 잔뜩 있긴 하나 홈즈와 여동생의 도움으로 언젠가 극복하지 않을까.
본문을 벗어나 작가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 해보려고 한다. 아카가와 지로의 소설은 속도감 있는 전개에 간결체라 책장이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런데 뜻밖에 줄거리는 짜임새 있다. 이번 편에서도 사건 전개에서 몇 번 뒤통수를 맞는데 앞서 힌트를 줬기에 독자를 설복게 한다. 그런 면만큼은 아카가와 지로를 타고난 이야기꾼이라 부를 만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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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로베리 나이트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 시리즈 1
혼다 테쓰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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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머리부터 강렬한 묘사로 시작해서 책을 펴든 순간 시선이 온통 활자 속으로 빨려 들었다. 마치 '지뢰진'의 한 장면을 보듯 생생해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 이거야말로 본격 추리, 하드보일드라며 감탄하고 긴장하며 읽었다. 이전 <<지뢰진>>이란 하드보일드 형사물 만화를 처음 접했을 때 느꼈던 감각들이 다시금 나를 덮쳤다. 구토가 목 안에서 들끓고 손 안에 땀이 날 정도의 긴장감은 본격 추리물 독자라면 상당히 익숙한 감각이리라. 그럼으로써 사건이라는 수수께끼를 풀고자 하는 독자의 열의를 강렬하게 고취하는 감각 말이다.
막판에 이르러 범인과 카쓰마타 형사가 히메카와 레이코 형사에게 내뱉은 말은 어쩌면 좀 더 복잡하고 센 수수께끼를 찾으러 헤매다니는 본격 추리물 독자들에게 던지는 대사인가 싶어 아주 의미심장했다. 본격 추리 애호가로서는 내심 뜨끔하기도 했다. 발에 챌 정도로 바닥에 내깔린 시체를 비록 활자를 통해서긴 하나 아무렇지 않게 성큼성큼 넘어가는 기분을 때때로 느꼈는데 그런 감각에 대해 경고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수수께끼 풀이를 즐기더라도 인간에 대한 경외심과 예의는 잊어선 안 된다며. 이후 히메카와 시리즈를 몇 권 들여다본 사람으로선 그 대사가 새삼스럽진 않다. 본격과 사회파 중간에 서서 아슬아슬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작가로선 꼭 하고 싶은 말이었을 테니까. 이런 사족을 덧붙이지 않더라도 이 책의 수수께끼는 정말이지 흥미진진하고 전개가 어디로 튈지 몰라 두근거렸다. 범인은 그쪽을 많이 접해 본 독자라면 금세 냄새를 맡았을지 모르나 다른 범인의 정체는 상당히 독특했다.
그리고 감칠맛을 더하는 로맨스 면에선 앞으로 시리즈가 전개되면서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증이 인다. 히메카와는 키쿠타와 이오카 둘 중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현재 그녀의 마음은 키쿠타에게 쏠린 듯한데 이 답답하고 소심한 남자를 그녀가 어떻게 요리해나갈지 이 남자가 어떻게 성장할지도 볼거리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소름 끼치도록 무섭고 아름다운 묘사와 이오카의 사투리를 잘 살려낸 번역자분께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만약 범인 시점의 그 부분들이 시시한 단어들, 문장들로 채워졌다면 작품의 매력이 반감됐으리라. 그런 면에서 번역의 중요성을 새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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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
도바 순이치 지음, 나계영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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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바 순이치는 추리소설 작가로만 알아서 <<오심>>도 정통 추리물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정통 스포츠 소설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학창시절 체육 점수가 미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는데다가 스포츠 경기도 제대로 관전한 적이 없는 사람인 탓이다. 그래도 끝까지 다 읽고 나서는 뭔가 속았다는 마음도 들면서 또 다른 세상을 엿볼 기회와 닿았다는 마음이 들어 기분 좋았다.
한창 만화에 빠져 살았을 때 지인의 추천으로 <<H1>>, <<H2>>라는 만화를 읽었었다. 그 만화 역시 야구 경기를 세밀하게 잘 살려놨으면서도 각 인물의 성격과 갈등을 아주 잘 묘사해낸 수작이었다. 그래서 야구 경기 규칙을 전혀 모르는데도 몇십 권짜리를 다 읽었다. 마찬가지로 <<오심>>도 야구 규칙과 메이저리그에 관하여 전혀 모르는 상태로 시작해 초반엔 읽는 속도가 무척 느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땀과 열기로 가득 찬 구장을 지으면서 주인공 투수 다치바나가 공을 던질 때 그가 그려보는 실선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볼 판정을 받을 때면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야구 관련 스포츠물이라 해도 대개 배트를 휘둘러 홈런을 치고 마구 달리는 타자 이야기만 봤던 터라 투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흥미로웠는데 다치바나와 다케모토라는 심판이 벌이는 기 싸움도 보기 드문 전개라 볼만했다
처음엔 다치바나 편에 서서 다케모토가 사심에 휩쓸려 오심했다면서 그를 욕했으나 점차 다케모토의 심정도 손에 잡혀 와 그에게 동정심을 품고 감정이입을 해버렸다. 아마 자존심 센 그는 일개 독자 따위가 자기를 동정한 사실을 안다면 펄펄 뛰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없고 또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그에게 애달픈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 딱딱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습이 처음엔 상당히 오만해 보였으나 그의 진실을 알면서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다케모토와 다치바낙 화해를 하는 장면에선 코끝이 시큰했다. 아무쪼록 둘 다 각자의 길을 잘 가고 다케모토도 새롭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고독한 마음이 치유되길 바란다.
참, 야구 경기와 메이저리그를 상세히 묘사한 작가분과 그런 묘사를 놓치지 않고 번역해낸 번역자분의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에 감탄했다. 정말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해내지 못할 일들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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