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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심
도바 순이치 지음, 나계영 옮김 / 씨엘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도바 순이치는 추리소설 작가로만 알아서 <<오심>>도 정통 추리물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웬걸, 정통 스포츠 소설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학창시절 체육 점수가 미를 벗어난 적이 거의 없는데다가 스포츠 경기도 제대로 관전한 적이 없는 사람인 탓이다. 그래도 끝까지 다 읽고 나서는 뭔가 속았다는 마음도 들면서 또 다른 세상을 엿볼 기회와 닿았다는 마음이 들어 기분 좋았다.
한창 만화에 빠져 살았을 때 지인의 추천으로 <<H1>>, <<H2>>라는 만화를 읽었었다. 그 만화 역시 야구 경기를 세밀하게 잘 살려놨으면서도 각 인물의 성격과 갈등을 아주 잘 묘사해낸 수작이었다. 그래서 야구 경기 규칙을 전혀 모르는데도 몇십 권짜리를 다 읽었다. 마찬가지로 <<오심>>도 야구 규칙과 메이저리그에 관하여 전혀 모르는 상태로 시작해 초반엔 읽는 속도가 무척 느렸다. 그런데 어느 순간 머릿속에서 땀과 열기로 가득 찬 구장을 지으면서 주인공 투수 다치바나가 공을 던질 때 그가 그려보는 실선이 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가 볼 판정을 받을 때면 같이 한숨을 내쉬었다. 야구 관련 스포츠물이라 해도 대개 배트를 휘둘러 홈런을 치고 마구 달리는 타자 이야기만 봤던 터라 투수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흥미로웠는데 다치바나와 다케모토라는 심판이 벌이는 기 싸움도 보기 드문 전개라 볼만했다
처음엔 다치바나 편에 서서 다케모토가 사심에 휩쓸려 오심했다면서 그를 욕했으나 점차 다케모토의 심정도 손에 잡혀 와 그에게 동정심을 품고 감정이입을 해버렸다. 아마 자존심 센 그는 일개 독자 따위가 자기를 동정한 사실을 안다면 펄펄 뛰겠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도 곁에 없고 또 떠나야 할지도 모르는 그에게 애달픈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 딱딱하고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는 모습이 처음엔 상당히 오만해 보였으나 그의 진실을 알면서 안쓰러워졌다. 그리고 다케모토와 다치바낙 화해를 하는 장면에선 코끝이 시큰했다. 아무쪼록 둘 다 각자의 길을 잘 가고 다케모토도 새롭게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고독한 마음이 치유되길 바란다.
참, 야구 경기와 메이저리그를 상세히 묘사한 작가분과 그런 묘사를 놓치지 않고 번역해낸 번역자분의 야구를 사랑하는 마음에 감탄했다. 정말로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해내지 못할 일들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