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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로티시즘
김영애 지음 / 개마고원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고픈 책 목록에 넣을 때 페미니즘이나 에로티시즘에 관심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그건 내가 전에 알게 된 한 그림 밑에 있는 코멘트 때문이었다. 그 그림은 마그리트의 <Collective Invention>이었다. Collective Invention`은 반인반어(半人半魚)의 흉칙한 생명체가 파도가 찰싹이는 바닷가 백사장에 누워있는 그림이다. 르네 마그리트 그림은 어디선가 눈동냥으로 알게 됐는데 독특한 발상이 재밌어서 그림들을 찾아 감상해왔지만 늘 그 발상의 이면에 있는 의미`가 궁금하던 차였다. (예술에 워낙 무지한지라 예술과 해석, 의미 등등에 관한 얘기는 걍 편하게 지껄이도록 하겠다.) 암튼 그리하다 커뮤니티에서 누군가 그 그림 밑에 이 책에서 발췌한 코멘트를 붙여 놓은 것을 보게 되고 `아하~`싶었다.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나는 그림을 보는 눈을 배우는 것에 관심이 있었던거다. 모든 예술작품을 감상할 땐 그렇겠지만 이 책에서 작품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시선은 책을 쓴 사람이 가진 하나의 견해일 뿐임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캔버스 놓고 ㅁ자 모르는 나로서는 작가표 에로티시즘의 안경을 쓰고 작품을 읽어내는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었고 작가가 의도한 바처럼 페미니즘의, 아니 페미니즘이라는 거창한 말을 갖다 붙일 것도 없이 걍 여성`의 입장에서 예술을 매개체로 지나치게 감정에 치우치는 일 없이 문화전반에 걸쳐 중요한 성감대로 위치하는 에로티시즘을 담은 예술작품들을 둘러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한다.(이건 참 담백한 경험이 아닐 수 없는데 왜냐하면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는 일은 거리를 두고 냉정하게 보기가 어려워 결국 극도의 흥분과 답답함에 몸부림치는 사태를 가져와 고통스럽게 되는 일이 자주 있기 때문이다.;;
에로티시즘과 예술의 관계는 나의 할머니의 할아버지의 할머니의 할아버지가 암죽을 드시던 시절보다도 훨씬 전부터 친밀한 관계였다. 에로티시즘이라는 간질간질한 말의 사전적 의미는 `남녀간의 사랑이나 관능적 사랑의 이미지를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암시하는 경향`이래는데. 작가의 말에 의하면, 아니 의할 것도 없이 내 느낌을 말하더라도 현재까지 이어지는 에로티시즘의 손길은 남성의 사타구니를 주타겟으로 뻗쳐왔다. 작품들 속 과장돼 나타나는 남성의 성기나 강간이나 다름없어 보이는 성관계 장면이 주를 이루는 것은 이를 보여준다. 그렇지만 생각해보니 워낙에 굳어진 에로티시즘의 남성 중심의 이미지 때문에 평소엔 남성 중심이라는 걸 의식조차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책 안에서는 이러한 한 성에 치우친 예술에 반기를 들고 여성다운? 여성을 위한? 에로티시즘을 선보이는 작가들에 대해서도 다루는데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잠깐, 여성적인 에로티시즘이란 무엇일까? 여기에 고민했던 작가들은 기존의 에로티시즘에서 드러나는 주체자를 남성에서 여성으로 단순 바꿔치기 해보기도 하지만 심지어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바나나를 사세요`였던가? 그 흉칙하고 웃겼던 사진-.-) 스테디셀러인 모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남자는 화성에서 오고 여자는 금성에서 왔기 때문일까. 여자와 남자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에로틱하게 느껴지는 것은 역시 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 털이 보송보송한 올덴버그의 작품들은 전에도 흥미로웠지만 훨씬 더 흥미롭게 느껴졌다.
아아- 애진작에 책을 읽고 서문을 써두었지만 어느새 일주일이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 이젠 정리의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초등학교 독서감상문처럼 책을 읽은 느낌을 정리하자면 흥미롭고 유익한 시간이었단거다 -.- 페미니즘적 관점의 생각이란 게 참 그런 것 같다. 평소에는 워낙에 굳어진 남성중심의 것들에 익숙해져서 의식하지조차 못하는 것들이 태반이다. 진작에 앞에서 얘기했지만 에로티시즘에 대해서도 그랬다. 지적과 더불어 해결방안의? 작품까지 감상해보고 나니 낯뜨겁게 하기 위해서만 그려진 게 아닐까-.-싶었던 그림 속에 참 많은 생각과 의견들이 담겨 있구나 싶었다. 화가라는 직업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굉장히 추상적으로 고백하는 자폐아 같다고 생각해왔었지만(아, 오해없길. 나는 화가를 존경하고 동경한다) 그건 단지 나의 눈과 귀가 막혔었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정리 안된다 -.- 어흠
암튼 생각보다도 더 재미있게 읽어서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데에 눈이 트일만한 책들과 미술에 관련된 책을 몇 권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르네 마그리트. <Collective Invention>. 19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