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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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가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였다. 어린이를 위한 책 치고는 제법 두꺼웠고, 무겁고 침침한 분위기의 책 표지가 풍겨내는 신비함에 끌렸었다.(최근에 재판된 표지에 비해서는 촌스러웠지만) 원래 친구가 읽으려고 캠프에 가져온 책인데, 그 친구는 모모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아 대신 내가 다 읽었던 책이다. 그래서 지금도 그 때의 캠프는 모모에 대한 풍경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은 참 무서웠었다. 귀신이야기를 비롯한 그렇고 그런 공포물이 주는 비현실적인 무서움이 아닌, 지독히 현실적인 공포가 어린 나를 사로잡았었다. 회색사내들이 주는 지독한 음산함, 나도 모르는 새 가장 중요한 무언가를 앗아가버리는 그 존재는 소설을 뚫고 나와 나의 시간을 앗아갈 것만 같은 공포에 시달렸다. 왜냐하면 나 역시도 시간에 대해 무심히 여겼었고, 하루에 10분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어줄 수도 있는 거 아니냐고 말 할 수도 있었으므로... 그래서 시간에 대해 너무 대수롭게 생각한 벌을 나중에 받게 되는 건 아닌가, 꼭 잘못을 저질러놓고 부모님께 혼날 생각에 두려웠던 것처럼 무서운 책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모모라는 아이와 알게되서 기뻤고, 모모의 활약은 나의 무서움증 또한 가시게 해 주었다. 더벅머리에 넝마, 검댕이 묻은 뺨 사이로 현명하게 반짝이는 눈동자. 내가 기억하는 모모다. 거지같은 꼴을 하고 있지만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아이. 수많은 껍데기 - 학력, 재산, 외모... 로 사람을 보다가는 놓쳐버리고 마는, 그럼에도 늘 우리 곁에 있는 사랑스러움이 모모가 아닌 듯 싶다. SF소설에 나옴직한 차갑고 금속성의 풍경 속에서, 사람들의 시간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모의 따스한 마음은 더욱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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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론
롤랑 바르트 지음 / 현대미학사 / 199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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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신화란 신화학이다. 신화학은 문화인류학의 한 갈래라면, 신화론은 논리학 혹은 기호학의 한 갈래다. 그래서 신화를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덥썩 집어들었다가 낭패감에 휩싸일지도 모르는 책이다. 하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힘을 확인하고 싶다면, 혹은 신화가 어떠한 구조를 가지고 있기에 그토록 매력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지를 알고 싶다면 적극 권할만한 책이다.(이런데 호기심을 가질 사람이 얼마나 될 지는 모르겠지만... --;;;)

몇 년 전부터 대입시험이 수능으로 바뀌고, 논술이 첨가되면서 논리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처음 수능이 등장했을 때에 비해 지금은 논리에 대한 그 열기가 많이 식은 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리에 관한 책이 꾸준히 출판되는 것을 보면 그래도 읽는 사람들이 조금은 늘어나긴 한 것 같기도 하다.

논리하면 무수한 명제들이 난무하기에 따분해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쓸데없는 말장난 같은 명제들이 가지는 놀라운 능력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얼마나 많은 명제들이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있는 지를 발견하게 된다. 설득하고 권유하고, 무엇보다 지배하기 위해 만들어진 무수한 명제들이 그 본질은 감춘채 얼마나 사람들 속을 횡행하고 있는지... 그런데 그 명제들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해 사용되는 것이 바로 신화적인 언어였다는 사실을 작가는 수많은 예를 들어 보여주고 있다.

신화는 무척이나 흥미롭고, 환상적이고, 매혹적인 이야기다. 내용만을 보아도 그렇지만, 그 플롯을 보면 더욱 매력적이다. 인간이 만들어낸 수많은 언어 혹은 기호(한국어나 영어를 비롯한 수많은 말, 논리(인문학의 언어), 수학(자연과학의 언어)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것이 바로 이 신화적인 언어이자 플롯이다. 언어, 기호, 옛날이야기... 말장난 같이 웃고 넘어 가는 수많은 명제들이 얼마나 우리의 사고를 얼마나 지배하고 있는지,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어지는 언어가 가지는 힘의 강력함을 다시금 확인하게 하는 놀라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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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집앞
이혜경 지음 / 민음사 / 199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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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 집'을 통해 처음 이혜경씨를 만났을 때만 해도 젊은 작가라고 생각했는데,한 7년 정도 지나고 나니 젊은 작가라고 하기도 그렇고 중견작가라고 하기에도 어중간한 연배가 되어버렸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글은 치기어린 젊음에 비해서는 점잖고, 노년의 넉넉함에 비하자면 조금은 각박하다. 하지만 그녀의 글에는, 수다떨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건네는 편안함 속에 생활의 팍팍함과 신산스러움 앞에서도 절대 비껴서거나 둘러가지 않는 강직함이 있다.

이 책에서 그려내는 여러가지 일상과 현실은, 적어도 내게는 눈돌리거나 보면서도 못본척 하려했던 삶이었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살지는 않으리라, 설마하니 내가 저렇게 청승맞게 살 리가 있을까하며 애써 외면해 왔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보다 못난 삶도 있음에 적잖이 위안도 받곤하던, 철저한 타인의 삶이었다.

그런데 살갑게 풀어내는 그녀의 이야기에 마음놓고 고분고분 귀기울이고 있노라면, 이건 타인의 삶이야 라고 밀어놓은 삶의 모습들이 어느새 우리 옆집 혹은 앞집의 사는 모양처럼 성큼 다가와 버린다. 표현하기 나름이었던가, 타인과 이웃이라는 단어는. 어쩌면 내 사는 모양도 내 이웃의 사는 모양과 많이 닮아 있었는데 나혼자서만 애써 아니라고, 그래도 나는 저보다는 낫다고 우기고 있었던건 아니었는지.

길위의 집 이래 정말 오랫만에 다시 만난 그녀는 이전보다 훨씬 속이 깊어졌다. 그래서 감추려들면 들수록 훤히 내보이는 속을 어느새 물끄러미 바라다 보고 있었다. 하지만 추하고 그악스러운 속을 내다보면서도, 눈길을 돌리지도 동정어린 기색도 띄우지 않는다. 그저 이웃집 꼬마아이 뺨에 묻은 검댕을 닦아주듯 그 속을 보듬어 버린다.

나는 이혜경씨의 글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삶의 고단함과 지리한 일상도 아무렇지도 않게 담아내는 무던함이 좋고, 요령부리지 않는 미련함이 좋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렇지도 않게 삶의 상처를 매만지는, 툭박스러우면서도 온기어린 그녀의 손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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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매기의 꿈 에버그린북스 1
리처드 바크 지음, 이덕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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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읽었던 건 중학교 때였다. 간결한 문체,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많은 그림들 속에서 담백하게 그려진 갈매기 - 조나단 리빙스턴의 모습에서 나 역시 이상을 품었다. 그리고 이제보면 마냥 좋은 시절이었건만, 너무도 힘겨워해야 했던 고3시절에 다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조나단이 보고싶었다기보다는 시험공부는 하기 싫고, 책을 읽자니 끝까지 읽다가는 하루가 다 갈 것 같고, 그래서 집어든 책이 '갈매기의 꿈'이었다.

나이가 조금더 들어서일까, 아니면 두번째 만남이어서일까, 것두 아님 내가 처한 상황이 조금은 달라져서일까, 다시 만나게 된 조나단은 처음과는 또다른 모습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그저 아아 꿈을 안고 열심히 노력하면 이루어지는구나 하는 믿음을 안겨다주었다. 그리고 다시 만난 조나단은 한없는 위로가 되는 존재로 다가왔다.

꿈을 꾼다는 것, 보다 나은 나를 위한 노력, 그리고 살아간다는 것 그러한 것들이 얼마나 외롭고 아픈 것인지... 아아, 나만 세상에서 힘들게 사는게 아니구나. 나만 외롭고 힘든게 아니구나. 조나단을 통해 나의 아픔을 보았고, 그리고 나와는 달리 너무도 의연하게 그 아픔을 받아안고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는 조나단의 모습에 감동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꿈을 꾸는 어린 갈매기들을 감싸안는 그의 온기는 굳어있던 나의 마음까지 눅여주는 듯 했다. 언제나 바닷가만을 기어다니듯 낮게 날아다니는 갈매기가 꾸는 창공의 꿈. 언제나 조나단을 만날 때면, 설레임과 함께 또다시 저 높은 하늘을 가슴에 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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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밥 먹구 가 - 오한숙희의 자연주의 여성학
오한숙희 지음 / 여성신문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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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토론 프로그램에서 언제나 여성의 입장으로 토론에 참가하던 오한숙희씨의 모습을 보았더랬다. 저 사람 참 열심히 사는구나, 구구절절 옳은 말만 하는구나 하면서도 공격적인 그네의 모습에 주위를 향해 가시를 세우는 고슴도치같아 차마 다가서지 않았었다. 물론 다가서면 아플만큼 뾰족하지는 않지만 가까이하기엔 웬지모를 부담스러움이었달까. 그래서 나에게 있어 그네는 응원만 할 뿐, 가까이 다가설 생각은 그리 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얼마전에 케이블TV에서 본 그네의 모습은, 밥먹고 가라는 말이 주는 살가움, 밥 먹이는 마음에 담긴 상대에 대한 관심과 애정, 주어도 주어도 넘쳐나는 넉넉함이었다. 그 모습에 그네를 너무도 만나보고 싶어 처음으로 그네의 책을 펼쳐들었다. 나에게 있어 여성주의는 비록 옳은 이야기지만 늘 조심스럽고 부담스러웠다. 그런데 이 책에는 흔히 공격적으로 비쳐지는 그런 여성주의는 없었다. 그리고 작가의 이력을 모른채 읽는다면 정말 편안하고 넉넉한 에세이로 비춰질 뿐, 여성주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이게 여성주의라고? 하며 반문할 지도 모르는 글이다. 하지만 글 하나하나마다 묻어나는 가족에 대한 애정, 이웃에 대한 애정 그리고 나아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애정에 밥을 먹지 않아도 걸지게 차려진 밥상을 받아먹은 만큼이나 배부르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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