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극장에서 생긴 일 - 세계환상문학 걸작선
알베르토 맹그웰 엮음, 윤춘미 옮김 / 문학세계사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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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점의 가장 큰 유혹은 4만원이상 구입시 무료배송에 있다. 또한 시시때때로 진행되는 이벤트(할인과 마일리지 때때로 무료배송... 나더러 어쩌라고T.T)도 한 몫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란, 출판사가 번창하길 바라면서도 '할인'이라는 단어 앞에 한없이 약해질 수 밖에 없는 데다 살 때마다 적립되는 마일리지라는 놈도 차마 떨칠 수 없는 아련함이다. 그리고 책사는 돈은 아깝지 않아도, 웬지 모르게 이 놈의 배송료는 벼에 붙은 해충마냥 떼어내 버리고만 싶어진다. 그래서 인터넷 서점에서 구매를 할 때면 무료배송에 눈이 멀어 충동구매가 이루어지는 책이 꼭 1,2권씩은 끼어들게 마련이다. 그렇게 충동구매한 책의 반정도는 본전(적어도 돈은 아깝지 않은), 반의 반은 억울함(정말 돈 아깝다), 그리고 나머지 반의 반은 횡재(소장한다는 게 뿌듯한)다.

이러한 인터넷 책사기의 애환 속에서, 인터넷 서점만의 뿌듯함 인정하게 만드는 책들을 더러 사게 되는데 이 책이 나에게 그러한 책이다. 언제던가 새로나온 책인가, 주제별 추천서였던가에서 조우한 이 책은 고혹적이었다. (컬리는 굉장히 자의적인 섹시함이라는 기준으로 책을 산다. 한마디로 꽂히면 산다. --;;;) 모니터를 통해 본 책표지임에도 웬지모르게 바랜듯하면서도 '낡은 극장'이라는 단어와 함게 주는 수동(자동이 아닌)적이고 수공업적인 느낌. 그리고 도무지 정체를 알기엔 너무도 흐릿해 웬지 모르게 배어나는 두려움...

읽다보면, 언제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 어둠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촛불처럼 처음 들어도 언젠가 들어본 것처럼 편안하게 들리는 이야기. 그럼에도 문득 내 등뒤를 돌아보며 다행이라며 한숨쉬게 하는 섬뜩함. 딱히 엄청나게 무섭다거나, 박진감 넘치는 활극이 있다기 보다 밋밋한 듯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슴 한켠을 덜컥하도록 꿰뚫어보는 듯한 예리함이 꽤나 의뭉스럽다.

극장이란 공간이 가지는 유한성과 무한함이라는 대비가 불러일으키는 상상력, 삐걱거리고 어둑신한 무슨 일이 생겨도 지극히 납득해버릴 듯한 낡은 극장. 이러한 낡은 극장에서 화려한 조명이 속의 열정적인 배우의 연기가 아닌, 웬지 모르게 낡은 극장으로 모여드는 게 너무도 자연스러운 존재들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나누는 이야기에 귀기울이는 듯한...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문득 다시 돌아왔다는 실감을 주는 현실세계로 조금은 새삼스러워 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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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모델 - 화가의 붓끝에서 영원을 얻은 모델 이야기 명화 속 이야기 5
이주헌 지음 / 예담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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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와 모델... 화가와 창작의 모티브 혹은 소재를 제공하는 모델과의 관계라 제법 섹시하게 들린다. 그리고 조금은 그 속내가 어떠지 훔쳐보는 기분으로, 책소개에도 제2의 창작자라고 표현되어지는 모델들의 에너지를 보고픈 기분으로 책을 펼친다. 물론 대개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 화가들을 다뤘는지라, 화가들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과 작품세계에 대해 알고싶다는 욕심도 아주 조금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책장을 넘길수록 적어도 훔쳐보는 입장에서도 작품세계에 대해 알고싶다는 입장에서도 조금 김이 새버렸다. 작가가 너무 점잖은 탓에 스캔들에 대한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기술은 스캔들이라는 화제성에 들뜬 소심한 나의 기대를 저버렸고, 모델과 관련된 작품과 그에 대한 해설과 분석으로 채워지다 보니 아무래도 총체적인 해설이라기보다는 단편적인 분석으로 전개되고... 화가와 작품을 읽는 또 다른 관점 혹은 모델들의 에너지와 제2의 창작자로서의 역량(?)을 보고팠던 나로서는 조금은 실망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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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병매 1 - 천하제일기서
소소생 지음, 강태권 옮김 / 솔출판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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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에게 금병매 이야기를 꺼냈더니, 너도 나도 대뜸 한다는 소리가 그거 엄청 야한거 아니냐는 거였다. 그래서 막상 읽어보면 생각만큼 야하지 않다고 했더니, 그럴 줄 알았단다. 친구들에게 장난하냐고 말할려니, 내심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노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말은 많지만, 막상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는 게 금병매다. 엄청 외설적이라는 말은 많았지만 무엇보다 중국 4대기서 중의 한 권이며, 제목 옆에 너무도 당당하게 붙여놓은 천하제일기서라는 말에 한번 넘어가보기로 했다. 그리고 몇 백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숱한 판금의 위기 속에서도 꿋꿋이 살아남았다는 건, 최소한 본전 생각에 억울해할 일은 없을 거라는 말이므로...

처음에 읽기 시작하면서, 내심 치정이라는 게 갈데까지 가봐야 친인척(대충 시아버지와 며느리, 장모와 사위 외에 다수...)간에 바람나는 건데 얼마나 대단할까 하는 생각으로 읽다가 작가에게 두손 두발 다 들었다. 대충 상상이 가능한 치정이란 치정은 기본이고, 생각도 못해보는 상황까지도 서슴지 않고 등장한다. 그저 '치정'이라는 소재에 대한 깊이있는 식견에 경탄할 따름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치정에 치정을 물고 이어지는 만큼 베드신, 엄청 등장한다. 그렇다. 이 정도로 판금될까 싶긴 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야하다. 그런데 베드신이 나와도 어떤 때는 너무 재미나게, 어떤 때는 너무도 시적으로 묘사하는 바람에 삐리리한 생각에 잠기기도 전에 웃음부터 나오거나 아름다운 문구에 매료되어 버린다.

어찌됐든 금병매는 치정이야기의 결정판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무수한 치정과 치정 사이를, 부정부패를 비롯한 수많은 못된 짓거리들로 촘촘히 엮어놓았다. 그런데 우습게도 금병매를 읽노라면 그 무수한 나쁘고 못된 짓거리들이 다 허망해져버려 되려 좋은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정말 어이가 없다.)

게다가 생명력 넘치는 인물들은 가히 매력을 넘어 마력적이다. 나름대로 잔꾀를 써가며 이사람 꼬여내고 저 사람 녹여내고 그러면서도 약한 사람들 괴롭히고 하는 양이 영 아니꼬우면서도, 결국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는 어리석음 같아-욕망의 허망함을 보는 것 같아 도무지 미워지지가 않는다.

통속적이고 속물적인 것도 이 정도면 가히 환상적이다. 정말 유쾌하고 재미난 책이며, 눈을 크게 뜨는 만큼 더욱 많은 매력들을 찾을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정말 성실함을 느끼게 하는 번역은 결코 독자를 거슬리게 만드는 일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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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수수께끼 - 역사 속으로 떠나는 우리말 여행
시정곤 외 지음 / 김영사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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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을 왜 기역이라고 읽는지, 우리말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우리가 우리말에 갖는 궁금증을 중심으로, 역사로 풀어놓은 우리말 이야기라기에 제법 호기심이 동했다. 처음에는 흥미있게 읽었지만, 얼마못가 이두와 향찰에 대한 장이 나오면서 굉장히 불쾌해졌다.

'이두는 설총이 만들었을까'라는 제목은 이두에 대해 제법 호기심을 자아냈지만, 단지 호기심을 위한 제목이었을 뿐 이두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 뿐이다. 논문보다는 훨씬 쉽게쓴다고 썼겠지만, 언어학이 전공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썼다고 보일 정도로 불친절하다. 한자 뜻 풀이도 별로 없고, 어떤 경우에는 괄호로 읽는 법도 나오지 않은채 한자를 중간에 섞어 쓰기도 한다. 정말이지 이두와 향찰부분은, 내 기필코 이 책을 다 읽어 확실하게 씹어주리라는 일념만으로 읽어냈을 정도로, 읽기 곤혹스러웠다.

각 장마다, 이두는 설총이 만들었을까, 글자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진 뒤 해답을 찾아가는 형식으로 썼다는데, 내가 볼때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솔직히 내눈에는 한글에 대한 연구내용을 그러한 질문에 꿰맞춰 나열해 놓은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아까도 이야기했듯이 논문쓰기가 가지고 있는 불친절함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다. 논문은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글인만큼, 글 내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기본지식들에 대한 설명이 없다.

왜냐하면 독자들에게는 설명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니까. 또한 글을 읽는 독자들에 대한 배려는 보다 정확한 사실을 제공하는 것으로 그칠 뿐, 독자들이 글을 읽는데 들이는 수고로움이나 난해함은 고려하지도 않는다. 논문이란건 자료로서 필요하면 읽기 어렵든 말든간에 반드시 읽어야 하니까. 그리고 이론을 입증하기 위한 예시와 입증자료들을 더욱 풍부하고 다양하게 제시하는 데 치중하다 보니 간혹 쓸데 없어 보이는 예문까지도 읽어야 한다.

사실 작가들의 의도는 높이 평가하지만, 자신의 전공분야의 대중화를 위해 글을 쓴다면, 전문지식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풀어낼 지에 대한 깊은 고민을 거쳐 써야 옳았다. 대중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다는 생각에 급급해 전문가의 시각으로 대중을 인식하고 글을 썼을 뿐, 대중들의 시각으로 전문지식을 접근하지는 않았다.그리고 작가가 4명이다 보니, 책의 전체적인 통일성도 약했다.

이토록 혹독한 비판들 뿐임에도 차마 별셋에서 별을 더 이상 빼지못한 이유는 그럼에도 나름의 참신함때문이며, 한글 창제 당시의 역사적인 사건들이 제법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내가 애초에 이 책을 선택한 이유가 한글 창제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들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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쿤룬 산에 달이 높거든 - 한향(漢香) 두번째 이야기
스티에성 외 지음, 김혜준 옮김 / 좋은책만들기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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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등학교때 너무도 줄줄이 읊어댔던 탓일까, 수필하면 붓가는 대로 쓴 글, 신변잡기적인 글이라는 생각부터 든다. 수필이라는 한자어가 가지는 조금은 무성의한 듯한 늬앙스, 별반 새로울 것이 없다는 느낌이 들게하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수필에 대한 나의 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의 제목이 주는 고전적인 서정성에 이끌려 사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어안이 벙벙해졌다. 세상에 중국사람들의 신변은 만리장성이고, 자금성이었으니...중국이란 거대한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네들의 신변역시 거대하리란 생각은 미처 못했다.

중국의 어느 한쪽에서는 현대문명의 최첨단을 달리고 있을 때, 다른 한쪽에서는 전기조차 들어오지 않아 교과서에 나온 전기를 어떻게 가르칠지 난감해 하던 선생님은 몇년간 모은 돈을 털어 며칠씩이나 기차와 버스를 타고 도시에 가서 전기가 어떤 것인지 배워(?)가는 모습이라니...

게다가 도시에서 선물받은 전구를 소중히 간직하다, 나중에 마을에 전기가 들어와 그 전구에 불이 들어오는 광경을 학생과 선생님이 감동스레 지켜보는 모습에 감동적이면서도, 이런 감동이 생겨나는 중국이란 땅의 광대함에는 새삼 질려 버렸다. 그리고 마지막 장까지 읽어내는 동안 그 광대함에 어안이 벙벙해져 버린 채 멍하니 책장을 덮는다.

우리의 10~20년 전의 모습과 닮은 듯하면서도 사뭇 다른 모습에 친근함과 새로움을 동시에 느낀다. 색다르면서도 다양하고, 익숙하면서도 정감이 가는 일상의 이야기들... 고전과 현대가 뒤섞여서 조금씩 나아가고 있는 중국의 다양한 일부분들을 조금이나마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중국이란 땅에서 살아가는 중국사람들의 생활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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