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요이치! 4
미나모토 유 지음 / 서울미디어코믹스(서울문화사)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이런 류의 만화는 즐기기 위해 보는 것' 이라는 대전제를 받아들일 수 있다면, 내일의 요이치는 꽤 괜찮은 만화다.  러브 코믹 장르 중에서도 매우 예쁜 축에 속하는 그림체, 쭉쭉빵빵 자매들과 시대에 뒤떨어진 사무라이 조합이라는 코믹한 설정등 즐길 요소가 풍부하다. 시간을 떼우고 싶다던가, 무참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용도로 읽으면 딱이겠다. 소장 하겠다던가, 뭔가 남는 만화를 보겠다면 포기하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나 NANA 18
야자와 아이 지음, 박세라 옮김 / 학산문화사(만화)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다 큰 남자인 내가 나나를 빌려보는 것은 늘 께름찍하다. 카운터에 나나를 내밀면 왠지 이상하게 쳐다보는 듯 해서 늘 뻘쭘하다. 그래도 나는 늘 나나가 나오는 날이면, 근처의 대여점으로 날아가 제일 먼저 나나를 빌려본다.

 나가 비현실적이라는 건  옛적에 알고 있었다. 최고의 미녀, 미남인 나나의 주인공들은 나 처럼 찌질하게 미래의 생계 따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구름 위에서 사랑을 나누고, 과거의 별 것 아닌 상처에 지독하게 감상적으로 군다. 아니꼬운데다 유치하기 그지없다.

  그런데도  나나에 푹 빠져버린다. 구름위 선남, 선녀들인 주인공들이 너무 멋있고, 과거의 시린 상처에 괴로워 하는 주인공의 섬세한 감정의 결에 푹 몰입해 있다. 나나를 다 보고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찬바람을 쐬며 감상을 음미한다.(은근 슬쩍 대여점에 운을 떼보니 의외로 나 말고도 남자들이 많이 찾는단다. 나만 이상한 건 아니었다.)

  18권에선 '미래'의 나나의 이야기가 조금 더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그들에게 과연 무슨일이 일어났던걸까?(아쉽게도 하치코와 타쿠미는 팬들의 예측대로 파국에 다다른 모양세다...) 현실의 블라스트에 위기가 닥쳐온다. 이렇게 삐걱거리다 파국에 이르게 된 것일까? 권말 부록 타쿠미 이야기에서는 '섬세한 감정의 결'에 푹 빠졌다 나왔다. 늘 궁금했떤 레이라와 타쿠미의 관계에 대해 조금은 답이 됐지만, 결국 왜 둘은 맺어지지 못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나도 끝이 보인다. 몇 권만 더 나오면 파국에 다다를 거다. (그래봐야 몇 년은 기다려야 겠지만.)다음이 기다려진다. 다음권이 나오면 또 체면 따위는 던져버리고 대여점으로 대쉬해야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처드 3세 - 전예원세계문학선 316 셰익스피어 전집 16
윌리엄 세익스피어 지음, 신정옥 옮김 / 전예원 / 199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추에 절름발이에 키는 잘딱만한 천형의 몸. 거기에 음흉하고, 잔인하기 까지한 리처드 3세는 악인의 전형이다. 자신의 야망에 걸림돌이 되는 자들을 무자비하게 죽였고, 자신의 혈족마저도 저 유명한 런던탑에 유폐시켜 죽여버린다. 자신의 손에 아비와 남편을 잃은 여자를 꾀고, 조카를 죽인 손으로 조카 딸을 안아들 생각을 한다. 결국 이 악인은 정의의 심판을 받아, 모두에게 버림받고 전투에서 비참하게 죽는다.

 런데 왜일까? 나는 이 악인이 그리 밉지가 않았다. 오델로와 데스데모나를 파멸로 이끈 이야고가 죽일 듯 미워했던 것과는 달랐다. 자신의 추한 몸뚱이와 악덕을 숨기지 않고 내세우는, 온갖 모략과 음모로 장애물을 제거해 나가는 그가 밉지 않았다. 리처드 3세에 대한 가혹한 평가는 승자의 횡포요, 정의의 심판 운운하는 리치먼드와 스탠리 경은 역겨웠다.

 티히어로 정신의 발로인가? 강자와 약자가 스포츠 경기를 하면, 화려한 강자가 아니라 약자가 이기길 바라고, 변신 히어로와 흉한 악당 괴물이 싸우면 악당 괴물이 이기기를 바라는 그런 마음들.

 력적인 악역이라는 유래없는 캐릭터를 창조해 낸 세익스피어에게 감탄했다. 교과서에서 딱 한줄로 묘사되는 장미 전쟁에 대해 많은 것을 아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만, 번역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문학은 커녕 영어에도 익숙치 못한 내가 할 말은 아니건만, 민음사의 세익스피어 번역이나, 이윤기의 번역에 비하면 문장은 너무 길어 읽기가 힘들고, 한자어가 많았고, 자연스러운 맛이 떨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피스테스 한길그레이트북스 42
플라톤 지음, 김태경 옮김 / 한길사 / 2000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피스테스'에서 플라톤은 '손님'과 '테아이테토스'의 대화를 통해 파르메니데스의 일자론을 배격한다. '있는 것'과 '없는 것' '운동'과 '정지'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결국 일자론은 논리적으로 모순된다는 사실이 증명된다. 그 과정에서 놀라운 철학적 성찰이라는 '있음'의 두가지 의미(존재/비존재, 긍정/부정)이 발견된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의 세계' 이정우의 '뿌리 - 개념'에서 언급된 것을 계기로 읽었다. 위의 짧막한 요약도 결국은 이정우의 '뿌리 - 개념'에 읽은 바를 서술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보는 방법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판사 측에서는 '세상을 보는 방법'이라는  제목를 붙이고, 쇼펜하우어와 전혀 관계없는 휘황찬란한 표지 그림을 갖다 붙여놓았지만 이 책은 '의지와 표상의 세계'라고 제목을 붙이는 게 마땅하다. 이 책 분량의 절반이 의지와 표상의 세계요, 쇼펜하우어의 주저라면 두말 할 것 도 없이 의지와 표상의 세계이니 말이다.

이 책을 알게 된 게 딱 작년 이맘때 쯤인걸로 기억한다. '의지와 표상의 세계'라는 제목의 번역서를 여럿 찾아 볼 수 있으나, 분량으로 단순 비교해 보건데 완역한 것은 아마도 동서문화사의 이 책 뿐일 걸로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방법' 기타 쇼펜하우어의 인생 격언들도 실용적인 조언이 되어주지만, 무엇보다 의지와 표상의 세계를 읽어 보기 위해 이 책에 도전했다. 개설서를 보고 고양되어 한 첫 도전은 처참한 실패. 인생 에세이의 쇼펜하우어와 철학자로서의 쇼펜하우어는 무게가 달랐다. 그러나 인간은 궁핍과 무료 사이에서 끝임없이 고통받는다는 그의 통찰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도전. 초견이 있었기에 훨씬 심도있고,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는 표상의 세계이다. 표상의 세계의 근원에는 의지가 있다. 의지에서 나온 의욕 탓에 인간은 고통과 고뇌 속에서 해어나질 못한다. 의지를 부정하는 길이야 말로 깨달음의 길이요, 이를 무라고 한다.' 쇼펜하우어가 보면 화가 날 정도로, 그의 주저를 토막치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저러한 인식과 사유에 이르는 데 무수한 단계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전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지만 쇼펜하우어가 '염세 철학자'라는 것은 옳은 말이나, 그 결이 일반인들이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듯 하다. 쇼펜하우어 하면 자살을 예찬하고, 권장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쇼펜하우어에게 자살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죽는 모순적인 행동이요, 의지에 얽매인 낮은 차원의 행위이다. 가장 고차원적인 행동은 죽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부정해서 고뇌와 욕구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쇼펜하우어가  세계는 실체없는 껍데기요, 고해의 바다. 이는 불교의 세계인식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누구도 불교의 세계관을 두고 염세관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체는 의지의 부정에 감동하여, 쇼펜하우어를 일생의 스승으로 삼았고,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음악 예찬론에 공감하여 쇼펜하우어 빠돌이가 되었다. 나 또한 앞서의 위인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인간의 고통과 고뇌의 근원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무한한 위안과 기쁨을 맛 볼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