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보는 방법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지음, 권기철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판사 측에서는 '세상을 보는 방법'이라는  제목를 붙이고, 쇼펜하우어와 전혀 관계없는 휘황찬란한 표지 그림을 갖다 붙여놓았지만 이 책은 '의지와 표상의 세계'라고 제목을 붙이는 게 마땅하다. 이 책 분량의 절반이 의지와 표상의 세계요, 쇼펜하우어의 주저라면 두말 할 것 도 없이 의지와 표상의 세계이니 말이다.

이 책을 알게 된 게 딱 작년 이맘때 쯤인걸로 기억한다. '의지와 표상의 세계'라는 제목의 번역서를 여럿 찾아 볼 수 있으나, 분량으로 단순 비교해 보건데 완역한 것은 아마도 동서문화사의 이 책 뿐일 걸로 생각한다.

  '세상을 보는 방법' 기타 쇼펜하우어의 인생 격언들도 실용적인 조언이 되어주지만, 무엇보다 의지와 표상의 세계를 읽어 보기 위해 이 책에 도전했다. 개설서를 보고 고양되어 한 첫 도전은 처참한 실패. 인생 에세이의 쇼펜하우어와 철학자로서의 쇼펜하우어는 무게가 달랐다. 그러나 인간은 궁핍과 무료 사이에서 끝임없이 고통받는다는 그의 통찰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도전. 초견이 있었기에 훨씬 심도있고, 재미있게(?) 읽었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세계는 표상의 세계이다. 표상의 세계의 근원에는 의지가 있다. 의지에서 나온 의욕 탓에 인간은 고통과 고뇌 속에서 해어나질 못한다. 의지를 부정하는 길이야 말로 깨달음의 길이요, 이를 무라고 한다.' 쇼펜하우어가 보면 화가 날 정도로, 그의 주저를 토막치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저러한 인식과 사유에 이르는 데 무수한 단계가 있는 것은 물론이다. 전번에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지만 쇼펜하우어가 '염세 철학자'라는 것은 옳은 말이나, 그 결이 일반인들이 말하는 것과는 조금 다른 듯 하다. 쇼펜하우어 하면 자살을 예찬하고, 권장하리라 생각하겠지만, 쇼펜하우어에게 자살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죽는 모순적인 행동이요, 의지에 얽매인 낮은 차원의 행위이다. 가장 고차원적인 행동은 죽는 것이 아니라 의지를 부정해서 고뇌와 욕구로 부터 자유로워지는 일이다. 쇼펜하우어가  세계는 실체없는 껍데기요, 고해의 바다. 이는 불교의 세계인식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누구도 불교의 세계관을 두고 염세관이라고는 하지 않는다.

   체는 의지의 부정에 감동하여, 쇼펜하우어를 일생의 스승으로 삼았고, 바그너는 쇼펜하우어의 음악 예찬론에 공감하여 쇼펜하우어 빠돌이가 되었다. 나 또한 앞서의 위인들에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인간의 고통과 고뇌의 근원을 분석하고, 그 해결책을 제시한 쇼펜하우어의 철학에서 무한한 위안과 기쁨을 맛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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