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켄 리우 한국판 오리지널 단편집 1
켄 리우 지음, 장성주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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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켄 리우 작가는 소설집 <종이동물원>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기 중 과제를 위해 본 책이었지만 정말 흥미로웠고 미국과 중국,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며 과학소설을 써내는 이 작가에게 많은 관심이 생겼었다. 켄 리우 작가에 대한 첫 기억이 좋아서인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신간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몹시 반가웠다. 켄 리우가 쓴 새로운 색의 SF를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전에 그의 소설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읽었다는 생각에 오랜 시간을 가지고, 켄 리우만의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황금가지에서 나온 이 책은 제목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장르문학의 맛집인 황금가지 출판사는 표지를 굉장히 잘 뽑는데 (주관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책의 표지 역시 내 마음에 들었다. 책의 겉에는 신비로워보이는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이번 단편집에는 열두 개의 작품이 실려 있었는데 그 중 '싱귤래리티 3부작'이 눈길을 끌었다. 싱귤래리티는 인간의 지능을 인공지능이 뛰어넘는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요즘 SF에서 다루어지는 뜨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이를 주제로 쓰인 3부작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생겼다. 켄 리우는 싱귤래리티를 어떻게 표현해냈을까.

모든 작품에 대한 후기를 쓰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이기에 몇 작품만 리뷰를 써보도록 하겠다. (분명히 모든 작품이 내 취향이지만 시간 관계상 전부 리뷰하지 못해 아쉽다. 이후에 시간이 난다면 유튜브 영상리뷰라도 만들어야겠다.) 첫 작품인 '호'부터 이야기의 진행이 심상치 않았다. '시체'를 통해 조형물을 만드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그녀가 아기를 버리게 되는 처음의 이야기와 결말이 만나는 느낌이 좋았다. 수미상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극적이라고 해야 하나. 신선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돌고 돌아 결말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보며 원의 일부를 뜻하는 '호'라는 제목에 대해 여러가지로 추측해보았다. 단편집의 첫 시작으로 나쁘지 않았다. 집중을 이끌어내기에 적당한 작품이었다.

그다음 작품인 '심신오행'은 켄 리우 작가에 대해 처음 느꼈던 인상을 강하게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우주에서 조난을 당한 우주인이 '심신오행'을 이루며 사는 이들의 마을에 떨어져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작품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심신오행'과 과학기술이 만나 독특한 기운을 내는 작품이었다. 가볍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소설은 동서양과 정신, 기술의 융합을 적절한 선에서 보여주었다.

'매듭 묶기'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설 속 두 개의 요소가 접점을 이루는 방식이 새로웠다. 이 소설에는 '매듭'을 묶어 언어를 표현하는 부족이 나온다. 그리고 그 안에서 특별히 기록을 맡고 있던 한 사람을 통해 단백질의 기능을 읽어낸다는 발상이 정말 기발했다. 매듭을 이용해 언어를 전달한다는 초반의 도입부터 믿기 힘들 정도로 신선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을 통해 단백질의 구조를 읽는 소설이 탄생하다니. 단백질은 기다란 사슬이 얽히는 구조를 통해 기능이 정해지는 것이라 '매듭'이라는 것과 이어지기 좋은 소재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그 누구도 쉽게 떠올릴 수 없을 발상이다. 켄 리우의 소설을 읽으며 가장 크게 놀랐던 부분이었다. 그의 과학적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랑의 알고리즘'은 '로봇'과 '인간'의 경계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다. '중국어 방'이라는 가설을 소설 속에 넣기도 했는데 이 역시 SF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에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요즘의 트랜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튜링 테스트와도 이어지는 듯한 실험이라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근래 들어 중국어 방 가설이 등장하는 책을 세 권이나 읽었다(...) 이 실험은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중국어를 들려주었을 때 단순한 우연으로 대답이 이어진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로봇과 인간의 말로 치환해서 인간과 로봇의 차이를 심도 있게 생각하도록 하는 논제이기도 하다. 딸을 로봇으로 만든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적절히 등장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소설에 잘 녹아들어가 진행을 흥미롭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카르타고의 장미', '뒤에 남은 사람들',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앞서 말한 싱귤래리티 3부작으로 인간의 정신을 온라인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뇌를 저미는 다소 잔인한 방식으로 업로딩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흥미롭기에 읽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업로딩을 발명한 세대, 그리고 사용하는 세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세 단편에 대해 연속성을 가지고 읽을 수 있다. '육체를 잃고 정신만 남은 인간'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켄 리우는 이를 그만의 방식으로, 연작을 통해 써냈다. 업로딩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보여주며 다른 의미로 '영생'을 사는 이들에 대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좋았다. 사람의 생명을 무한히 연장한다는 주제로 쓰인 여러 작품이 생각났다. 정말로 영생을 살 수도 있겠다는 과학적 상상력은 늘 눈을 사로잡는 것 같다. 다른 소설들을 읽기 전에 싱귤래리티 3부작을 먼저 순서에 따라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를 두 개만 더 꼽아보자면 '모든 맛을 한 그릇에,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와 '내 어머니의 기억'이 있다. 관우가 등장하는 SF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한 생각을 가지고 먼저 앞의 소설을 폈다.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는 이 책에서 가장 긴 작품이기도 하다. (거의 책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관우는 삼국지의 그 관우가 맞다. '관우'와 '아메리카'는 역시나 각각 동양과 서양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사는 중국인 남성을 등장시키며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그는 자신을 '군신'이라 불리는 관우라고 소개하지만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를 미국인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이 소설은 남자의 입을 통해 중국의 고전적 이야기와 현대의 미국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아이의 가족은 처음에 중국인 남자를 차별하지만 이후 음식 등 여러 상황을 겪으며 중국인들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라의 맛을 모르고 개를 먹는 이들을 야만인 취급하던 미국인들에게 중국인 남성이 전하는 메시지는 인종차별의 일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내 어머니의 기억'은 '관우'의 이야기와 반대로 아주 짧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머리에 강하게 남았던 이유는 앞으로 2년밖에 살지 못하는 어머니를 우주에 보내 수명을 늘리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어머니의 시간을 팽창시킨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별을 위한 시간>이 생각나기도 했다. '내 어머니의 기억'에서 어머니는 결론적으로 딸보다 오랫동안 산다. 그리고 20대의 모습을 유지하며 딸이 늙어가는 모습을 본다. 짧게짧게 끊어지며 이어지는, 딸이 어머니를 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한 작가가 쓴 작품들이라는 정보는 켄 리우의 소설을 아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는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SF를 쓰는 작가다. 이번 신간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켄 리우가 소설 속에서 해나가는 '퍼즐맞추기'가 얼마나 정확하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표지처럼 신비롭고 제목처럼 눈길을 끄는 열두 개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켄 리우라는 작가에게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켄 리우의 작품을 아직 읽지 못한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놀라운 퍼즐을 척척 맞추어 나가는 작가를 통해 쓰인 이 책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본 리뷰는 개인블로그에 업로드한 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blog.naver.com/sol_narae98/22203922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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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다른 두 가지 스토리를 병행해 번갈아 써 나간다.

그리고 그 두 이야기가 마지막에 합체된다. -6쪽

서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가 쓴 글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 구조를 알고 들어가면 당황하지 않겠지만 만약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로 이 책을 읽는다면 조금 놀랄 구성이다. 심지어 두 이야기는 앞서 언급한 구병모의 <심장에 수놓은 이야기>와는 그 진행이 또 다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는 '아예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두 인물의 이야기가 초반에는 거의 접점이 없이 번갈아 나오기 때문이다. 두 인물이 존재하는 세계는 모두 '현실'과는 약간 동떨어져 있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 책이 정말로 40년쯤 전에 쓰인 것인가, 싶을 정도로 세련되고 조밀한 문체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소설에 대해 조금만 이야기해보자. 이 작품의 주인공은 두 명이다.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라는 곳에 사는 인물을 A, '세계의 끝'에 사는 인물을 B라고 하면 구분이 좀 쉬울 것 같다. A는 어느 날, 뇌의 '셔플링'을 의뢰한 고객을 만나기 위해 길을 떠난다. 의뢰인을 만나러 가는 길은 특이하다. 그를 만나려면 큰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폭포를 통과해야 하고 동굴을 지나야 한다. A를 안내하는 노인은 '소리'를 추출할 수 있는 기이한 능력을 가졌다. 의뢰인의 건물에 도착하자 '손녀'라고 불리는 사람이 길을 안내하는데 그녀는 말을 하지 못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그녀 역시 소리를 '추출' 당한 것이다. '동굴'과 '폭포'는 어쩐지 의뢰인을 특이한 인물로 만든다.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사는 인물처럼 의뢰인을 묘사한다. (실제로 의뢰인은 세상과 동떨어져 '소리 추출'이라는 것을 연구한다.) 의뢰인은 동물의 '두개골'을 수집하고 그것을 두드리면 나는 소리를 듣는 것을 취미로 삼는 사람이다.

A는 의뢰인과 엮인 날부터 이상한 일을 겪는다. 덩치가 큰 사람과 '꼬마'라고 부를 만큼 작은 사람이 그의 집에 와서 소중한 모든 것을 부순다. 그리고 그는 동시에 여러 위험에 노출된다. 그런 일을 A가 겪는 동안 한쪽에서는 B의 이야기가 동일하게 이어진다. B는 어느 마을에 들어간다. 그 과정에서 B는 자신의 그림자를 빼앗기고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B는 마을의 도서관에서 일각수의 두개골에 담긴 '오래된 꿈'을 읽는 임무를 맡는다. 동물의 두개골에 담긴 '오래된 꿈'을 '읽는다'는 것 역시 보통의 일은 아니다. 이 소설을 전체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것은 '보통이 아닌 것들'이다.

평행세계처럼 이어지던 두 공간이 접점을 찾는 것은 '두개골'이라는 소재에서다. 두개골은 신비한 소리를 내거나 '기억'을 담는 물질로 양쪽 세계에서 기능한다. A는 소설의 중후반에서 자신의 세계가 점점 납작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으며 B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벗어나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A의 위험이 고조될수록 B의 세계 역시 긴장감에 휩싸인다. 전혀 다른 것처럼 시작하지만 연결 고리를 찾아가는 두 세계의 만남을 기대하며 읽으면 좋은 책이다.

'그림자를 떼어낼 수 있다'거나 '소리를 추출할 수 있다', '꿈을 읽는다' 라는 등의 장치는 소설을 흥미롭게 만든다. 두 인물이 소설의 끝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된다는 것은 작품의 초반을 읽으면 사실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는 일이다. (작가 역시 서문에서 밝힌 바가 있기도 하고.) 이는 자칫 독자에게 '결말'을 예상했다는 느낌을 줄 수 있고 소설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지루하지도 않고 읽는 도중에 긴장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800페이지의 긴 이야기를 전혀 속도를 늦추지 않고 완독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만든 세상이 너무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다. 그 작품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이 책 역시 내 마음에 들었다.

'일각수'는 뿔이 하나 있는 동물로 이 책의 표지에 종이로 접어진 모양이 삽입되어 있다. 뿔이 하나 있는 동물은 왠지 신비롭다. 그 동물이 말을 닮았다면 더더욱 그렇다. 뿔이 하나 있는 말은 동화와 전설 속 동물인 '유니콘'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 동물의 두개골에서 들리는 소리는 어떨까. 일각수의 두개골에서 읽을 수 있는 오래된 꿈은 과연 무엇일까.

전체적인 이야기의 배경 설정은 정말 좋았다. '원더랜드'를 다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책을 추천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이 책을 '재미있는 흉기'라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물리적으로 흉기의 몫을 다할 수 있을 만큼 두껍지만, 심리적으로도 위험할 정도의 속도를 느끼며 읽게 된다. 800페이지짜리 재미는 집에 하나쯤 놓아둔다면 충분히 좋을 것이다. 물론 800페이지를 80페이지처럼 빠르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니 읽는 데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다. '물리적'인 힘이 센 만큼 심리적으로도 큰 영향을 미치는 작품이다.

책을 읽은 지 6일째 되는 날. 그러니까 내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완독한 날, 나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왜 그토록 인기가 많은 작가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적어도 앞으로 올해 안에 그의 책을 두 권은 더 읽어보겠노라고 다짐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는 지금까지 읽은 책 중 가장 두껍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소설이 이렇게 속도감 있을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른 책을 읽어본 적이 없어 작가의 입문용으로 좋은지는 알 수 없지만 누군가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보는 것을 고민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추천해주고 싶다. 일각수와 두개골. 그리고 다른 듯 같은 두 이야기에서 살아가는 인물의 이야기를 읽어본다면 누구든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의 팬이 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본 후기는 개인 블로그에 업로드한 것을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블로그에서 전문 읽기 : https://blog.naver.com/sol_narae98/222034500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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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오페라
캐서린 M. 발렌티 지음, 이정아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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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황금가지 출판사의 소설 <스페이스 오페라>의 출간 소식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이 책은 디스코 볼이다. 음악을 들고 조명을 켜라."

이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재미있는', 또는 '유익한' SF는 많이 접했지만 '신나는' SF라는 홍보는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 '디스코 볼'이라고 소개되는 SF 소설은 당연히 궁금증을 불러 일으키기 마련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서평단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이 신나는 과학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안고 책을 기다렸다.


행성과 디스코볼의 이미지를 결합한 책의 표지는 내용을 잘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광활한 우주에서 벌어지는 음악 경연 대회, 그리고 얼떨결에 지구 대표로 대회에 출전하게 된 록밴드를 다룬 이 소설은 '록'이라는 음악이 주는 색을 잘 활용했다. 화려한 말장난과 예측할 수 없는 이야기의 전개 또한 소설의 재미를 한층 올려준다. 읽다가 문득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말장난의 최고봉(?)인 작품인데 <스페이스 오페라>도 거기에 뒤지지 않는 언어의 마술사들이 등장한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지구에 처음 외계인이 등장하는 부분이었다. 지구의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든 상관없이 그들의 앞에 나타난 외계인은 기존에 다루어지던 '침입자'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묻는 말에 친절하게(?) 답해주는 모습은 심지어 친절해 보이기까지 한다. 외계인이 록밴드 앱솔루트 제로스를 선택한 것이 소설의 첫 번째 반전이라고 할 수 있다. '몰락한 록' 그룹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우주 음악경연에 참여하는 소설의 출발은 몹시 흥미로웠다.

이 소설은 외계인을 만나는 지구인의 모습을 다루며 '외계'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주목한다. 그저 광활하고 모호한 곳이었던 우주는 이 책을 읽으며 정기적으로 음악경연을 하는 신나는 곳이 된다. 우리가 얼마나 우주에 대해 좁은 시각을 가졌는지 (실제로 정기적인 음악 경연을 하는 생물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3초 정도 드는 대단히 선명한 이미지와 함께) 소설 <스페이스 오페라>는 보여준다. 어떤 은하의 집합체에 사는 생명들이 보기에 작은 '지구'라는 행성에서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지도 못하는 '인간'이라는 동물은 얼마나 편협해 보일까.

인간은 생각보다 자신의 종족을 우월하게 생각한다, 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 하는 책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우리는 지구에서 먹이사슬의 거의 최상위에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가진 모든 발명품과 물건을 뺏긴다면 인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절멸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인간은 스스로를 너무 과대평가 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들이 지구의 주인인 양 행동하는 인간에게 나타난 외계인이 던지는 미션은 단 한 가지다. "우주의 음악경연에서 꼴찌를 면할 것". 이 얼마나 황당한 주문인가. 데시벨 존스는 우주에 나가자마자 여러 외계인을 마주한다. 그들은 지구에서는 상상도 못하던 모습이다.

내가 이런 외계인들을 만나면 어떤 기분이 들까 생각해봤다. 지구가 참 작은 곳이구나, 내 생각이 좁았구나, 라고 느끼기도 전에 혼절할 것 같다. 정말, 어느 날 갑자기 데시벨 존스에게 벌어진 일이 나에게도 닥친다면 말이다. 인간은 이렇게 작고 좁고 편협한 생각으로 뭉쳐 있다. <스페이스 오페라>는 어쩌다 소행성이라도 떨어지면 단 한 명도 살아남지 못할 생명인 주제에, 행성의 주인 행세를 하는 우리를 만난 외계인의 시선을 잘 반영한 소설인 것 같다.

난해하고 신나는 말장난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데시벨 존스가 음악 경연대회에서 어떤 결말을 맞을지가 드러날 것이다. 매 글마다 말하는 것이지만 나는 읽는 속도가 참 느리다. 그게 나의 최대 약점이다. 이 책을 절반밖에 못 읽고 서평을 쓰는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그래도 나는 데시벨 존스가 어떤 결과를 마주할지 그 끝에 가보고 싶다. 그리고 데시벨 존스가 마주한 우주의 모습을 끝까지 견디며 따라가고 싶다. 이 번쩍이고 신나고 흥겨운, 일렉기타의 소리를 닮은 책을 완독하고 싶다.

아참. 이 책을 읽기 전에 디스코볼을 준비할 필요는 없다. 이미 이 책이 디스코볼이고, 읽다보면 주변에서 신나는 락음악이 들려올 테니 말이다. <스페이스 오페라>. 말 그대로 우주 전체가 음악의 무대가 될 것이다.




리뷰 원문보기 : https://blog.naver.com/sol_narae98/221983194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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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여자 -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줄리엔 반 룬 지음, 박종주 옮김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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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리뷰 URL
https://m.blog.naver.com/sol_narae98/221961251781

"일상에 도전하는 철학을 위하여"

『생각하는 여자』 의 부제목이다. 일상에 도전하는. 매일이 도전인 여성과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로라 키프니스, 시리 허스트베트, 낸시 홈스트롬, 줄리아 크리스떼바, 로지 베티, 헬렌 캘디콧, 마리나 워너, 로지 브라이도티. 여덟 명의 철학자가 말하는 여섯 개의 논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 역시 철학에 조금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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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 보게 해주세요 - 하이퍼리얼리즘 게임소설 단편선
김보영 외 지음 / 요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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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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