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켄 리우 작가는 소설집 <종이동물원>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학기 중 과제를 위해 본 책이었지만 정말 흥미로웠고 미국과 중국,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며 과학소설을 써내는 이 작가에게 많은 관심이 생겼었다. 켄 리우 작가에 대한 첫 기억이 좋아서인지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신간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몹시 반가웠다. 켄 리우가 쓴 새로운 색의 SF를 읽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전에 그의 소설을 지나치게 단편적으로 읽었다는 생각에 오랜 시간을 가지고, 켄 리우만의 소설은 어떤 느낌일지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 황금가지에서 나온 이 책은 제목부터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장르문학의 맛집인 황금가지 출판사는 표지를 굉장히 잘 뽑는데 (주관적인 생각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번 책의 표지 역시 내 마음에 들었다. 책의 겉에는 신비로워보이는 동물이 그려져 있었다. 이번 단편집에는 열두 개의 작품이 실려 있었는데 그 중 '싱귤래리티 3부작'이 눈길을 끌었다. 싱귤래리티는 인간의 지능을 인공지능이 뛰어넘는 지점을 가리키는 용어이며 요즘 SF에서 다루어지는 뜨거운 주제이기 때문에 이를 주제로 쓰인 3부작이라는 점에서 흥미가 생겼다. 켄 리우는 싱귤래리티를 어떻게 표현해냈을까.
모든 작품에 대한 후기를 쓰면 글이 지나치게 길어질 것이기에 몇 작품만 리뷰를 써보도록 하겠다. (분명히 모든 작품이 내 취향이지만 시간 관계상 전부 리뷰하지 못해 아쉽다. 이후에 시간이 난다면 유튜브 영상리뷰라도 만들어야겠다.) 첫 작품인 '호'부터 이야기의 진행이 심상치 않았다. '시체'를 통해 조형물을 만드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었는데, 그녀가 아기를 버리게 되는 처음의 이야기와 결말이 만나는 느낌이 좋았다. 수미상관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극적이라고 해야 하나. 신선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돌고 돌아 결말에서 하나로 합쳐지는 것을 보며 원의 일부를 뜻하는 '호'라는 제목에 대해 여러가지로 추측해보았다. 단편집의 첫 시작으로 나쁘지 않았다. 집중을 이끌어내기에 적당한 작품이었다.
그다음 작품인 '심신오행'은 켄 리우 작가에 대해 처음 느꼈던 인상을 강하게 다시 한 번 보여주었다. 우주에서 조난을 당한 우주인이 '심신오행'을 이루며 사는 이들의 마을에 떨어져 벌어지는 사건에 대한 작품이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아가는 '심신오행'과 과학기술이 만나 독특한 기운을 내는 작품이었다. 가볍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이 소설은 동서양과 정신, 기술의 융합을 적절한 선에서 보여주었다.
'매듭 묶기'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소설 속 두 개의 요소가 접점을 이루는 방식이 새로웠다. 이 소설에는 '매듭'을 묶어 언어를 표현하는 부족이 나온다. 그리고 그 안에서 특별히 기록을 맡고 있던 한 사람을 통해 단백질의 기능을 읽어낸다는 발상이 정말 기발했다. 매듭을 이용해 언어를 전달한다는 초반의 도입부터 믿기 힘들 정도로 신선한 기분이 들었는데, 그것을 통해 단백질의 구조를 읽는 소설이 탄생하다니. 단백질은 기다란 사슬이 얽히는 구조를 통해 기능이 정해지는 것이라 '매듭'이라는 것과 이어지기 좋은 소재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이 소설을 읽기 전에는 그 누구도 쉽게 떠올릴 수 없을 발상이다. 켄 리우의 소설을 읽으며 가장 크게 놀랐던 부분이었다. 그의 과학적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방향은 정해져 있지 않다.
'사랑의 알고리즘'은 '로봇'과 '인간'의 경계에 대해 말하는 소설이다. '중국어 방'이라는 가설을 소설 속에 넣기도 했는데 이 역시 SF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에 이해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요즘의 트랜드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튜링 테스트와도 이어지는 듯한 실험이라 재미있다고 생각했는데 근래 들어 중국어 방 가설이 등장하는 책을 세 권이나 읽었다(...) 이 실험은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이들에게 중국어를 들려주었을 때 단순한 우연으로 대답이 이어진다고 해서 그들이 정말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진다. 이는 로봇과 인간의 말로 치환해서 인간과 로봇의 차이를 심도 있게 생각하도록 하는 논제이기도 하다. 딸을 로봇으로 만든 주인공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적절히 등장한 이론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소설에 잘 녹아들어가 진행을 흥미롭게 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카르타고의 장미', '뒤에 남은 사람들', ''어딘가 상상도 못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앞서 말한 싱귤래리티 3부작으로 인간의 정신을 온라인에 업로드하는 방식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세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뇌를 저미는 다소 잔인한 방식으로 업로딩이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그 과정이 흥미롭기에 읽는 데에 어려움은 없었다. 업로딩을 발명한 세대, 그리고 사용하는 세대의 이야기가 이어진다는 점에서 세 단편에 대해 연속성을 가지고 읽을 수 있다. '육체를 잃고 정신만 남은 인간'에 대한 논의는 꾸준히 이어져 왔지만 켄 리우는 이를 그만의 방식으로, 연작을 통해 써냈다. 업로딩을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을 보여주며 다른 의미로 '영생'을 사는 이들에 대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좋았다. 사람의 생명을 무한히 연장한다는 주제로 쓰인 여러 작품이 생각났다. 정말로 영생을 살 수도 있겠다는 과학적 상상력은 늘 눈을 사로잡는 것 같다. 다른 소설들을 읽기 전에 싱귤래리티 3부작을 먼저 순서에 따라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를 두 개만 더 꼽아보자면 '모든 맛을 한 그릇에,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와 '내 어머니의 기억'이 있다. 관우가 등장하는 SF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한 생각을 가지고 먼저 앞의 소설을 폈다. '군신 관우의 아메리카 정착기'는 이 책에서 가장 긴 작품이기도 하다. (거의 책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이 소설에 나오는 관우는 삼국지의 그 관우가 맞다. '관우'와 '아메리카'는 역시나 각각 동양과 서양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미국에서 사는 중국인 남성을 등장시키며 '인종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다룬다. 그는 자신을 '군신'이라 불리는 관우라고 소개하지만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를 미국인 아이의 시선으로 보는 이 소설은 남자의 입을 통해 중국의 고전적 이야기와 현대의 미국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아이의 가족은 처음에 중국인 남자를 차별하지만 이후 음식 등 여러 상황을 겪으며 중국인들에게 마음을 여는 모습을 보여준다. 마라의 맛을 모르고 개를 먹는 이들을 야만인 취급하던 미국인들에게 중국인 남성이 전하는 메시지는 인종차별의 일면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내 어머니의 기억'은 '관우'의 이야기와 반대로 아주 짧은 작품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머리에 강하게 남았던 이유는 앞으로 2년밖에 살지 못하는 어머니를 우주에 보내 수명을 늘리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상대성 이론을 이용해 어머니의 시간을 팽창시킨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별을 위한 시간>이 생각나기도 했다. '내 어머니의 기억'에서 어머니는 결론적으로 딸보다 오랫동안 산다. 그리고 20대의 모습을 유지하며 딸이 늙어가는 모습을 본다. 짧게짧게 끊어지며 이어지는, 딸이 어머니를 보는 시선이 인상적이었다.
중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이민한 작가가 쓴 작품들이라는 정보는 켄 리우의 소설을 아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그는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SF를 쓰는 작가다. 이번 신간 <어딘가 상상도 못 할 곳에, 수많은 순록 떼가>는 켄 리우가 소설 속에서 해나가는 '퍼즐맞추기'가 얼마나 정확하게 맞물리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책이다. 표지처럼 신비롭고 제목처럼 눈길을 끄는 열두 개의 이야기는 독자들을 켄 리우라는 작가에게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켄 리우의 작품을 아직 읽지 못한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싶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 놀라운 퍼즐을 척척 맞추어 나가는 작가를 통해 쓰인 이 책의 상상력에서 나오는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다.
(본 리뷰는 개인블로그에 업로드한 후기를 가져온 것입니다.)
원문 보기 : https://blog.naver.com/sol_narae98/22203922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