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청소부
나카야마 시치리 지음, 문지원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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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야마 시치리의 『특수청소부』는 ‘특수청소’ 전담 사무실 ‘엔드 클리너’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네 개의 연작소설집이다. 특수청소란 죽은 후 사람이 오래 방치된 공간을 이전으로 복구하는 작업으로, 일반 청소와 달리 방호복부터 이런저런 공구까지 다양한 도구들이 필요하다. 생명이 떠난 사람의 부패한 몸에서는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망자를 배웅하기 전, 벌레와 세균과 악취에 대항해 특수청소부는 몸을 지켜야 한다.

때로 그것에 어쩔 수 없이 불쾌해하지만,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는 것은 꽤 특별한 상황이다. 어쩔 수 없이 숙연해지는 이유는 아무리 더럽고 끔찍한 공간이라도 얼마 전까지는 누군가의 마음이 머문 집이었기 때문이리라. 특수청소부는 죽은 사람의 넋을 위로하고, 그가 있던 곳에서 새로운 삶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중간자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종종 ‘특수’한 사건에 말려들기도 한다.

2009년 장편소설 『안녕, 드뷔시』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해!’ 대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 나카야마 시치리는 매번 신선한 소재의 추리소설로 독자의 기대에 착실히 부응해 왔다. 이번 『특수청소부』 역시 제목만 들어도 궁금증이 유발되는 연작소설집으로, 읽는 사람의 눈과 머리를 먼저 깨우고 들어가는 독특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그의 소설에 건 기대 이상으로 추리의 재미를 맛보았던 기존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신작이며, 아직 그의 이야기를 읽어보지 않은 새로운 독자들에게는 오감을 깨우는 신선한 책이 될 것이다.

나카야마 시치리의 『특수청소부』는 ‘엔드 클리너’에 의뢰된 특수청소 중 네 사람의 죽음에 얽힌 기묘한 뒷배경을 다룬다. 특수청소를 위해 방문하는 ‘집’. 외부와 단절된 폐쇄된 공간에서 한 사람의 흔적을 지우며 발견되는 단서들을 되짚어가다 보면, 어느새 특수청소부는 수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곤 한다. 세입자가 죽었다면 집주인이, 자녀가 죽었다면 부모가, 애인이 죽었다면 또 다른 애인이. 죽음에 매달린 삶들은 시끄럽게 아우성치기도 하고 은밀한 거래를 제안하기도 한다.

특수청소부라는 직업은 다종다양한 죽음을 마주한다. 삶의 종착지가 죽음이기 때문에, 그들은 죽음에 투영된 다양한 삶을 본다. 나카야마 시치리는 『특수청소부』에서 죽음의 대상이 ‘노인’만은 아님을 보인다. 이 책에서 노인의 죽음은 단 한 건에 불과하다. 이십 대 남성, 삼십 대 여성, 사십 대 남성 등 고독사가 젊은 층에도 가까운 것임을 강조하려는 듯 연령과 성별에 관계없는 죽음들이 눈에 띈다.

그들 하나하나에는 여러 사람이 얽혀 있다. 이십 대 남성의 주변에는 함께 음악을 했던 친구들이, 삼십 대 여성의 주변에는 회사 동료들과 가족이, 사십 대 남성의 주변에는 깔끔히 정리하지 못한 관계의 여성들이, 팔십 대 남성의 주변에는 재산을 노리는 자녀들이. 그들 중 누군가는 죽음과 직접 관련되어 있다. 엔드 클리너의 사장 이오키베와 직원들은 때로 형사와 공조하며 억울하거나 당연한 죽음의 전말을 되짚어간다.

형사나 탐정이 아닌, 그러나 죽음과 가장 가까운 특수청소부의 시선은 새롭다. 직업상 청소부지만 그들은 방역과 감염 예방에 철저하며, 바닥재를 뜯어내거나 집을 수리하는 데에도 능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사람’을 보는 눈이 발달해 있다. 죽음을 사이에 두고 삶과 삶을 마주해야 하는 그들의 일 때문일까. 때로 형사보다 차갑고, 의사보다 냉정한 판단이 그들에게는 가능하다.

오래 방치된 만큼 짙은 자국을 남긴 이들을 깨끗이 배웅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동반되는 관계의 정리는 때로 특수청소부의 몫이다. 그들은 유품의 분배와 재산의 분할, 부모 자식 사이의 불편한 관계를 여과 없이 마주하기도 한다. 살아있을 때는 ‘고독’했을지 모르는 사람들의 뒤에 이렇게 많은 이가 숨어 있었다는 것이 죽은 이후 드러날 때면 조금 씁쓸해진다.

하지만 마냥 불편한 관계만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죽은 이를 진심으로 애도한다. 그의 유품을 소중히 받아 들고 생전의 기억을 간직한다. 죽음은 한 사람의 삶과 그 궤적이 어떠했음을 대강 판가름할 수 있는 리트머스지와 같다. 세상을 막 떠난 사람의 뒤에서 비명과 고함이 난무한다면, 적어도 그는 좋은 삶을 살았다고 할 수 없다. 그러나 진심 어린 애도와 그리움이 망자를 배웅하는 자리에 가득하다면, 적어도 그는 지상에 ‘기억’될 좋은 사람이었지 않았을까.

『특수청소부』는 죽음이 삶의 끝만은 아니라는 의미를 담은 소설집이다. 내 뒤의 사람들이 어떻게 남을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건 적어도 나의 몫이라는 뜻으로.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책임감을 어깨에 가볍게 지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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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 정보라 연작소설집
정보라 지음 / 래빗홀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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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22년, 환상문학웹진 ‘거울’ 소속 필진으로서 17번째 중단편집 『그리고 문어가 나타났다』의 서문을 작업했던 적이 있다. 신규 필진 딱지를 이제 갓 뗀 신입에게 연간 출간되는 도서의 서문을 쓴다는 건 굉장히 값진 일이다. 특히 그해에는 정보라 작가의 부커상 최종 후보 지명이라는 경사가 있었다. 서문을 써야 하는 책의 수록작과 작가 명단을 훑던 중, 정보라 작가의 이름을 보고 그대로 굳어버렸던 기억이 난다. 아직 대학도 졸업하지 않았던 나에게 ‘정보라’라는 이름은 그야말로 전설처럼 느껴졌다.

모든 작품을 참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당시의 긴장감이 생생하다. 정보라 작가를 비롯한 곽재식, 전혜진, 구한나리, 김지혜 작가 등 소위 웹진 거울의 ‘조상님’이나 다름없는(?) 분들의 소설을 감히 평해야 한다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감사한 마음이 실력에 앞서지 않았나 반성하기도 했다) 다행히 최선을 다한 서평은 출판사의 도움으로 무사히 책에 실렸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읽은 소설들의 줄거리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그러니 이번 정보라 작가의 신간 제목을 보고 놀라움과 반가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는 2022년 웹진 ‘거울’ 중단편집에 수록된 단편 「문어」 속 대사이기 때문이다. 서문을 작업하던 당시에도 정보라 작가의 「문어」는 강한 인상의 이야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노동자와 여성, 장애인, 퀴어 등 사회적 약자(또는 사회가 만든 약자)의 편인 동시에 당사자이기도 한 작가 당신이 독자를 향해 던지는 위트 속 메시지에서 오는 강렬함이 있었다.

「문어」는 고등교육법 개정안, 일명 강사법의 제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대학 내 대량 해고를 다룬다. ‘지구-생명체는-항복하라’라고 말하는 문어 외계인을 홀랑 먹어버리는 노조 위원장의 행동을 본 독자는 의아하다. 그러나 그것이 곧 항복하지 않겠다는 그의 결연한 의지임을 깨닫는 순간, 소설의 의미가 완성된다. 이 소설은 사회 전체가 애써 외면하는 듯한 인간 소외를 환상과 특유의 재치로 다루되, 문제의식의 무게를 보존하는 강약의 조절은 정보라 작가가 현실을 전유하는 마음가짐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문어 외계인을 먹는 인간의 이야기가 비현실적일까. 학생을 가르치는 마음이 같은 사람들의 연봉이 열 배도 더 차이 나는, 그중 누군가는 예고 없이 일자리에서 쫓겨나는 현실이 비현실적일까. 이 소설을 평하며 “환상은 종종 현실을 환기한다”라고 서문에 썼던 기억이 난다. 지금에 와서는 환상의 완성도가 ‘현실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가 아닌 ‘현실과 얼마나 가까운지’로 정해지는 듯하다. 소설 속 위원장이 문어 외계인을 삼킨 데에는 또 얼마나 정치적이고도 현실적이며, 법적인 사정이 있었는가.

「문어」가 수록된 정보라 작가의 신간 단편집 『지구 생명체는 항복하라』의 일부를 출간 전에 작가의 에세이와 인터뷰가 함께 실린 무크지의 형태로 읽어볼 수 있었다. 재미있게도 샘플 소설로 「문어」가 실려 왔다. 이전에 한 번 읽은 기억이 있어서인지, 새로운 감흥이 없으리라 생각했으나, 작가의 소설 밖 이야기를 알게 된 후 다시 본 「문어」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처럼 신선했다.

정보라 작가에게 환상이란 현실을 투영하는 렌즈와 같다. 그 렌즈를 통과한 현실의 이야기가 이번 소설집에는 다섯 개 더 수록된다. 문어와 마찬가지로 대게, 상어, 개복치, 해파리, 고래 등 해양 생물과 관련된 이야기다. 분명 해양 생물과 바다에 관한 다섯 개의 환상소설일 테지만, 나는 그것들이 지상의 우리가 발 딛고 살아가는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고 확신한다.

“소설을 쓰려고 여러 가지 해양 생물을 조사해 봤는데요, 해파리가 기후변화를 가장 잘 대표하는 생물 같았습니다. 실제로 지구온난화로 인해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해파리가 잔뜩 몰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건 해파리 탓이 아니지요. 해파리는 따뜻한 물과 함께 살아갈 뿐입니다. 인간이 지구를 펄펄 끓게 만드니까 해파리가 늘어나서 결국 인간에게 위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 무크지의 작가 인터뷰 18~19쪽

‘작가는 글로 투쟁한다’. 이 말이 혼과 육을 얻는다면 정보라 작가처럼 행동하고 움직이지 않을까. “지구-생물체는-항복하라”라고 외치는 문어로 라면이나 끓여 먹으면서, 저 해안으로 밀려오는 해파리를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동시에 지구를 망가뜨린 몹쓸 인간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정보라 작가의 신간은 또 얼마나 맛있을 것인가.

그러니 기대한다.
저항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푸르고 붉은 지구의 소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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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과 나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래빗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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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를 보는 즐거움 중 하나는 미래를 엿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미래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어떤 기술이 그들과 함께할까. 누군가는 단순히 그때에 있을 신기술을 작가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데에서 오는 신선함을 유희적으로 맛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사회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를 가늠해보는 것도 과학 소설을 읽는 중요한 이유다. 어떤 ‘사람들’이 그 시대를 살아갈 것인가,를 상상하는 것 또한 즐겁기 때문이다.

과학소설 속 사회의 모습을 가늠하길 좋아하는 독자로서 첨단을 다루는 과학소설 중 기술낙관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되는 어떤 것들은 (굉장히 적은 비율이긴 하지만) 기술불평등을 간과하곤 한다는 점이 종종 안타깝다. 유난히 그런 것을 발견하는 데에 밝은 눈을 지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수명이 증가하고 가정에 도우미 로봇이 들어오고, 학생들의 교과서가 전자식으로 바뀌는 등의 모습을 이야기에서 마주할 때마다 ‘저 기술은 모두에게 제공되는 것일까’라는 걱정에 사로잡히곤 한다. 사실 소설을 픽션으로만 읽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유의미하지 않은 고민일 수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종종 SF 안에서도 소외되는 사람들이 보인다.

배명훈 작가의 『화성과 나』라는 연작소설은 무려 인류의 ‘화성 이주’를 다루는 책이다. 우주 항공 기술은 첨단 중에도 최첨단을 달리는 것이기에 ‘소외’의 레이더에 어느 이야기 하나가 걸릴 법도 했으나, 놀랍게도 그런 소설은 없었다. 배명훈 작가의 글을 적지 않게 읽어 온 독자로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그는 기술 안에서 ‘사람’을 본다. 화성으로 사람을 보내기에도 바쁜 시기에 ‘간장게장’의 '밥도둑'으로서의 기능을 논할 수 있는 사람이다.(「위대한 밥도둑」) “전교 몇 등 안에는 못 들어도, 인류 공동체가 지구인을 대표하는 사람을 300명만 뽑아서 우주로 보낸다면 그 안에는 반드시 들어갈 사람”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다.(「김조안과 함께하려면」)

사람에 관심이 많은 작가가 쓴 모든 문장은 낭만적이다. 낭만은 사람이 만들어낸 (몇 안 되는 아름다운) 개념이기 때문이다. 『화성과 나』 속에서는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오랫동안 우주선에서 물의 순환을 함께 겪고(「행성봉쇄령」) 지구에서는 씨알도 먹히지 않을 “행성 두 개만큼 네가 보고 싶을 거야”라는 고백이 화성인의 입에서 아름답게 완성된다(「행성 탈출 속도」). 이 책은 박사 학위 세 개를 가지고 화성에 스스로 정착하는 데에 무리가 없는 건장한 사람이 아니라 예술가와 일반인, 어린 아이들처럼 테라포밍 없이 화성에 절대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정착할 때 비로소 그곳에 ‘문명’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런 화성이 되어가는 과정 속 ‘사람 사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보인다.

이 책을 통해 배명훈 작가가 '외교부'로부터 의뢰받아 “화성의 행성정치: 인류 정착 시기 화성 커버넌스 시스템의 형성에 관한 장기 우주 전략 연구”라는 제목의 상당히 SF스러운 보고서를 쓴 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년에 가까운 연구였으니 그가 이렇게 다각도로 화성이라는 행성을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이해된다. 과학에서는 화성의 ’식량’을 보지만 인문학은 화성의 ‘음식’을 본다는 그의 시선은 이 소설집의 모든 연작에 적용되었다. 과학이 정교하게, 수학적으로 계산한 미래를 인문학은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으로 채워나간다. 이런 과학과 인문학의 상호작용을 마술처럼 조율해 글로 적어낼 수 있는 배명훈 작가의 신작, 『화성과 나』라는 책을 가장 먼저 받아볼 수 있어 즐거웠다.

얼마 전, 화성에 가서 죽는 게 꿈이라는 배우의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다. 지구에서 죽지 않는 것이 꿈이라는 그의 이름은 김조안이 아니지만, 세상에는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 그들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도 내 생각보다 많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는다. 다만 한 가지, 화성으로의 이주가 지구가 병드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는 않기를 바란다. 모든 과학이 종말을 얘기하는 시대지만, 그래도 그 행성에서 이곳을 볼 사람들이 여전히 지구를 아름다운 행성이라 말할 수 있기를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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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듣는 소년
루스 오제키 지음, 정해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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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처음 소설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사물의 시선에서 한 사람의 인생을 바라보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다. 한 명의 아이가 태어나 성인이 되고 죽기 전까지 스치는 수많은 사물, 그들에게 인간은 어떤 모습일까. 새로운 시각으로 삶을 조명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물론 당시의 나는 중학생이었고 이야기를 끈기 있게 풀어갈 능력과 문장의 힘이 부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소설을 쓰는 데에 그다지 흥미가 있지 않았기 때문에 몇 페이지 분량의 글을 끄적이다가 쓰기를 멈추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손발이 오그라드는 문장만 가득 적혔을 그 이야기는 온라인 세상 어딘가에서 데이터의 파편으로 떠돌고 있을 것이다.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그 소설이 불현듯 떠오르는, 재미있는 작품을 얼마 전에 만났다.

루스 오제키의 장편소설 『우주를 듣는 소년』은 만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소년 베니를 주인공으로 한다. 커다란 책의 무더기 가운데에 가만히 앉아 있는 소년. 이 책의 표지 그림을 보면 꽤나 신비롭고 몽환적인 느낌이 든다. 아이는 우주의 빛깔로 반짝이는 고요한 공간에서 조용히 책을 보는 듯하다. 하지만 소설의 분위기는 이와 조금 다르다. 이야기의 시작은 소년 베니의 아버지 켄지가 사고로 사망하는 시점이다. "책은 어딘가에서 시작해야 하고, 이 책은 여기서 시작한다"라는 도발적인 문구와 함께. 하루아침에 비극적으로 남편을 잃은 어머니 애너벨, 그날 이후 사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 소년 베니는 이전과 전혀 다른 매일을 산다.

이 책은 메타적인 위치에 있다. 이야기를 서술하는 주체이자, 그것이 쓰이는 매체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그 자신이다. 베니의 인생을 쓰는 동시에 그와 대화한다. 베니는 모든 사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책이 쓰는 자신의 삶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본다. 베니는 인간이 아닌 것과 대화한다. 그는 아버지의 사망 이후 나타난 이 현상으로 인해 혼란과 오해 속에서 산다. 베니의 능력을 정신과적 문제로 판단한 주변 사람들은 그를 조현병으로 여기고 소아정신과에 격리하지만, 그곳에서 베니는 좋은 친구들을 사귄다. 그를 불신하거나 동정하는 사람들,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누는 세상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그를 따라가며 독자들은 걱정 어린 응원을 던지게 된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이 책의 작가 루스 오제키는 일본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문화적 다양성이 있는 집안에서 태어나 문예창작학과의 교수로 있으며 선불교의 승려라는 독특한 이력도 있다. 『우주를 듣는 소년』은 이런 작가의 삶을 총망라한 이야기다. 주인공 베니의 아버지 켄지는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다. 선불교 승려인 아이콘의 책 《정리의 마법》은 베니의 어머니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소설의 문장과 진행은 충분히 밀도 있으며 성과 젠더, 노동과 여성, 이민자와 인종의 관계를 유쾌하지만 날카롭게 파고든다.

🔖 그리고 따지고 보면 책의 존재 이유도 그거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인간들의 이야기를 표지와 표지 사이에 최대한 오랫동안 안전하게 간직하는 것. -55쪽

책의 존재 이유란 무엇일까. 오직 기록하는 유일한 동물로서 인간에게 책이 필요한 까닭은 무엇일까. 한 사람이 겪은 충격적인 사건, 그 이후의 장면을 빠짐없이 담고자 끊임없이 떠드는 단 한 권의 책. 그 음성을 빌려 작가인 루스 오제키는 이렇게 말한다. ‘당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책의 존재 이유라고. 사람에게 이야기가 없다면, 모든 매체의 기록과 저장은 무의미하다. 우주를 듣는 소년. 그는 사물의 소리를 듣지만, 결국 그것 또한 인생의 이야기다. 이 긴 분량의 책을 소개하기에 주어진 분량이 너무나 짧다. 그러나 단 하나는 확언할 수 있다. 칠백여 쪽인 이 책의 분량은 도무지 충분하지 않다.

한 아이가 내디딘 발자취의 조각. 그의 상처와 치유, 세계의 오해와 이해에서 오는 깨달음을 따라 더욱 여행하고자 할 우리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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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저도시 타코야키 - 김청귤 연작소설집
김청귤 지음 / 래빗홀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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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몇 년 전, 김청귤 작가의 첫 소설을 읽은 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우주와 좀비 바이러스를 주제로 한 짧은 글이었는데 그의 문장이 주는 가벼운 따듯함에 얼마간 설레며 상상의 폭에 내심 감탄했다. 첫 감상이 좋아서인지 지금도 끊임없이 불어닥치는 텍스트의 바람에 피곤할 때면 그의 소설을 찾곤 한다. 참 이상한 일이다. 글을 쓰고 읽어 몸과 마음이 한없이 지친 와중에도 청귤 작가의 소설은 읽힌다. 아니, 오히려 그의 이야기로 나는 위로와 쉼을 얻는다. 글로 인한 피로를 또 다른 글로 풀 수 있다니. 타인의 지친 몸과 마음을 상상력만으로 녹이는 이 작가의 능력에는 비범한 데가 있다.

온라인 연재 플랫폼에 올라온 그의 글 중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단편이 〈해저도시 타코야키〉였기 때문에 소설집으로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반가웠다. 이 글이 연작의 일부였다는 새로운 정보에 해저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어떤 작품이 더 있었을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선정되어 가장 먼저 책을 받아 보는 행운을 누렸다. 구불구불 문어발이 해저 돔을 감싸는 형상의 표지를 보며 표제작인 「해저도시 타코야키」가 정확한 이미지로 구현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어 보니 이 책의 연작들이 모두 해저 도시를 배경으로 하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 조금 더 광활한 범위의 바다. 모든 소설에는 자연과 생명의 원형으로서의 ‘바다’가 넘실거리고 있었다. 주인공들의 개별 모습은 다양하다. 바다 생물의 유전자와 결합한 미래형 인간, 해저의 생명체와 교감할 수 있는 아이, 불길한 배에 납치되거나 해저 도시 사이를 오가는 수인(水人), 3년으로 수명이 제한되어 오직 청소 일만 하다 폐기되는 청소부와 스티로폼 눈을 맞으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은 모두 ‘바다’라는 공간에 몸담고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한참 지난 미래에 거주한다.

청귤 작가는 모든 소설에서 과거의 인간들에 회의감을 내비친다. 지금의 우리일 수도, 미래의 인류일 수도, 어쩌면 지금보다 더 예전에 살았을 수도 있는 그들에게 똑바로 말한다. ‘덕분에 우리는 물로 도망했어요’. 벼랑 끝의 인류가 몸을 던진 곳은 가장 깊은 생명력의 바다였다. 그러나 여전히 욕심만은 버리지 못한 채, 인간은 분열과 혐오, 시기와 반목을 지속한다. 『해저도시 타코야키』의 여섯 이야기 중 앞의 다섯 개에는 아직 끝나지 않은 인간끼리의 대립이 반복된다. 과거의 인간, 또는 육지의 인간은 착취하고 공격하며 인공적이다. 반면 바다의 인간과 생물은 포용하고 성실하며 자연적이다.

다행히 이런 대립은 마냥 진영 간의 싸움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일방적으로 한쪽이 공격하고 다른 쪽이 방어하거나 피해 입는 구도로 흘러가지도 않는다. 주인공들은 스스로 ‘선택’한다. 어느 것 하나 겹치지 않는 인물과 세계관에서 단 하나, 모든 이야기에 도장처럼 찍힌 공통점이 있다. 이미 망해버렸거나 서서히 망해가는 세상에서 주인공들은 자연과 마음을 해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맨 마지막 소설 「산호 트리」는 이런 최선의 끝에 있는 담담하고도 아름답지만 먹먹한 결말을 함축한다. 해류가 순환하며 바다 쓰레기를 건져 올리는 것을 ‘눈이 내린다’고 표현하는 사람들. 그들이 원하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이미 우리에게 있는 ‘생명력’이었다. 우리는 어쩌면 매일의 기적을 담보로 지구를 망가뜨리는 걸까.

겉으로는 식은 것 같아도 언제고 뜨거운 온기를 품는 고소한 문어빵처럼 차갑고 딱딱해진 해저 돔.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여섯 개의 이야기에 스며 있는 건 오직 하나의 온기다. 거대한 시간을 통과해 바다를 유영하며 무한한 쓰레기와 온몸으로 부딪혀 본다. 우리는 이미 그것이 가득한 세상에 산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발장구를 쳐본다. 고개를 앞으로 치키고 선명하게 울리는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인다. 아마 이 여행을 먼저 떠났을 한 작가가 미리 보았을 미래가 드디어 눈앞에 보인다.

“온 세상이 바다로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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