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마아
마리 파블렌코 지음, 곽성혜 옮김 / 동녘 / 2022년 1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동 청소년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전공 수업을 통해서였다. 동화와 청소년 소설이 막연히 어린이를 위한 '쉬운 글'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었는데 주마다 아동문학을 살펴보며 내 생각이 한참 잘못되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틈틈이 관련 소식을 찾아보았다. 최근 눈에 띄었던 것은 동녁 출판사에서 출간된 생태 소설 『사마아』였다.
이 소설은 여성, 환경, 생태를 주제로 한다. 어느 것 하나도 관심 없는 키워드가 없다. 아니, 실은 셋 다 매우 흥미롭다. 이 세 가지는 종종 함께 붙어다닌다. 여성을 빼면 환경을 말할 수 없고 환경을 빼면 여성의 역사가 한 귀퉁이 잘린다. '에코 페미니즘' 등의 분야에서는 여성 존재와 환경을 밀접하게 연관짓는다. 생명을 준다는 것, 그리고 동시에 끝없는 착취를 당했다는 것이 둘의 공통점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 사마아는 여자가 사냥꾼이 될 수 없는 부족에 산다. 나무를 '사냥'해서 돈을 버는 부족 사람들은 폐허가 된 세상에서도 환경을 착취하고 있다. 소설 속 세계가 완전한 판타지가 아니라 미래의 디스토피아라는 것은 읽다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마아는 사냥꾼이라는 직업을 동경하고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을을 빠져나온다. '여성'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자면 사마아는 꿈을 좇는 인물이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서 서사를 한번 비튼다. 독자는 '여성'뿐 아니라 '생태'와 '환경'도 이 소설을 이루는 중요한 주제임을 기억해야 한다. 나이가 지긋하고 현명한 노인 랑시엔은 사마아에게 사냥꾼들이 "나무를 죽이는 걸 막아"라고 하지만 사마아는 들은 체도 하지 않는다. 그녀는 결국 사냥꾼들을 뒤쫓다 구렁에 빠진다.
사마아가 구렁에 빠져 오랜 시간 주변을 관찰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동시에 매우 중요하다. 구렁 밖에서 벌어지는 착취와 파괴를 서서히 잊고 사마아는 자신과 함께 놓인 나무와 미물, 친구 '트위다'의 이름을 붙인 동물과 지낸다. 다친 발목이 나을 때까지 물과 나무 곁에서 지내는 사마아의 눈에 자연과 생명의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기 시작한다. 사마아는 점점 사냥꾼들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깨닫는다.
'환경'과 '생태'의 키워드 안에 '여성'이 존재한다. 어린 사마아의 눈은 섬세하게 구렁 안의 생활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씨앗을 떨어뜨리는 나무를 보며 "나무는 엄마"라는 것을 깨달은 사마아는 나무의 이름을 나이아라고 부른다. 트위다, 나이아처럼 주변 식물과 동물에게 이름을 붙이는 행위는 사마아가 그만큼 자연과 친밀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이아의 씨앗에서 나온 싹을 '폴록'이라고 부르며 사마아는 점점 구렁 안의 생태에 스며든다.
이런 장면이 아주 느린 속도로, 사마아의 시점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이후 그녀가 구조되는 장면은 매우 극적이다. 사냥꾼들은 사마아와 함께 발견된 자연을 '사냥'한다. 토막나는 자신의 세계와 공격적인 사냥꾼들의 날카로움에서는 생태의 부드러움과 차분함을 느낄 수 없다. 사마아의 구출 과정은 '사냥'이 '생명'을 앗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이아는 '완전히' 죽지 않는다.
비록 나이아를 다시 만날 수 없지만, 씨앗의 생명은 살아남는다. 자연에 접촉한 아이 한 명의 용기와 정성이 만들어내는 것은 생태의 회복이다. 노인 랑시엔의 지혜가 사마아에게 이어졌듯 나이아의 씨앗은 폴록을 거쳐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 군집을 이룬다. 사마아가 살린 건 나무 하나의 씨앗이 아닌 지구였다.
디스토피아 미래에 사냥꾼을 꿈꾸던 여성은 자연과의 교감 후 '사냥'의 폭력을 몸소 체험한다. 『사마아』는 단순히 하나의 키워드에 집중한 소설이 아니다. 남성으로 대표되는 사냥꾼 집단은 '식량'을 얻기 위해 자연을 심각하게 훼손한다. 하지만 소녀 사마아는 구덩이에서 자연을 건져올렸다. 울창한 숲 가운데 당당히 서있는 그녀의 뒷모습은 혼자지만, 후손들은 생태의 시초로 사마아를 기억할 것이다.
치열한 생존의 끝에서 만난 진짜 생명이 싹을 틔우는 순간, 사마아의 여정은 비로소 시작된다. 이 소설의 끝에서 우리는 한 소녀가 이룬 생명과 자아의 회복을 보게 될 것이다.